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 아는 농담 - 보라보라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김태연 지음 / 놀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우리만 아는 농담

김태연

다산북스

 

 

 

 


 <다산북스 열독 응원 프로젝트 매3>에서 보내주신 첫 번째 에세이집 <우리만 아는 농담>을 받았다. 책을 좋아하는 것은 분명한데, 일과 관련하여 아이와 함께 주로 책을 찾다보니 정작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나를 위한 시간을 선물하자는 마음에서 응모했던 다산북스의 이번 이벤트는 그런 의미에서 기대감이 컸다. 에세이 3권과 함께 이 가을, 작은 틈을 내볼 수 있다니 그것 자체가 귀한 행복이다.

 

 ‘3첫 번째 주자는 김태연 작가의 <우리만 아는 농담>이다. 에세이라 해서 기대했는데 처음부터 보라보라 섬이라니! 시작부터 세다.

 


# 보라보라 섬 편지

 보라보라 섬. 이라고 써 놓고 한참을 들여다 본다. 지금 여기로부터 얼마만큼의 시공간을 벗어나야 닿을 수 있을지 가늠도 되지 않는 곳. 이 책의 저자는 바로 그 남태평양의 작은 섬마을 보라보라에 살고 있다고 한다.

 

 <우리만 아는 농담>은 섬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와 때로는 도시에서 생각할 수 없는 예상밖의 일들이 수시로 펼쳐지는 섬에 대한 시선이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남태평양의 섬,에 쉼표를 하나 찍고 이국의 낭만적인 멋진 풍경과 삶이 그려지려나 예상했으나 섬은 삶의 공간 그 자체였다. 바닷가의 멋진 숙소가 떠오르나 현실은 집세를 고려하여 이사도 다녀야 하고, 남편의 꿈이었던 피자 가게를 남편과 함께 운영하기도 했다. 정전도 수시로 되어 칠흑 같은 밤하늘 아래 모기떼의 습격을 받기도 하고 마트 물건도 쉬이 동나는 곳, 종합병원에 가려면 200여 킬로미터 거리의 타히티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야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존재들이다. 어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일깨워준 마리오와 꼬맹이, 행복과 소비에 대해 돌아보게 했던 벌거벗은 아이 모아나네 가족들, 집 한켠을 나누어 함께 살았던 외국 친구들, 삶의 한 부분을 공유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돌아보게 해준 디에고, 한국말을 들어주는 유일한 친구 고양이 쥬드, 자신만의 행복을 일궈가는 작은 빵집 사장님 조프리, 삶과 여행에 질문을 던지는 마농씨네 가족들, 똑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반가운 따뜻하신 포에 할머니 등이 저자의 현실 이웃들이다.

 또 우리는 너무 달라서 알아가는 재미가 있구나.”라며 다름의 가치를 귀하게 여겨주시는 시어머니 오드레, 언제든 친구 스위치를 켤 수 있는 멋진 남편이 곁에서 함께 한다.

 

 여러 번의 계절이 바뀌면서 이방인이었던 저자는 현지인이 되어 간다. 마트 직원은 저자가 좋아하는 매운 고추를 집에서 따다 건네기도 하고 망고가 흔한 섬이니 망고는 사지 말라고 한 가득 안겨준다. 누군가의 자리를 잠깐 부탁받아 일하기도 하고 지역 축제의 영상을 담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외로움과 그리움도 오롯이 혼자만의 몫이다. 평생을 바쁘게 사신 부모님, 콜라 한 잔 함께 나눌 수 있는 소소하고 유쾌하신 할머니, 언제나 든든한 힘이 되는 언니 그리고 반가운 택배들. 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아주 먼 거리의 섬 보라보라에서 저자는 그런 가족들을 애틋하고 담담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편도 항공권으로 보라보라섬에 도착했을 때는 설렘과 긴장 가득했지만 저자는 섬에 살면서 중요한 것은 남들 눈에 좋아 보이는 삶이 아닌, 타인의 욕망이 아니라 자신만의 삶을 사는 것임을 깨닫는다.

 

 

# 인생에서 듣고 싶은 이야기

 

 저자는 담백하면서도 편안한 시선으로 그곳의 삶을 문장으로 끌어올린다. 문장들이 화려하지도 힘이 있지도 않지만 보라보라섬처럼 끌림이 있다. 조금 동떨어진 곳 같지만 여전히 여기와 같이 치열한 삶이 있고, 지금 해야 할 일이 있고, 인생의 순간들이 기다리고 있는 보라보라섬. 문장보다 수없이 더 많았던 날들은 흘러가고 여과되어 이제 평화롭고 따뜻하게 다가온다.


 이 책은 그래서 위로가 되었다. 우리 땅 저 멀리서 좌충우돌 살면서 성장하는 저자의 일상은 지금 이곳을 돌아보게 한다. 저자가 그곳에서 발견한 행복들은 일상의 틈을 비집는다. 느리게 흘러간다는 보라보라섬의 시간법도, 대소사가 있어도 선뜻 출발하기 어려운 아주 먼 거리감도, 그럼에도 하루하루 흘러가는 그곳의 이야기는 묘하게 지금 여기와 오버랩이 된다.


 저자의 단편마다 등장했던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라고 맺는 끝문장.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 )’하고 괄호 하나를 부여한다. 정말 알 수 없는 미래에 전전긍긍하기보다 오늘 하루에 집중하고 반짝이게 하자는 의미로 느껴진다.

 

 <다산북스 열독 응원 프로젝트 매3>의 에세이를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삶의 위로와 응원, 인생에서 내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제는 지구를 구하는 것처럼 반짝거리는 일이 아니어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잠깐 누군가의 빈자리를 채우는 일이거나, 그저 지루함을 버텨내는 일이거나,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일이어도 괜찮다.(중략)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의 쓸모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각각의 일들을 지나오는 동안 우리가 조금씩 성장해왔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아무리 작은 일도, 무의미한 일도 그래서 모두 의미가 있다.(57)

 

-세상은 더하고 빼면 남는게 없는 법이라더니, 보라보라 섬이 딱 그런 것 같다.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있고, 좋은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나쁜 일도 생긴다. 행복하다기엔 만만치 않고, 불행하다기엔 공짜로 누리는 것 투성이다. 깨끗한 공기, 따뜻한 바다, 선명한 은하수. 어디든 더하기만 있거나, 빼기만 있는 곳은 없을 것이다.(118)

 

-모든 여행에는 여행자가 미처 알지 못했던 숨겨진 목적지가 있다는 말을 무척 좋아한다. 앤텔로프 협곡을 기점으로 이번 여행의 숨겨진 목적지는 장소가 아닌 사람, 곧 함께 여행하는 가족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 조금씩 용기를 내주었던 것 같다.(188)

 

 위의 문장들도 오롯이 남아 의미가 되고 힘이 되어 삶의 모서리를 다시 한번 바라보게 한다. 덕분에 삶의 진정한 보물이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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