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 강릉 내가 좋아하는 것들 14
이정임 지음 / 스토리닷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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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에 강릉에 1박 2일로 여행을 갔다. 남해와는 다른 동해 바다의 매력과 안반데기를 품고 있는 산맥, 그야말로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환경이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러던 차에 평생 강릉에서 살아온 저자의 강릉 이야기가 궁금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나처럼 하루 이틀만 묵고 돌아가는 피상적인 여행자는 알 수 없는, 강릉에 대한 속 깊은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강릉에 대하여

하나, 지형과 날씨

"같은 강원도라도 춘천, 원주 영서지역의 말은 서울 경기지역과 가깝고 강릉을 비롯한 영동지역의 말은 북으로는 함경도, 남으로는 경상도와 가깝다. 지형적으로 태백산맥의 영향이 크다." (p.44-45)

새삼 태백산맥이 얼마나 높은지, 교통이 발달하기 전에는 과거에 얼마나 큰 지리학적 장애물이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학창 시절 지리 시간에 동고서저 지형이라든지, 관련한 내용을 공부한 기억이 얼핏 난다. 


"영동지방 날씨를 일러 '통고지설 양강지풍 일구지난설'이라고도 한다. '통천과 고성에는 눈이 많고, 양양과 강릉에는 바람이 많은데,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 양간지풍은 봄철에 심한 기압 차와 기온 역전으로 인해 강원 영서에서 영동지역으로 매우 강한 바람이 부는 현상을 말한다." (p.67-68)

해마다 동해안 지역에 대형산불을 일으키는 주범이 이 바람이었던 것이다. 


둘, 단오제

강릉에서는 "단오제와 정동진독립영화제를 비롯해 일 년 내내 축제와 문화행사가 열리고 마을 단위 행사에 동네마다 소소한 마켓이 수시로 열린다(p.143)". 이 중에서 단오만큼 중요하고 큰 행사는 없다고 한다. 이렇게 의미 있는 지역 축제인 줄은 몰랐다. 학창 시절 국사 시간에 단오의 풍속으로 청포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선택지를 외운 기억이나, 언젠가 여행 책자에서 강릉단오제 포스터를 흘러가듯 본 기억이 전부이다. 올해 강릉단오제는 이미 끝났으니 어쩔 수 없고, 내년에라도 꼭 날짜를 맞춰 방문해 보고 싶다. 


셋, 자연

한편 강릉의 풍요로운 환경을 묘사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강릉의 둘레를 모두 잇는 바우길 걷기를 통해 "안목 해안에서 출발해 사천항까지 지중해 부럽지 않은 동해를 눈 호강하며 걸을 수 있고,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는 선자령과 아름드리 금강소나무가 빼곡한 대관령은 김밥 한 줄 들고 뒷산 오르듯 다녀올 수 있다." (p.144-145) 이어서 작은 금강산인 '소금강' 계곡, 노인봉, 대기리 안반데기, 연곡 캠핑장, 왕산 캠핑장, 주문진항까지 강릉의 좋은 곳에 대한 언급이 이어진다. 가본 곳도 있고 아직 못 가본 곳도 있는데, 참고삼아 다녀와도 좋을 듯하다. 



낯선 도시를 좋아하는 도시로

또 저자가 좋아하는 시내와 구도심 코스도 언급된다. "내가 즐겨 다니는 코스는 신영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보고 내키면 한 편 더 보고, 서점에 들러 책을 고르고, 명주동까지 실실 걸어와 단골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책을 읽거나 대도호부관아 칠사당 마루에 앉아 느티나무를 바라보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코스다." (p.145-146)


이 부분을 읽고 언젠가 낯선 도시를 익숙한 도시이자 좋아하는 곳으로 만드는 방법에 대한 글을 읽은 게 떠올랐다. 바로 자신이 좋아하는 공간을 발견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카페, 좋아하는 공원, 좋아하는 서점 등 어떤 형태인지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몇 년째 살고 있는 지역인데도 왠지 낯설고 정이 가지 않는다면, 이런 공간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저자처럼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코스를 만들어 보는 것도 삶의 활력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서울 같은 도시가 아니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소도시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 같다.


로컬리티

124쪽에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진전사지편을 읽다가 구산선문의 하나인 굴사지 당간지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부분이 있다. 눈길을 끈 부분은 '자기가 태어나 살고 있는 강릉의 역사와 문화를 이렇게 몰랐나 싶어 반성을 했다'는 부분이다. 


지방소멸, 서울공화국이라는 단어가 화두가 되는 시대에 생각거리를 주는 부분이었다. 나만 해도 내 고향에 무심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등잔 밑이 더 어둡다는 속담처럼 말이다. 역사와 문화까지 못 가더라도, 하다못해 내 고향의 맛집이나 가볼 만한 곳 질문을 받을 때도 나는 잘 모른다는 대답이 나오고는 했다. 그런 내게 강릉에 대한 애정이 담긴 이 에세이 책은 로컬리티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다. 


때로는 남들이 가는 길을 가지 않는 게 정답일 때도 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숨은 매력을 발굴해 내서 남들에게 좋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도시가 경쟁력보다는 생명력을 지니길 바라며, 정주와 이주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공감과 연대를 바탕으로 다채로운 교류가 일어나길 바란다는 저자의 성숙한 가치관을 본받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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