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이랑 삼성전자는 걱정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삼성전자는 숱한 위기를 겪으면서도 그 위기를 해쳐 나가며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등으로 우뚝 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삼성전자와 관련된 기사를 보면 연관 단어는 "위기"다. 과연 이번 위기도 순조롭게 극복하고 다시 1등 기업의 위상을 찾을 수 있을까?
이번 책 삼성전자 시그널은 지금의 삼성전자가 어떻게 위기에 빠지게 되었는지 작가 나름의 내공으로 근거를 추적한 책이다. 먼저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1등에 오른 것은 실력과 운 모두 받쳐준 덕분이다. 삼성전자가 처음 반도체 진출을 선언했던 1970년대 중반, 외국의 반도체 기술자들을 영입하고 공장을 건설할 때 삼성 내부적으로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그전까지 반도체는 기술이 뛰어난 선진국이 만들 수 있는 제품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우리나라는 이제 막 기초 제조업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던 때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고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를 고집했고, 당시 메모리 반도체 강자였던 일본을 제치고 1등 기업이 될 수 있었다. 물론 미국에서 초빙한 기술자들의 공로가 단연 1등이지만, 사실 시대적 변화도 한몫 했다. 바로 1985년 이루어진 플라자 합의가 그것이다. 플라자 합의 덕분에 일본의 엔화는 엄청난 평가 절상을 맞이했고, 수출 경쟁력은 급격히 하락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환율은 그대로였기 때문에 반사이익을 얻어 수출 경쟁력이 높아졌다. 적절한 타이밍에 경쟁국 일본이 가격 경쟁력을 잃은 덕분에 그동안의 기술 개발이 빛을 받을 수 있었고,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1등 기업이 되었다. 그리고 삼성은 가전, 메모리 반도체, 스마트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력을 자랑하는 기업이 되었다.
반대로 소프트웨어에서 경쟁력은 약했다. 태생적으로 하드웨어 기업이다보니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잘 이해하지 못했는지 안드로이드를 인수 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치고, 애플처럼 스마트폰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기회도 놓쳤다. 그리고 지금 AI 시대가 되면서 각광받는 HBM의 선구자가 될 기회 역시 놓쳤다. 무엇이 그 이유였을까?
저자는 그 이유를 삼성의 보수적 관료화와 경직된 구조를 원인으로 꼽는다. 먼저 현업 엔지니어의 의견보다 재무적으로 이득이 되는지 아닌지를 우위에 놓고 의사결정을 하는데, 이 경우 실제 현업에서 활약하는 엔지니어의 좋은 아이디어는 사장될 확률이 높다. 그렇게 되면 결국 기술 개발을 업으로 삼는 엔지니어의 사기는 떨어지고, 결국 인재가 유출되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되어 조직 전체가 경직된 구조가 되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삼성전자가 새로운 동력으로 내세운 파운더리 분야는 사면초가 상태에 빠졌다. 파운더리는 태생적으로 을의 입장이다. 파운더리 회사는 결국 고객의 수요에 맞춰서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만들어 주는 게 지상과제다. 그럼에도 삼성전자는 자사 파운더리에서 발생한 문제를 고객의 탓을 하며 책임소재를 가리는데 중점을 두었다. 반면 TSMC의 경우 같은 상황에서 고객사에 엔지니어를 파견하고 협력하여 설계 단계부터 하나씩 협력을 하면서 문제를 해결했다. 만약 내가 고객사라면 TSMC와 협업을 하지 삼성전자와 협업을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즉, 고객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사람들이 고객에게 삿대질을 하며 잘잘못을 따지는 형국이 되었던 게 문제였다. 그 과정에서 삼성전자의 문화가 이러한 결과를 내놓은 게 아닌가 싶다.
결국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처럼 삼성전자는 잘못된 인사정책과 보상정책, 그리고 구조적으로 위기에 빠진 형국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삼성전자는 아직 우리가 잘 모르는 분야에서 다양한 투자와 지원을 하고 있는 회사다. 분명 미래를 대비하고 있으면서 아직 그 때가 오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현재까지의 FACT만 놓고 보면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과연 삼성전자는 다시 비상할 수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기술 분야에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는 연구원들이 혁신적인 성과를 이룬다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기를 빈다.
책에서는 이처럼 삼성전자 과거의 영광과 현재 고비의 원인을 꽤나 상세하게 담고있다. 현재 삼성전자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보고 싶다면 정리가 잘 된 이 책을 한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