그림의 방 - 나를 기다리는 미술
이은화 지음 / 아트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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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라는 캔버스>

미술관의 방과 방을 드나들듯이 『그림의 방』을 읽었다. 남자친구에게서 받은 이별편지를 107명의 전문직 여성들에게 보내 그들이 각자의 직업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분석한 편지글을 전시 소재로 삼은 프랑스 작가 소피 칼의 「잘 지내길 바라(2007)」는 사적인 것을 공적인 것으로 바꿔버린 작가의 위트에 박장대소했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아들을,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손자를 잃은 슬픔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케테 콜비츠의 조각상 「죽은 아들을 안은 어머니(1993)」를 보면서는 먹먹해지는 마음을 조용히 껴안아야 했다. 조지 프레더릭 와츠의 「희망(1886)」은 절망과 고난의 더미 속에서 희미하게 숨을 내뱉고 있는 희망을 찾게 했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몸으로 겪으면서 연필 하나로 전쟁의 참상을 그린 올가 그레벤니크의 『전쟁일기』와 김승희 시인의 시 「희망이 외롭다1」를 떠올리게 했다.

『그림의 방』에 소개된 작품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소개하고 싶은 그림이 있다. 여성 화가로서 처음 누드 자화상을 그린 독일 화가 파울라 모더존 베커의 「여섯 번째 결혼기념일의 자화상(1906)이다. 처음 자화상을 보았을 때 지면에 인쇄된 그림이었지만 울림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커다란 호박 목걸이를 하고 가슴과 배를 드러낸 반라의 자화상. 엷은 미소를 띤 채 화면을 지그시 응시하는 파울라의 눈빛은 부끄러움이나 유혹의 메시지가 아닌 단단한 내면을 드러낸다. 볼록한 배는 임신한 듯 보이지만 그림을 그릴 당시 파울라는 임신 중인 상태가 아니었다. 결혼생활을 내려놓고 보르프스베데에서 파리로 거처를 옮기고 작업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이 그림을 두고 당시 미인의 기준이 볼록한 배였다는 해석도 있고 아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는 분분한 해석이 있지만 ‘가난과 싸우면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과 포부로 충만하게 차오른 모습을 만삭의 상태로 표현한 것’이라는 나희덕 시인의 해석이 가장 와닿았다. ‘자기 내부에서 격렬하게 움직이는 ‘또 다른 나’를 낳고자 했던’ 파울라 모더존 베커의 자화상이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된 이유다.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이면서 일하는 엄마로 사는 일은 아슬아슬한 줄타기일 때가 많다. 남편과의 관계,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무언가 어긋날 때면 일하느라 생각이 딴 데로 가 있어서 그렇다는 오해를 받기 쉽고 상대적으로 적은 돈을 번다는 이유로 내 일의 가치를 낮게 평가받기도 한다. 외부의 영향이 없더라도 스스로 확신이 부족해 작아질 때도 많다. 일하면서 마음이 힘들 때면 그녀의 자화상을 생각한다. 변변한 작업실이 있지도 매일 새로운 작업이 물밀듯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이 내 인생의 최종 종착지가 아니라고 하루의 행복과 절망, 고독과 기쁨이 한 겹 한 겹 쌓이다 보면 나도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뭔가가 되어 있을 거라고 지금은 그 과정에 있는 거라고 위로해주는 것 같다. 미술은 다른 나라의 언어처럼 어렵고 낯설게 여겨지기 쉽다. 그럴 때 모든 작가의 작품을 세세히 알 필요는 없다고 그저 마음에 품고 싶은 어떤 작가의 작품 하나면 충분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파울라 모더존 베커의 자화상과 “내가 보증할 수 있는 것은 지금 나 자신의 성실함뿐”이라는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말을 함께 떠올리면서 오늘도 오늘이라는 캔버스 위에 하루치 성실함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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