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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ㅣ 역사 ⓔ 1
EBS 역사채널ⓔ.국사편찬위원회 기획 / 북하우스 / 2013년 2월
평점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에는 좀 어렵고 고리타분한 역사 이야기면 어쩌나..내심 걱정을 했으나 기우에 불과했다. 다른 책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활자와 빡빡한 글임에도 불구하고 술술 너무나 흥미롭게 역사 속에 푹 빠져 읽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책에 들어있는 사건들은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서도 보고 기념일마다 신문이며 인터넷이며 어디서든 들어보고 사진으로도 접해 본 대중적인 내용이지만 사건 속으로 들어가 핵심을 파악하고 배경을 다시금 되짚으며 좀더 깊이 있는 역사로 접근하고자 하였고 교과서 속에서만 읽힌 편협된 시각이 아닌 그 이면을 다각도로 분석한 점을 높이 사고 싶다. 그리고 그때 그 시절에 국한된 낡은 역사가 아닌 현재 재조명되고 있는 사건들과 인물들을 소개하고 다시금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적 지식을 머릿속에 채워넣어 주고 있다.
이면 지도자라고 평가받고 있는 우당 이회영 이야기를 시작으로 하고 있다. 1906년 국운이 풍전등화와 같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당시 상동교회를 중심으로 우당 이회영, 이동녕, 양기탁, 그리고 상동교회에서 선교활동과 애국운동을 주도하는 전덕기 목사 등이 모여 전국적 비밀조직인 신민회를 조직하지만, 1910년 한국강제 병합으로 우당의 국내 활동은 어려움에 처하여 서울을 떠난 일행이 독립군 양성을 위해 후에 신흥무관학교로 개칭된 신흥강습소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한두줄 정도로 요약하여 달달 외웠던 기록을 당시의 배경과 더불어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노라니 지루하기만 했던 역사 시간이 저만치 달아났다.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어 오늘날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광해군 이야기는 또 어떤가. 오랫동안 그는 폭군이라는 수식어가 따랐지만 최근엔 중립외교의 뛰어난 전략을 펼친 명군으로 조명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광해군이 세자로 급작스럽게 책봉된 이유를 처음 알게 되었다.(나만 몰랐던 건가^^) 임진왜란으로 어지러운 상황에 선조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왕위를 이을 세자를 책봉해야 하는 처지에서 후궁들의 아들 가운데 가장 영특하다고 여겼던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한다. 그런 어지러움 속에서 광해군은 세자로 인정받았지만 선조는 백성들이 자신보다 광해군을 더 믿고 따르게 되자 그를 시기하며 멀리한다. 선조가 죽고 선조의 세 살배기 아들 영창대군을 따르는 세력들이 커지고 그를 옹호하는 역모 사건이 일어나면서 광해군은 영창대군을 죽게 만들고 생모를 서인으로 격하시키고, 외할아버지에게는 사약을 내리는 사건을 거치며 그는 포악한 임금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조선에게 쏠리는 위험을 덜 수 있는 방식으로 중립외교를 선택했다고 광해군일기에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생을 돌보고 국가재정을 안정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명분론에 사로잡힌 서인 세력에게 광해군은 패륜아로밖에 보이지 않아 끝내 광해군을 권좌에서 내려오게 만든다. 성군인가 폭군인가 하는 평가는 섣불리 단정지을 수 없으나 적어도 나는 기회주의 외교라는 광해군의 비판에 대하여 그건 당시의 상황을 고려한 광해군의 어쩔수없었던 전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라는 망해도 역사는 인멸될 수 없다."라는 말은 실록의 중요성 강조한, 세계기록 유산인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내용도 눈에 띤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를 500여 년간 지탱시킨 힘이었다. 국왕의 언행이 낱낱이 기록되어 후세에 공개되는 것은 실로 보이지 않는 권력의 견제 장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는 객관적이고 믿을 만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 가치가 빛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기록 역시 후대에 남을 것이다. 지금 선봉에 선 지도자들은 후대에 어떤 명예로움을 남기고 싶은지를 생각하여 사소한 말과 행동을 섣불리 해서는 안 될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더욱 흥미로웠던 건 조선인 김충선과 일본인 사야가, 이 생소한 두 이름이었다. 임진왜란을 명분없는 전쟁으로 본 일본인 사야가는
“전쟁중에 본인의 목숨보다 부모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고 늙은 부모를 등에 업고 도망치는 조선인의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다."
라고 말하며 김충선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에 귀화한다. 그리고 5백여 명의 부하들과 함께 조선의 편에 서서 자발적으로 참여한 의병들에게 조총의 사용법뿐 아니라 화약 제조기술을 전수하며 싸움을 해 나간다.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이순신과 함께 큰 활약을 하기도 한다. 7년의 전쟁이 끝난 후 서른 살의 김충선(사야가)은 북방의 국경을 지키고 정묘호란에도 전장에 나섰으며 큰 성과를 올리고 이후 후학을 양성하다 제2의 고향 조선땅에 묻혔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격대교육'이라는 생소한 말도 알게 되었다. 격대교육은 할아버지가 손자를 가르치는 최고의 교육법이라고 한다. 그 모범적 사례로 노벨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피에르 퀴리 가문과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회장 빌 게츠의 가문을 들고 있다. 빌게이트는 “할머니와의 대화가 독서가 나를 만들었다.”고 회고할 정도라고 한다. 앞선 세대의 풍부한 지혜와 경험을 대물림해 준다는 차원에서 소중한 우리의 교육법이 아닐 수 없다. 어찌보면 따분할 것만 같은 우리 옛 가르침이지만 모든 예절과 바른 몸가짐의 출발점이자 그 뿌리가 아닐까를 생각하니 격대교육의 중요성을 짐작할 만한다.

이밖에 조선후기 회화의 전성기를 누볐던 정선, 심사정 김홍도, 신윤복, 왕을 위해 목숨을 바친 왕의 남자, 신분상승을 위해 성을 버리고 왕의 남자가 된 환관의 인생, 뤼순감옥에서의 안중근의 최후..조선의 이방인 백정의 삶 등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할 역사 속 역사 이야기를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나라가 독립이 되면 조선의 땅에 묻히고 싶다던 안중근의 유언.. 그 유언을 100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들어주지 못하고 있는 점은 심히 안타까운 사건이다. 안중근 의사의 순국 100주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딘가에 흩어져 있을 그의 유해를 생각하니 죽음 앞에서도 나라의 평화 정착만을 생각했던 위인의 이름 앞에서 더없이 숙연해진다.
이 책은 우리가 알던 역사의 틈바구니를 파헤친 과거의 역사에 대한 해석을 통해 현재 우리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무엇을 기억해야 할지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 준다. 책을 읽고 '아, 내가 얼마나 역사에 대해 무지했는가'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어서 뜻깊었다.
듬성듬성했던 나의 역사적 지식의 빈자리가 채워지는 느낌, 참으로 오래간만에 느꼈다.
고리타분하고 낡은 역사가 아닌 진정한 역사를 다양한 실사 자료와 더불어 알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 글의 끝부분에는 민간단체의 활약으로 95년 만에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왕실의궤 167권이 반환된 내용이 실려 있다. 현재에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우리 문화재는 곳곳에 많이 있다. 아직 갈길은 멀지만 문화재는 원산국 국민의 권리이며 문화적 정체성을 복원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우리의 슬픈 역사가 다시금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문화재 환수를 위한 정부와 민간 단체의 노력은 절실히 필요하다. 이 부분이 생소하지 않게 다가온 건 저자가 참고자료로 사용한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_혜문_작은숲>이라는 책이었다. 출판사를 그만두고 단행본 외주를 처음 맡아서 진행한 책이었다. 이 책을 편집하며 '우리나라 문화재가 외국에 이렇게 많이 있구나..'를 알고 실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그 내용을 접하니 가슴한켠이 아리면서도 왠지 모를 므흣한 마음이 들었던 건 내가 정성들여 편집한 책이 저자의 참고자료로 채택된 영광의 기쁨에서 온 것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