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던 여자와 뱃속의 아이를 교통사고로 잃고 집안에서 권하는 데로 정략결혼한 차진혁.5년째 제 옆에서 조용히 지내던 아내 성혜민이 다쳤단 소식에도 귀찮음을 느끼며 병원으로 향하는데....병원에서 마주한 건 단정하고 완벽한 인형같은 성혜민이 아니라 맑은 표정의 가녀린 지고은.기억상실이라는 아내는, 여리고 솔직한 성격을 드러내며 진혁의 마음을 뒤흔드는데~친정에 데려다주고 짐 벗으려던 진혁의 마음이 불편해지도록 아내에게 찻잔을 집어던지는 장모의 우악스러운 태도에 놀라, 아내를 데리고 다시 집에 온 진혁은 자신을 아저씨라 부르는 어린 아내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게 없음을 개탄한다.자신의 사랑은 하나뿐이라 믿고, 마음을 닫고 살아온 남자... 사고로 기억을 잃은 아내의 새로운 모습을 보며 깨닫지 못했던 사랑을 알아가는 남자의 이야기.초현 작가님 전작들을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어서, 이북 출간을 너무 기다렸던지라 냉큼 읽어보았다.그런데 기억상실만으로도 모든게 두려울 여자는 자신의 이름이 왜 성혜민인지... 지고은으로서의 자신은 어떻게 없어진 것인지 고민하지 않는다.그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고 마는 혜민의 모습이 의아하게 느껴지니, '어쩌면 난 아내를 처음부터 좋아했을지 몰라' 하고 생각하는 남자의 속마음도 개연성 없이 느껴졌고, 책 전체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읽게 되더라는.뒤바뀐 신생아... 집안 내력인 유전병으로 인해 아이가 바뀐 사실을 깨닫고 아이들을 뒤바꾼 부모들.자신의 친자식이 아님을 알고 있던 혜민의 양부모의 태도는 약간 이해가 가지만... 사랑으로 키운 딸을 떠나보내고, 돌아온 친딸을 학대하는 혜민의 친부모는 뭔 생각인 걸까?그런 환경에서 숨죽이고 살아온 혜민이 결혼 상대자가 기억 속의 풋사랑인 진혁이라는 이유로 선택한 결혼.죽은 첫사랑을 가슴에 품고사는 진혁과의 결혼을, 노력만으로 이루려는 무모한 결정을 했다니 참 답답하다.기억상실과 뒤바뀐 아이라는 흔하면서도 흥미로울 클리셰.그러나 죽은 아내만 그리워하던 남자가 혜민에 대한 사랑을 새롭게 깨닫는 과정도, 하루아침에 바뀐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는 혜민의 심리도 전혀 공감이 가질 않았고.진혁의 첫사랑을 끌어내려서 혜민의 사랑을 빛나게 했어야 했는지는 좀 껄끄러웠다.잘읽혀서 좋았지만 의아함도 많았던 이야기
과천 관물골 허 진사 댁 독선생 송정연.꽃놀이를 나섰다가 강아지 눈이가 쏙 튀어나가는 바람에 말 달리던 남자가 놀라서 낙마하게 되고.... 다소 짓궂은 남자의 말투에도 어딘지 설레었던 정연은 집에 돌아와서야 그 남자가 오랫동안 집을 비웠던 허진사임을 알게 된다.가난한 양반가의 자식 송정연.외숙모의 구박을 견디다 양반 댁 말동무로 보내져 친구 홍주를 만났고, 몸이 불편한 홍주와 바깥세상을 꿈꾸며 이야기를 지어 소설책을 써낸다.비록 홍주는 세상을 떠났지만 서로의 이름을 따 '홍연랑'이라는 필명으로 써내는 소설책은 큰 인기를 얻을 정도~靜淵(정연)뜻은 고요한 연못이나 깊다 못해 푸르다.어려운 형편에, 여아로 태어났음에도 굴하지 않고 제 인생을 만들어나가는 의지 강한 여인.그런 정연이니, 곱게 분 단장이나 하던 여염집 여인들과는 다른 생생한 생기와 총명함이 인우의 시선을 끌 수밖에.仁雨. 어진 비... 이름은 그러하나, 가슴에 품은 한으로 거친 폭우 같은 남자.재능과 외모를 겸비했으나, 친우에게 배신당해 여동생의 삶이 망가지고,부모님을 잃게 되었다. 그 이후 오로지 복수에의 일념으로 버티며 살던 인우는 정연을 만나 자신을 좀먹던 복수심을 내려놓게 된다.이야기가 낯설지 않은 이 느낌 뭐지? 하였더니... 작가님 후기를 읽어보니 알겠더라는~개인적으로 힘겨울 때 의지가 되었던 '제인 에어'를 모티브로 쓰셨고, 그런 의미로 샬롯 브론테에게 보내는 팬 레터라고 하신다.인우의 복수 면에서는 이야기가 싱거울지 모르겠다.그러나 사랑하는 것보다 갑절의 힘이 드는 미움과 증오를 내려놓고서야 온전한 삶을 살게 되고, 그것만이 바른 복수임을....원주희 작가님의 간만의 신간.간이 슴슴한 나물처럼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씹을수록 감칠맛 나는 문장들이 매력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