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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에 대하여 - 판타스틱 픽션 WHITE 1-1 ㅣ 판타스틱 픽션 화이트 White 1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송정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내가 ‘케빈에 대하여’라는 영화를 봤는데, 혹시 시간되면 봐봐.”
얼마 전 큰언니가 영화 한편을 봤다며, 뭔가 심오한 뜻을 전달하는 것 같다고,
같이 본 사람과 보고 나온 후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더란다.
그 영화 얘기를 들을 땐 그냥 무심결에 흘러버렸었는데,
책을 접하고 나서 그때 언니가 한 얘기가 다시 생각이 났다.
아, 이 책의 내용이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구나...
영화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었을까,
비극적 장면은 어떻게 보여졌을까..
에바에 대하여
에바는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여행가의 직업을 갖고 있다.
일과 자유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에바는 아이 갖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에바는 원하지 않는 아이를 임신했고, 케빈을 낳았다.
임신과 동시에 그녀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뱃속에 아이가 생긴 것을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임신으로 인해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짐을 불만스러워했고,
자신의 좌절된 꿈과 부정적 감정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불러오는 배를 보는 것 또한 싫어했다.
임신을 기뻐하는 남편 또한 원망할 정도로..
그녀는 그렇게 준비도 없이 탐탁지 않게 엄마가 된 것이다.
케빈을 낳던 날, 힘겹게 낳은 아이를 배 위에 올려주던 그 시간..
정말이지 축복과 사랑..환의의 만남이 되어야 하는 시간, 에바는 느낀다.
아기는 자기를 보고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고..
그리고 에바는 아기가 자신의 젖꼭지에 입술이 닿는 순간 불쾌해하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고..
어쩌면 그 순간부터, 아니 에바는 케빈의 존재를 안 순간부터
케빈을 거부하고 퇴짜놓았을지도 모른다.
태어나자마자 둘의 삐그덕거림은 이렇게 시작된다..
에바는 자신에게만 유독 자폐증세를 보이고, 음융한 웃음을 짓는 케빈을 자꾸 떠밀면서도
최대한 엄마 역할을 다하려 애썼다. 노력했다. 에바로서는 충분히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에바는 단 한번도 가슴을 열고 아들을 받아들인 적이 없었던 건 아닐까..
에바가 다다갈수록 케빈은 뒷걸음쳤고,
가까이 할수록 가까이 할 수도 없는 어려움이 둘 사이를 늘 막고 있었다.
어느 날, 에바는 열네 살짜리 케빈과 시간을 보내보기로 결정하고, 데이트 신청을 한다.
얼마를 망설이고 고민하고 한 말인데 케빈은 “뭐하려고.”로 일축해 버린다.
둘만의 저녁나절을 보내려고 스케줄을 정하고 나서지만
케빈은 마치 징역을 치르기 위해 끌려가는 죄수처럼
침울함을 억누르는 표정으로(책 내용 발췌) 들어선다.
아니나다를까, 에바가 정한 스케줄들은 모두 케빈에게 의미없는 것들이 되었고,
하나부터 열까지 서로를 빗나가는 대화들로 점철되었다.
내가 입을 열었어. 레스토랑에 있으면서 왜 난 먹는 것에 대해 미안해했을까?
“학교엔 별일없지?”
“별일없지.” 그 애가 대답했어.
“그것 말곤 물어볼 줄 모르지.”
“더 자세한 것도 물어볼 수 있어.”
“시간표 알고 싶어?”
“아니.”
난 결코 짜증을 내고 싶지 않았어.
--426쪽 중에서
에바와 케빈에 대하여
에바의 케빈에 대한 노력은 사랑 없는 노력이었다. 적어도 내 시선에서는 말이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사랑을 모르고 자란 탓에 적대감 가득한 아이로 자란 케빈은
어릴 때부터 "엄마"라는 단어를 거부했다.
케빈은 엄마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망가뜨리면서 희열을 느꼈고
그러한 행동을 통해 엄마를 고통과 공포로 몰아넣는 것을 통쾌해했다.
아이를 원하지 않은 엄마와 그렇게 태어난 아이의 서로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은
결국 열여섯 살 케빈을 살인마로 만들고 만다.
케빈은 아버지와 여동생, 학교 친구들을 살인하는 충격적인 사건을 벌인다...
열여섯 살짜리의 살인행위, 그러한 끔찍한 행위에 쓰인 살인도구는 아빠가 선물한 그것.....
아..충격 그 자체..책을 통해 살인의 장면이 생생히 전달되어 오면서..
나의 눈동자도 흔들렸다..
과연 무엇이 케빈을 그렇게 만든 것일까..
살인마 케빈을 바라보는 에바의 쓰린 마음도 이해가 되고,
그런 악의 불씨를 서서히 커지게 만든 환경에서 자란 케빈도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누가 더 잘못을 했는지를 따지고 싶지는 않다.
다만, 에바와 케빈 모두 사랑이라는 감정에 충실하여
좀더 서로를 알아가려 하고 그 둘의 삐걱거림을 아빠 프랭클린이 적극적으로 도왔다면
적어도 살인이라는 끔찍한 결과로 이어지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들을 면회 가는 에바의 마음은 어떨까..
과연 케빈은 다시 사회에 나와서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나갈 수는 있을까.
인생은 순간순간이 모여 하나의 긴 시간을 이룬다는 생각이 든다.
한 순간도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될 것이다.
순간의 선택, 선택을 한 그 순간도 모두 내 삶의 밑거름이 되기에
선택을 한 후의 후회 또한 내 몫이다.
그러한 후회를 줄이기 위해, 그리고 후회스러운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해
찰나의 순간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비록 내가 원하지 않은 것을 해야 할 때가 있더라도,
긍정의 마음을 갖고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도저히 내 힘으로 부족할 때에는 가족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서로 도와나간다면
적어도 비극으로 치닫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 아이의 인생도, 한 엄마의 인생도..
엇나간 두 사람의 삶이 너무나 안타깝고 안쓰러워 슬프기까지 하다.
과거 TV프로그램 <인생극장>에서 이휘재가 “그래 결정했어!”라는 순간으로
케빈과 에바를 되돌릴 수 있다면 이 둘의 삶을 되돌려놓고 싶다.
케빈을 임신한 그 순간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던 에바, 작은 괴물 케빈이 아닌
엄마가 되고 싶었던 행복한 에바와 작은 천사 케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