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대의
지젤 알리미 지음, 이재형 옮김 / 안타레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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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이런 책을 참 읽기가 싫었다. 지금보다 더 야만인 시대에 온 몸으로 싸우고 지지 않은 언니들의 온갖 고생과 괴로운 이야기를 읽는 게 싫었다. 언니들은 지지 않은 것도 모자라 그것을 다 꺼내어 하나하나 기록하고 책까지 써서 우리들에게 주었다. 이 책의 지젤 알리미처럼 심지어 얼마전에 작고하고 나서야 그의 존재를 알고 이제서야 읽는 더 야만인 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이 책의 수많은 고통과 싸움은 단절된 과거가 아니고 지금도, 최소 동시대의 절반 이상은 언니들이 싸운 시간보다 같거나 느린 야만의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여성들도 있다. 그리고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면, 형태는 달라도 본질은 같은 삶을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내가 있다. 언니들이 몸과 정신, 그리고 마음을 모두 던져 일생을 살았음에도 내가 그 비슷한 세상에서 비슷한 삶을 살았고, 나보다 더 고통스럽게 사는 여성들이 훨씬 많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어서 이런 책을 참 읽기가 싫다.

언니들이 이렇게까지 살았어 그런데 너 뭐하고 있어 내 속에서 고함치는 비난이 듣기가 싫다. 날쎈 몸으로 빠르게 뛰어서 얼른 승리를 거머쥐고 싶은데 너무 느리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내 몸이, 마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꿈에서처럼 답답하다.

책의 뒷면에 있다.

“나는 정의가 아닌 것을 참을 수 없어요
이것으로 내 일생을 요약할 수 있습니다”
_2019년 8월 <르몽드>와 생애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의 얼굴과 눈빛이 보이는 사진도 있다.

그의 말과 모습을 보고, ⸢여성의 대의⸥라는 제목도 되뇌어보면,
그리고 내 속의 아우성과 응석을 받아주지 않고 책을 읽다보면 어느 새 책은 귀퉁이마다 접히고 밑줄을 긋다가 포기하고 문단을 세로로 묶어 버리기도 한다.
아무 말도 없이 읽기만 할 수가 없어서 내 말도 적어본다.
한 챕터를 그렇게 운동하듯이 읽고나니 활력과 에너지소모가 주고받다가 결국 지쳐서 한 챕터까지 읽고 멈췄다.

대체 이 세상은 무엇이고, 여성이 무엇이길래 이런 여성 이런 인간을 이렇게까지 하게 하는가. 어째서 끊임없이 이 인간을 때리고, 이 인간은 한번도 지지 않고 일어서는가. 몇 치 앞을 내다보는 우수함과 자기자신을 아는 강력한 힘이 이 여성의 대의의 발로인가. 안 우수하고 자기자신을 잘 모르는 보편적인 우매함으로 그저 그 하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안 됐나?
--------------------------------------------------------------------아래는 책 속에 제 울분을 끓이다못해 증발시켜 버린 문장들을 그대로 옮겨 적었습니다. 미리 읽고 싶지 않으시면 스킵해 주세요.

“나는 싸우기로 했다. 나만을 위해 싸우지는 않을 것이다.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 싸울 것이다."

”어머니는 종일 우리를 돌보고 집안 살림을 하느라 뼈가 빠지도록 일했다.”

“다른 사람이 번 돈을 써야 한다는 것은 여성에게 내려지는 진짜 저주다.”

“나는 좋든 싫든 내 길을 가기로 했다.”

“자신이 남자든 여자든 내 삶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증명하면 되는 것이다.”

“처음으로 책을 읽었을 때 나는 마음이 무척 편안해지고 단단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 여성으로 태어난 압도적 무게에 저항할 힘을 이 세계에서 끄집어냈다.”

“새로운 삶이 수월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나는 삶의 에너지를 내가 선택한 두 가지 길에 모두 쏟아부었다.”

“세상은 정치적 투쟁에 뛰어든 여성을 어떻게든 배제하고자 수동성, 관성, 무기력을 이용한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나는 다짐하곤 했었다. 두 번 싸워야 한다고. 승소하려면 상대측 변호사를 두 번 이겨야 한다고. 나는 우선 여자로서 상대를 이겨야 했으며, 그러고 나서는 변호사로서 상대를 이겨야 했다.”

“법정 밖의 내게는 남편, 아이들, 가정이 있었다. 나는 상대측 변호사가 잘 정돈된 서류와 함께 노트를 펼쳐 “X 사건, Y 변호사”라고 써놓은 부분에 표시하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그의 변론 준비는 완료됐다. ㅜ그는 오후 시간이 만족스러웠다. 두 세 시간 동안 효율적으로 준비했다. 이제는 편안한 기분으로 저녁 식사 시간을 기다린다. 뭘 먹지? 아이들은 학교 잘 다녀왔을까? 집에 뭐 필요한 게 있나? 이런 것들은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의 아내가 신성한 노동 분업의 원칙에 따라 그 일을 하기 위해 집에 있을 테니.
그가 그러는 동안 나는 아내이자 어머니이자 변호사인 여성에게 요구되는 모든 일을 하느라 하루 내내 정신이 없었다. 밤이 돼서야 재판 서류를 준비했다. 그러다가 새벽 두세 시쯤 되자 숙면을 취하고 있을 상대측 변호사가 부러워졌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준비하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는 지금 휘파람 불며 면도를 하고 있겠군.”
거울을 보니 눈 아랫부분이 거무스레했다. 그래도 커피를 연거푸 몇 잔 들이마셨더니 준비가 됐다고 느껴졌다. 자, 나는 이 재판에도 내 인생과 자유, 인간으로서 명예를 걸었다. 온몸에 활력이 샘솟았다. 의뢰인이 나를 신뢰해서 이 일을 맡겼다고 생각하니 밤을 꼬박 새우며 일했는데도 별로 피곤하지 않았다. 그래, 나도 준비를 마쳤다."

- 이후 독서에 따라 추가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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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개정판
강화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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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혀.. 그 동안 왜 매해 챙겨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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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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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김소영 독서교실의 김소영 선생님은 어린이책 편집자로 수년을 일하다가 어린이 독서교실을 마련하면서 꼼꼼이 시뮬레이션 했다고 한다. 그 중에 하나가 과연 반말을 쓸 것인가, 존댓말을 쓸 것인가? 그 탄탄한 고민 끝에 존댓말을 쓰기로 하셨다. 어린이 안녕하세요? 존댓말이 어찌나 다정하고 격식있는지. 글로만 보아도 내 마음을 다 뺴앗겼고 나도 어서 어떤 어린이를 만나던 아무 생각하지 않고도 존댓말 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며칠 전 독립책방지기이신 여자분이 다짜고짜 처음 본 사이에 반말하는 중년의 남성 때문에 또또 내가 만만하지 라는 반복된 상념에 지쳤다고 했던 말
그런 것도 기억이 났다.
불특정 다수를 대하는 직업이 아닌 나도 수차례 겪어서 너무나 아는 것이고, 나와 같은 한국여자들은 직업불문 한국여자면 다 알잖은가.

존댓말이 몸에 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존댓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서열을 파악하고 어휘를 고르고 감정을 조절하는 일이다.”

엄마에게 토로했다면 분명 내가 청승맞다고 했을 그런 일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일어났다. 왜 눈물이 날 것 같지 않은 문장에서 눈물이 핑 도는지 모르겠다.
이를 테면 이런 문장.
"아동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어른들은 아동의 의견을 잘 듣고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유엔 아동 권리협약 제12조)


어린이의 말이 인용되는 문장에서는
유유히 물 속에 있는 듯한 느낌, 내 속의 진짜 내가 나와서 말하는 느낌, 정말 딱 내 체온 같은 그런 온도와 마음이 느껴져서 중간중간 저자인 어른과
어린이의 말에
'나'와 '진짜 나'가 왼발 오른발 걸어오며
마지막 장까지 읽은 것 같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좋았기 때문에, 길지 않은 에피소드들을 마구마구 읽을수는 없었다, 참 이상하게도.
분명 귀엽고 순수한 에피소드인데 왜 눈물이 울컥 올라오지. 모든 감정이 눈물로 치환되는 병인가..

책을 다 읽어갈 때쯤 어느정도 소결에 도달했다. 어린이는 이 세상의 약자 중의 약자였다. 나 역시 여성으로서 약자의 정체성으로 인한 울분과 우울이 있는데
더 작고 약한 존재를 인식하고, 그들의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나의 분노가 마주하는 순간 눈물이 났던 것 같다.
그래서, 취미로 학원을 등록할 때 일단 소음으로 인한 에너지 소모를 방지하기 위해 성인 전문인지 확인하고, 4,50대 남성이 있는지를 꼭 확인하던 내가 보였다.
아이들과 섞여서 배울 수 없다는 묘한 혐오와 나를 혐오하는 덩어리 정체성을 피하려는 혐오 방어.

사실 이 책은 회사 도서실에서 빌려읽었다. 어린이에 대한 귀엽고 순수한 에피소드가 예쁜 꽃다발처럼 잘 묶인 책이리라 생각했고,
그런 꽃은 읽는 순간의 즐거움이고 두 번 보면 시들어 버리는 정말 꽃다발 같은 책이리라 생각하고 빌려 보기로 결정한 거다. 그리고 그 결정에는 정말 10초 이내의 시간이 걸렸다.
그런 나의 판단력과 편견으로 빌려 읽는 바람에,
다시 읽어야 할 문장들을 위해 접거나 마스킹 테이프를 붙이는 직관적인 방법이 아니라면 어디 옮겨적어야 하는 방법밖에 없으므로 너무 멈춤이 길어지는 탓에 다 내려놓고 읽어나가기만 했다.
그러니까 나는 전파견문록 같은 걸 생각한 거고,
그 프로그램이 얼~~~~마나 조악했고 어린이를 대상화했나!! 깨달았으며 요즈음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방송국놈들'로 지칭되는 이유를 공감했다. 그 프로그램만 아니었어도 사서 읽고, 마음껏 기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더 길고 자세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중히 기록해둔 페이지는
160페이지 대의 <삶을 선택한다는 것> 에피소드이다.
계부에 의해 굶김 당하고, 목검으로 수백 차례 맞고 개와 함께 화장실에 갇혔던 어린이. 결국 묶인 채로 탈진하여 복부 손상으로 죽은 어린이에 대한 에피소드이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옮긴다.
'어린이의 명복을 빈다. 떠나던 순간에 인간은 상상할 수 없는 자비로운 손길이 함께했기를 마음 깊이 빈다. 천국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 그곳에서는 어린이가 좋은 음식을 먹고 마음껏 뛰놀며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 있으면 좋겠다."

어린이를 비롯한 이 세상의 어떤 약자에게라도 바치는 기도문이다.
나는 행동이 없는 것은 알맹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슬픔을 목도하고 즉각 할 수 있는 행동은 기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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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언어들 - 나를 숨 쉬게 하는
김이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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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감성을 엿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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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 (반양장)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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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하지만 맑은 날만 계속되면 세상은 사막으로 변한다.

언젠가 선생님은 "이야기는 찾아온다."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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