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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도를 사랑한다 - 경주 ㅣ 걸어본다 2
강석경 지음, 김성호 그림 / 난다 / 201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0.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고도를 기다린다. 그들의 기다림에는 이유가 없고 맥락이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고도를 하염 없이 기다린다. 기다림의 끝에 고도가 올까. 그들에게 고도란 무엇일까, 또 나에겐 고도가 무엇일까.
여기서 말하는 고도가 이 책 '이 고도를 사랑한다'의 고도와 같을 리는 없다. 명백하게 다른 개념이니까. 그러나 저자가 고도를 사랑하는 것이나 부조리극의 인물들이 고도를 기다리는 것이 내게는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사실 어떤 이유를 붙여도 깔끔하게 설명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1.
내게 경주는 이제 수학여행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 곳이 돼버렸다. 가본 지 너무 오래 된 것도 여기에 기여하겠으나, 영화 '경주'의 이미지로 경주에 대한 느낌이 채색돼버린 탓이 더 크다.
영화 속 경주는 삶과 죽음이 분리되지 않는 곳이다. 과부가 된 사람, 죽은 형을 추억하는 사람, 죽은 남편의 귀를 닮은 그에게 끌리는 여자...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뗄 수 없는 그림자다. 메멘토 모리랬던가.
도시에선 죽음을 기억하며 살아가기 힘들다. 누군가의 죽음마저 도시에서는 경조사라는 카테고리 묶여 식상한 것이 돼버린다. 장례식은 철저하게 상조회사에 낸 돈에 맞춰져 진행되고, 조의를 표하러 온 사람들은 금새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악수하기 바빠진다. 눈물이 사라진 장례식이 어찌 장례식인가.
죽음을 기억하며 살아갈 곳이 있다면, 역시 경주다. 걷는 곳곳마다 능이 보이고, 지나치는 곳곳마다 유물이 즐비하다. 경주에선 능을 쓰다듬는 손길마다 과거가 묻어난다. 선조의 죽음이 있기에 우리의 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죽음은 무서운 것이지만 언젠가 다가올 것이기도 하다. 경주에선 그걸 일상으로 느낄 수 있다.
#2.
내게는 죽음의 이미지가 더 강한 경주이지만 저자는 경주를 죽음보다 자연이 살아 숨쉬는 곳으로 그려놓았다. 죽음도 넓게 보면 자연의 일부분이긴 하지만. 저자가 그리는 자연은 가령 이런 식이다.
5월은 신록의 계절이라더니 시야엔 온통 연녹색이다. 반월성의 풀밭엔 어느새 토끼풀이 하얗게 깔려있다. 토끼처럼 뛰어다니고 싶지만 구두를 적시며 풀밭으로 걸어간다.
저자에게 자연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자의 자연은 경주에서 몸소 느낄 수 있는 체험적 자연이다. 그래서 이 책이 마음에 든다. 경주를 벗어나지 않는 자연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인공보다 좋다. 안다. 맞는 말인 것은 알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시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자연을 부러워하며 귀농한 많은 사람들이 후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이 생각한 자연과 살로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자연은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선이 아니다. 현실을 외면한 채 자연만 동경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3.
저자는 여러 도시를 방황하다 경주에 정착하였다.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 내가 살아갈 곳은 앞으로도 쭉 도시일 것이다. 나는 저자처럼 살아갈 자신이 없다. 저자가 부럽다. 나에게 도시이면서도 경주 같은 고도가 될 곳은 어디일까. 나는 고도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