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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평점 :
무라카미 하루키가 9년만에 낸 신작 소설집으로 총 7편이 들어 있어요.
<여자 없는 남자들>이란 제목을
보고, 어떤 주인공들이 나올지 대략 짐작은 갔지요.
대부분 중년의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제목처럼 모두 여자를 떠나 보냈거나 떠나 보내려는 남자가
주인공이랍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는 미사키라는 20대 중반의
여성 운전사를 고용한 가후쿠의 이야기예요. 무뚝뚝하고 말수도 적고 애교도 없는 미사키였지만 이동
중 차 안에서 가후쿠는 아내가
죽기 전 잠자리를 같이했던 남자와 친구가 된 이야기를 씁쓸하게 주고받으며 조금씩 위로 아닌 위로를
받아요..
"부인은 그 사람에게 애당초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던
게 아닐까요?" 미사키는 매우 간결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잤죠." -
59쪽
제목이 특이한 만틈 내용도
흥미로웠던 '독립기관'은
52세 성형외과 의사 독신남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요. 그는
남편이 있는 한 여자를 만나고, 만날수록 그녀에게 빠져들어요. 그녀를 만나면 스스로 중증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숨을 쉴수가 없고,
당장이라도 가슴이 둘로 갈라질 것만 같다고도 해요. 그러나 결국 그녀와
연락이 끊기면서 안타깝게도 상사병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요. 그 여자가 독립적인 기관을 사용해 거짓말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독신남은 본인의
의지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독립적인 기관'이 작용하면서 치명적인 사랑에 빠져 죽음까지 가게 된 것이지요.
'독립기관'이라는 표현..왜 이리 공감이 가는지요. 여자뿐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나 어느
구석 하나에는 '독립기관'을 갖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모든 여자는 거짓말을 하기 위한 특별한 독립기관을
태생적으로 갖추고 있다, 는 것이 도카이의 개인적인 의견이었다.(중략) 그리고 그런 때 대부분의 여자들은 얼굴빛 하나,
목소리 하나 바뀌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그녀가 아니라 그녀 몸의 독립기관이
제멋대로 저지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 166쪽
정말 흥미롭게 읽은 '사랑하는 잠자'
이 이야기는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소설 속 세계를 무대로 하고 있어요.
<변신>에서 주인공은 어느 날 아침 벌레가 된 자신을 발견하지요.
벌레라는 실체를
통해 현대 문명 속에서 기능으로만 평가되는 인간이 자기 존재의 의의를 잃고 사라져 버려요. 인간 상호간은
물론, 가족간의 소통과 이해가 얼마나 단절되어 있는가를 말하고 있지요. 이 소설은
무언가가 '그레고르 잠자'라는 사람으로 변신(?)한 내용이에요. 이 역시
<변신>에서처럼 소통의 단절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지만 <변신>과는 다르게 소통의 단절에서부터 출발하여
세상 밖으로 나아가는 준비를 해 나가는 긍정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는 점이 달라요. 세상
밖에서는 무서운 일이 진행되고 있는 난리통이고, 가족들 모두 어딘가로 나가고 없는 빈
집에서..잠자는 혼자서
자신이 누구인지, 왜 방에 갇혀 있었어야 했는지, 알지 못하지요...하지만 눈을 뜨고 몸을 움직이는 방법을 스스로 익혀
일어나 비틀비틀 한걸음씩 걸으면서 2층에서 내려오고 가까스로 옷을 찾아 입어요.
그리고 방 안의 도구들과 익숙해지기 위한 노력, 차려진
음식을 먹는 모습 등을 보여요..잠자를 주인공으로
그린 이 소설에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또한 그려져 있어요. 음식 냄새를
따라가 식탁 위의 음식을 먹으며 배를 채우는 식욕..
고장난 자물쇠를
고치러 온 20대 중반 열쇠수리공 아가씨에게 느끼는 성욕..
인간이기 이전에
무엇이었는지는 추측에 맡길 일이지만 '그레고르 잠자'는 여성과의 대화를 통해 인간의 언어에
대해서도 상황과 문맥에 맞는 추측을 하며 배워 나가지요.
무언가 엄청
어색한 모습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인간 세상에 하나씩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세상은 그의 학습을 기다리고
있다고
마무리되는 이야기의 끝..이후가 더욱 궁금해지는 이 소설, 소설가치고
상상력이 그닥 풍부하지 못한 하루키여서인지 독자의 상상에 이후를 맡기는 묘미를 두었다고 할까요~
자신의 소설에 카프카의 소설속 무대를 등장시킨 하루키는 카프카의 영향을 받은 작가로 유명해요.
요 내용을 읽으면서 자신의 소설의 모티브로 삼을 만큼 카프카의 영향을 받았다면 분명 카프카와 하루키의 공통 분모가 있을 것 같아 내친김에 카프카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네요.
문학 평론가들은 카프카와 하루키의 비슷한 면모로 '아버지와 관계'를 꼽고
있더라고요.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기를 원했지만 문학을 추구한 카프카가 아버지와 원만하지 않은 관계였듯이
부모가
모두 교사인 무라카미 하루키도 아버지와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미국 대중 소설을 탐독하게 되고 재즈바까지
운영하였지요..하루키의 아버지는 그의 결혼식까지 참석하지 않았대요. 게다가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작품을 읽지 않았다고 하니 이런 면에서 프란츠 카프카와 하루키는 비슷한 면모를 보이고 있네요.
문학적으로도 자신의 억압된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점을 보인다고 할까요?
<여자 없는 남자들> 이전에 마지막으로 읽은 하루키 작품이 약간 기대에 미치지 못했었다는 기억인데,
요 작품으로 내 맘속 하루키의 기대치가 다시금 차올랐네요.
여자 없는 남자들뿐 아니라 여자 있는 남자들도 읽어 볼 만한 소설이랍니다~^^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그건 여자 없는 남자들이 아니고는
이해하지 못한다. 근사한 서풍을 잃는 것. 열네 살 을 영원히 빼앗겨 버리는 것, 저 멀리 선원들의 쓸쓸하고도 서글픈 노랫소리를 듣는
것. 암모나이트와 실러캔스와 함께 캄캄한 바다 밑에 가라앉는 것...(후략) -
327쪽
음,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는 것을 어떤 말로 정의를 두고 싶은지 저도 가만히 생각해 보았네요..
근사하게 차려입은 양복, 뒷주머니에 치렁거리는 실오라기의 모습을 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