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말은 중고등 사회 시간에 엄청 많이 들어본 개념이에요.
다시금 한권의 책으로 벤담을 만나 보니 그때 생각이 나서 더욱 흥미로웠어요.
이 책은 이와 같은 벤담의 철학적 사고를 이야기로 재미있게 들려주고 있어요.
혜리와 사회복지사 베컴 아저씨가 함께 떠난 4차원 세계는 이론과 개념, 그리고 사회현상을 딱딱하게 늘어놓은 게 아니라
아이들이 재미있게 이야기를 읽으면서 공공의 행복이 무엇인지, 개인의 행복은 공공의 행복에 대하여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할 수 있게 하고 있지요.
영국의 공리주의에 큰 영향을 끼친 벤담의 이론은 허치슨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해요.
허치슨 교수는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로 사람들이 보통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곧 선의 기준이라고 생각한 사람이랍니다.
허치슨은 선이 곧 쾌락이고, 악은 고통이라고 주장하였기에 모든 사람이 가능하면 쾌락을 즐기려고 애쓴다고 한 사람이지요.
이런 허치슨의 영향을 받아 벤담은 사람들이 고통을 싫어하고 행복이나 즐거움을 좋아한다고 하였답니다.
벤담이 말하는 쾌락은 행복의 다른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옳지 못한 행동은 고통을 주기에 사람들은 쾌락을 즐기기 위해 옳은 행동을 하게 되고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는 옳지 못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니 말이에요.
즉, 쾌락은 즐거움만을 목적으로 한다기보다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 도덕과 윤리에 기초한 것이지요.

책을 통해 벤담은 쾌락계산법, 그것의 유용성에 대한 허점, 양적쾌락과 질적쾌락 등을 알려주고 있어요. 최대 다수란 모두가 아닌 가능한 많은 사람이란 뜻이며,
최대 행복이란 역시 가장 좋은 쾌락이나 행복이 아니라 가능한 가장 좋은 쾌락이나 행복을 뜻하는 것이에요. 벤담은 나에게 쾌락을 주는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면 다수의 이익을 위해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반대로 나에게 고통이 되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더 큰 행복이 된다면 그것을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개인주의가 팽배한 요즈음 더욱 그 의미를 되돌아보게 되었답니다.
책을 읽고 한가지 계속 되뇌이게 되는 부분은 벤담이 실업자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에요.
벤담은 국가에서는 실업자를 도와주지 말라고 했어요. 실업자는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어서 말이지요.
하지만 힘없고 가난한 사람이나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이기에 이런 사람을 나라에서 도와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과연 일할 능력이 있는 실업자와 일할 능력이 없는 가난한 사람의 구분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모호한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자의적 실업자와 타의적 실업자는 어디에 포함시켜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시대 변화를 감안해서 생각해야 하겠지요?
어찌되었건 벤담이 말하는 궁극적인 행복, 즉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공공의 행복, 진정한 행복을 위하여 우리가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건 변함 없는 진리일 테니까요.

이렇게 중간 중간에 철학 돋보기라는 코너를 두어 벤담의 철학이론이 나오게 된 시대적 배경과 상황에 대한 이해에 도움을 주고 있어서
철학에 대하여 더욱 깊이 있는 배경지식을 얻기에 충분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