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한성례 옮김 / 자음과모음 / 2020년 12월
평점 :
절판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문단의 이단아'로 불리우는 마루야마 겐지.

일본 문학상인 "아쿠타가와 상"을 최연소로 수상했지만 도쿄에서의 삶과 추후의 모든 수상을 거절하고 혼자만의 땅굴을 파고 들어가 오로지 글쓰기에만 전념한다.

"친구를 멀리하고 직장 동료나 아는 사람들과도 거리를 두고 자신을 고립한 상태로 둘 것. 예술이란 영혼과 접신하는 일이므로 행복이나 안정과 가까우면 그만큼 예술에서 멀어진다. 진실로 문학을 목표로 한다면 고독을 향해 고독을 누르고 고독을 초월하라. "

-마루야마 겐지의 에세이 <미래의 글 쓰는 이에게> 중에서

실로 어마어마한 결의와 심지가 아닌가. 문학인으로서 살기 위해서는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정반대로 살아야 한다는 그의 말은 글을 평생의 업이자 친구로 삼고 싶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안정이 아니고 불안정, 질서가 아닌 혼란, 집단보다는 개인, 협조가 아니고 고행, 타협이 아니라 반항, 즉 반사회적 존재가 되어야 진정한 문학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슬하에 자식도 낳지 않고 철저히 글에 의한 글을 위한 삶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미루야마 겐지는 독특한 자신만의 문학 분야 하나를 통째로 창조해내기에 이른다. 소설과 시에 대한 그만의 관점이 '시 소설'이라는 뉴 장르 탄생의 시발점이 된 것. 그리고 이 책 <달에 울다>는 바로 미루야마 겐지 작가의 '시 소설' 월드의 진수라고 여겨진다.


소설의 화자인 '나'의 일생이 사계(四季)에 비유되며 봄-10대, 여름-20대, 가을-30대, 겨울-40대 순으로 풀어진다. 그때마다 자연스럽게 화자의 몸이 뉘여져 있는 이불의 종류를 통해 그의 현 상황을 상상하며 엿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봄. 종이 같은 재질 따위로 만든 요에 누워있는 10살 소년인 '나'

이 시기에 그는 소녀 야에코를 만난다. 참전병이었던 '나'의 아버지와 동네 사람들은 어떠한 연유인지, 야에코의 아버지를 죽게 만들고 사과나무 아래에 그 시체를 묻어버린다. 야에코는 장례를 치른 후에 일절 아버지의 죽음에 관해선 입 밖에 내지 않는다. 그것이 두 모녀가 동네에서 살아가는 한, 할 수 있는 최선의 생존방식이었을까. '나'는 구석진 시골 동네와 마을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부모에게 염증을 느끼며 모두에게 미움받는 야에코를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이 된다.


여름. 군데군데 솜이 삐져나온 요와 땀내 나는 값싼 담요 사이에 끼어 있는 갓 스무 살의 '나'.

얇은 이불 속에 드러누운 젊은 그와 함께 누운 이는 야에코이다. 둘은 천 일 동안 사랑을 나누며 농사일을 한다. 사과나무 농장도 야에코도 모두 가지게 된 그에게 약간의 희망이라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이 찾아온 듯하다.



가을. 방에 어울리지 않는 거위털 이불과 양털 요 사이에 끼어있는 서른 살의 '나'.

자신을 포함해, 하루하루 낡아지는 것들뿐인 그의 인생에서 새롭게 바뀐 건 거위털 이불과 이제는 곁에 없는 야에코의 부재 (不在) 뿐이다. 그의 부모는 여느 동네 사람들처럼 야에코를 무척이나 싫어했고, 야에코 자신도 하나 남은 어머니까지 세상을 뜨자 마을에 있을 이유를 찾지 못한다. 그와는 진작에 헤어진 지 오래다. '나'는 야에코의 네 번째 사내까지 알고 있다.

야에코는 생부가 누군지도 모르는 자신의 아이와 30년 만에 마을을 떠난다.

('나'는 이것을 탈출이라 명한다.)


겨울. 전기담요와 전기요 사이에 끼어있는 40년 하고 10개월을 산 현재의 '나'.


그에게는 썩어서 죽어버리는 사과나무가 늘고 있는 농장과 비어 아무도 없는 본가 한 채 뿐이다. 부모님은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 한 죽음이다. 사람들은 '내'가 지난날 적당한 처자와의 구색 좋은 결혼을 놓쳐 부모를 속상하게 한 것에 비하면 좋은 결말이라고들 말한다.


작품은 '나'의 인생과 함께 비파를 켜는 법사의 관점도 함께 보여주는데 이는 '나'의 내면이며, 그가 돌보는 사과나무는 평생 벗어날 수 없던 그의 고향, 늘 연주하던 비파는 야에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썩어가는 사과, 쇠퇴하는 마을, 빠르게 변하는 시대.

한때는 반짝이며 맑은 소리를 연주하던, 이제는 낡은 악기가 돼버린 비파.

모든 것과 함께 늙어가는 '나'를 통해 결국 우리 모두는 '흙으로 돌아간다'라는 같은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싶다.

다소 차가운 어투와 냉소적인 시 형식의 이 소설은 짧지만 매섭게 독자의 눈과 마음에 후비고 파 들어온다. 스스로 고독에 잠식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마루야마 겐지 작가 특유의 예술관을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한 번 펼쳐보는 것은 어떨지 제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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