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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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작가의 말투나 표현법이 나와 맞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훈은 나와 맞다고나 할까.

약간(?) 시니컬하면서 진실을 애써 포장하지 않고

온갖 미사여구로 화려한 문체를 쓰지 않는 점,

무엇보다 까칠한 말투로 내뱉고 있지만

무언지 모를 따뜻한 인간적인 냄새가 풍기는 것.

아마도 이런 점이 마음에 들어 김훈 작품을 읽는지도 모르겠다.


<라면을 끓이며>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은 밥, 돈, 몸, 길, 글이라는 컨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두 한 글자로 짧은 주제이지만 그 속에 내포된 인생사는 참으로 많음을 느낄 수 있다.

작품 제목인 '라면을 끓이며'는 1부 '밥'이라는 주제 안에 들어 있는데

라면이 처음 나올 당시의 시대적 배경부터 라면의 생산, 유통, 소비 양태,

그리고 요즈음 대세인 백종원 레시피처럼 저자만의 라면끓이기 레시피도 알려 주고 있다.

잠깐 정리해 보자면, 저자는 물을 많이 넣고 스프를 덜 넣으며 대파의 하얀 밑동만 몇개 넣고

불을 끈 후 달걀을 넣어 국물에 스미도록 해서 30초쯤 기다렸다가 먹는다고 하는데,

언젠가 요 레시피 그대로 한번 따라해보려 한다.

그나저나 물을 너무 많이 넣는거 같은데 한강이 되지 않으려나?^^

생각컨대 인스턴트 라면의 화학적 조미료 맛이 조금 줄어든 담백한 맛이 느껴질 듯하다.


올해 초 중앙일보에서 저자가 기고한 오피니언에서 '세월호'에 대한 내용을 읽었더랬는데

이곳에 그때 실렸던 글과 '이투데이'에 실었던 세월호 관련 글이 다시 올라와 있었다.

다시 읽어봐도 이익 집단 같은 모습을 보였던 지금 정부에 대한 질책 한번 시원하다.

반성의 기능 마비, 무책임, 무방비 때문에 망했던 중국 고대의 전국시대를 거울삼아

그 뒤를 똑같이 따라가지 않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의견을

과연 정부 관계자들은 읽어 보긴 했을까.

여전히 답답하구나.


전체적으로 김훈은 짤막한 한글자의 주제에 넓고 깊은 인생사를 담아 내려 했다.

밥벌이의 고통을 알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다시 힘내자는 내용부터

우리내 인생에서 부딪치는 크고 작은 일들을 소소하게 써내려가는가 하면

울진항에 머물면서 경험했던 어촌의 삶,

고향과 타향, 한강, 박경리에 대한 추억...

그리고 저자가 키우고 있는 개와의 교감,

어느덧 자라 여자어른이 된 딸아이에 대한 마음,

아들을 군대 보내며 느낀 대한민국 아버지의 마음,

특히 3부 '몸'에서 '여자1'부터 '여자7'까지를 읽으며 저자의 시선뿐 아니라

솔직한 남성의 시선도 함께 읽을 수 있었다.

탱크톱의 끈 하나에 대한 단상을 읽어 보니 탄성이 절로 난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아무것으로 만든 저자의 문장력에 말이다.


자신이 겪은 일상, 저자의 경험과 생각에 녹아든 삶의 감흥,

그리고 그것에서 오는 지적인 간접 체험은 누구나 한번쯤 거쳐 보았음 직한 것들이라

독자의 공감을 더욱 잘 끌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닥 산문집을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이토록 공감을 하게 된 건

어쩌면 이 가을 살랑살랑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읽어서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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