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폴인러브
박향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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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인생을 여러 가지 '맛'에 비유하고는 한다. 인생의 쓴맛을 봤다든지, 사랑을 달콤하다고 하든지, 하는 것들이 상투적이지만 진실을 담은 말들로 사용된다. 특히 커피는 단맛, 쓴맛, 신맛 등 여러 가지의 맛이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기호식품을 넘어 삶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는 점에서 커피를 내리는 방식과 종류에 따라 인생의 의미까지도 함께 마시거나 혹은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커피'와 사랑에 빠지고, '커피' 같은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는 커피와 관련된 것들을 삶의 요소들과 버무리고 있다. 동창인 제호에게 사랑을 느끼는 세희가 정수와의 결혼 생활을 '물맛 나는 커피는 지루한 결혼 생활'로 비유하거나, 뇌종양 판정을 받은 효정이 자신의 남은 삶을 '산패를 향해 달리는 숙성된 커피'에 비유하는 식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저마다 가지고 있었던 상처들이 드러난다. 커피 하나를 마시기 위해 많은 노력과 정성과 취향이 들어가며, 각자 좋아하는 커피와 커피를 마시는 방법(혹은 커피에 대한 추억까지도)이 다른 것처럼, 그들의 상처는 각각 다른 색깔을 띠고 나타난다. 그 중에서도 습관적으로 마시는 커피처럼 딸이 가까운 존재이기에 신경을 쓰지 못했고, 그 무관심을 자유를 주는 것으로 착각했던 효정의 회한이 인상 깊다.

  멜리타는 커피에 물을 잔뜩 스며들게 해서 우려내는 방식이야. 추출구가 하나뿐이고, 그마저도 아주 작아. 그러니 멜리타로 커피를 내리려면......원두가 물을 머금고 있는 시간이 아주 길어져. 전문가가 아니면 커피 맛은 형편없어지지. (...) 잘만 추출한다면 정말 바디감 있는 진한 커피가 되는 거야. (...) 난 그렇게 아이를 키워보고 싶었어. 멜리타를 알고 난 뒤 아, 정말 이거다 싶었지. 그래서....그런 사랑을 민주에게 주려고 노력했어. 민주의 행동 하나하나에 즉시 반응하지 않아도 모든 것들이 제 속에서 잘 버무려져서 멋진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결국 민주도 내가 하는 사랑의 방식을 이해하리라고 생각했어. 엄마처럼 부족한 인간이 아니라......멜리타처럼 오랫동안 속에 품어서 깊이 있는......그래서 정말 향기롭고 바디감 있는 사람이 될 거라고 믿었어.(....) 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민주를 다 안다고 생각했어. 결국 쓴맛만 추출되고 말았지. (200~201쪽)

 

 

  그리고 결국 소설의 주인공들은 각자의 길을 찾아간다. 좋은 커피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듯이, 그들이 만들어 낸 인생이라는 커피는 서툴지만 그만큼 간절한 마음을 담고 있다. "인생의 매 순간을 최고로 로스팅해보고 싶다는 생각"(335)으로 그렇게, 고민하고 부딪치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이 소설에서 폴인러브는 단순히 이성에 대한 사랑일 뿐만 아니라, 인생에 대한 사랑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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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 무엇인가 - 진정한 나를 깨우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철학 에세이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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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으로 나를 나누기, '분인' 되기

 

   스스로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보고 당혹해 하거나 놀랐던 경험이 있다. 부모님 앞에서의 나와 친구 앞에서의 나, 무엇보다 연인 앞에서의 내 모습에서 나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겪게 된 것이다. 그때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이상적인 모습을 본보기로 두고 다른 모습들을 조절하려고 한다면, 나는 ‘진정성’이라는 절대성에 갇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진정성’이 ‘나눌 수 없다’는 뜻을 가진 ‘개인(individual)’이라는 단어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그 대안으로 나눌 수 있는 존재인 ‘분인(dividual)’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분인은 “대인 관계마다 드러나는 다양한 자기”(14쪽)를 의미한다. 분인은 고독한 사유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나의 ‘조각들’인 것이다. 이러한 분인은 자연스럽지만 방종으로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나뿐만 아니라 타자도 분인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적용되는 새로운 책임과 윤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사진-129쪽)

   결과적으로, ‘분인’이라는 단어는 인간관계에서 누구나 겪을 괴로움을 덜어줄 수 있게 한다. 확장해서 생각하자면, 이는 개인을 규정하는 절대성과 상대성 모두를 거부하고 다양한 ‘나’의 모습들을 모두 진정한 것들로 보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나/거짓된 나’라는 이분법적인 도식을 상정하고, 진정한 나를 우월한 것으로 보며 추구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그건 원래부터 없는 것이니 말이다. 대신 다양한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나타나는 다양한 분인들을 즐기면 된다. 그렇게 나타난 분인들의 구성 비율이 개성을 나타낸다. 개성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는 ‘개인’으로 집결되는 ‘나’의 순수성을 벗어던지게 한다. 집에서의 나, 직장에서의 나, SNS에서의 나, 친구들 앞에서의 나, 연인 앞에서의 나 모두 중요하며 그 어느 것도 가면이 아니다. 절대적으로 순수한 '나'란 없으므로 기준점도 없기에 나도, 타인도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 또한 분인이 스스로 정립되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에서 나타나게 되므로, 부정적/긍정적인 분인들이 타자와 연결되어 ‘나’의 책임 역시 가벼워진다. 무책임하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부담 대신 자유를 얻으라는 것이다.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분인들을 조절하면서 살아가기에 훨씬 더 인간관계에서 유연해질 수 있다.

 

  이렇게 이 책은 ‘개인’에 대해 다시 사유하게 만드는 깊이를 지니지만, 실제의 사례들을 예로 들어서 내용은 무겁지 않다. 특히 아래처럼 '팔방미인'에 대한 기존의 정의를 뒤엎는 것도 신선하다.

 

 

또한 소설가가 쓴 철학 에세이답게 자신의 소설들을 예시로 들어서 오히려 소설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결코 가볍게 끝나지 않은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책이었다. 처음으로 많은 밑줄을 치면서 읽은 에세이기도 했다. 결국 제목처럼 ‘나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했을 때 나는 바로 “여러 분인의 동시 진행 프로젝트”(119)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나를 나누되, 억지로 가면을 쓰려고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나를 두어야 한다. 상대방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따라 각각의 분인들이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을 ‘진정한 나’라는 유일무이한 존재로 강제로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분인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인들의 변화를 긍정하는 것이다. 그 무엇보다 우리를 마음 편하게 해 주는 처방이다. 그 처방을 한 마디로 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다중’의 분인(들)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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