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내가 온다 : 터키, 살며 사랑하며 운명을 만나며 - PARK BUM-SHIN'S TURKEY IN DAYS
박범신 지음 / 맹그로브숲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박범신이 수년 전 한 방송사의 제작팀과 동행해 터키의 여러 지방을 여행하면서 느꼈던 단상을 정리하고 다듬어 에세이로 엮은 것이다. 터키 여행은 이스탄불에서 시작하여 보스포루스 해협을 거쳐 아나톨리아 중부 고원지대를 지나고 지중해 남부 해안을 돌아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책을 읽으며 2006년으로 난 다시 돌아가 있었다. 퇴사를 하고 난 후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찾던 중, 마침 터키 여행 책자를 접했고, 고민 끝에 터키로 9박 10일간의 짧지만 긴 여행을 떠났더랬다. 일정에 맞는 것을 찾다가 선택한 터키였기에 미리 알고 있었거나 준비한게 별로 없던 터였는데, 그렇게 시작된 터키 여행은 내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안겨 주었다.

책을 통해 작가의 여행 경로를 따라가자니 ‘내가 갔던 그 여행사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슷했기에 더더욱 그때의 느낌이 다시금 생생히 되살아났다. 더군다나 같은 곳을 바라본 그 감동을 언어로 표현한 그 시적 감각이야말로,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내가 그곳을 직접 봤기에 작가가 말하고 있는 그 감동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에 더욱더 그러한 감정이 느껴졌을 수도 있다. 작가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치 시를 보는 듯 아름답다.

 

이스탄불 소피아 성당은 비잔티움 건축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건축물로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성당으로 알려져 있다. 성소피아 성당의 웅장함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균형잡힌 구조는 최상의 미학적 가치를 보여 주고,

하늘로 솟아 둥글게 마무리되고 있는 스카이라인은

인류가 꿈꾸어 온 충만한 영혼의 가치를 드러냅니다. -33쪽

 

터키 최대의 전통 시장, 그랜드 바자르에서 저자는 여러 가지 경험을 한다. 악기 상회에 들러 재미있는 악기들을 연주해 보기도 하고 터키의 대표적 특산품인 양탄자 가게에도 가 본다.

 

“하늘을 나는 양탄자는 없나요?”

나는 한 상인에게 물었습니다.

“있었는데, 어제 마지막 한 장을 팔았습니다. 운이 없으시네요.”

상인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나는 정말 운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마지막 그 양탄자를 살 수 있었더라면, 단번에 사랑하는 서울의 당신에게 날아갈 수가 있었을 텐데요.

아닙니다.

그림움만 깊다면야,

아무리 지구의 반대쪽에 있다 한들,

내 어찌 당신에게 날아가지 못하겠습니까?

그리움이야말로 하늘을 나는 가장 빠른 ‘양탄자’이겠지요. - 63쪽

 

 

이 어찌 감탄이 절로 나오는 표현이 아니겠는가.

그랜드 바자르, 정말 없는게 없는 시장이었다. 그곳을 지나며 이것저것 눈으로 구경하고 손으로도 만져보며 싸게 살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만 생각하며 구경했던 기억이 난다. 똑같은 곳을 보고도 작가의 시선과 그냥 관광객에 지나지 않는 나의 시선 차이가 명확하게 구분된다. 무튼 작가의 언어 예술성에 박수를 보낸다.

 

터키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을 꼽으라면 단연 ‘카파도키아’를 들 수 있다. 작가 역시 그곳에 대한 단상을 절정으로 해 놓았다. 카파도키아는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중동부를 일컫는 고대지명인데, 수천 개의 암석에 굴을 파서 만든 대규모 기암지대와 로마시대 탄압을 피래 몰려와 살았던 크리스트교인들의 유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카파도키아에 가면,

두 개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됩니다.

하나의 세계는 일상으로 열린 지상의 마을이고, 또하나의 세계는 역사와 영혼의 밑바닥으로 이어지는 지하마을입니다.

대지는 불타지만 지하마을은 고요합니다.

대지는 황량하지만 지하마을은 오밀조밀합니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신을 만나거나 느낄 수 있습니다. -108쪽

카파도키아 열기구 체험

 

 

책의 중간중간에 작가의 육필이 들어가 있어서 그 느낌을 더욱 생생하게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글씨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여행의 설렘과 감동이 더욱 진해지니 말이다.

 

작가는 카파도키아의 풍경을 보며 그것은 터키의 것이라기보다 보는 이의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행을 하든 책을 읽든 그것에서 느끼는 감동이나 생각은 역시 보는 이, 읽는 이의 것이다. 왜 나의 그것과 같지 않은지 따져 물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나의 터키 여행과 작가의 터키 여행은 같은 곳이지만 느낌이 온전히 같지만은 않다. 하지만 작가의 여행 경험을 통해 나는 또 다른 감동을 받았다. 터키를 두 번 다녀온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그곳의 감동을 이런 느낌으로 풀어낼 수도 있구나.’를 느끼며 책속 터키에 푹 빠질 수 있었다.

작가는 여정의 기록과 느낌을 전하며 꿈과 삶의 여유를 이야기하고 있다. 짧은 시간이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책속 여행을 통해서라도 여유를 만끽해 보자. 삶이 힘겹다면 위로가 될 것이고 삶이 그냥 그렇다면 활력을 줄 것이며, 삶이 만족스럽다면 갑절의 행복을 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터키 여행을 꿈꾸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기회가 있다면 다시 터키행 비행기에 오르고 싶을 정도로 터키는 한번 다녀올 만한 곳이다. 다만 터키는 광활한 분지를 열 시간 이상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달려야만 멋진 관광지에 도착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에너지가 있을 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다녀오면 좋을 것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

 

터키 여행을 다녀온 사진 한 장으로 추억을 다시금 더듬어 본다.

신비한 기암괴석이 가득했던 카파도키아 절경_정말이지 신의 손길을 느꼈던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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