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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 ㅣ 문예바다 서정시선 2
강인한 지음 / 문예바다 / 2021년 6월
평점 :
품절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밥을 나누는 평범한 일상이 너무나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 다양한 책들을 사보게 되었다. 강인한 시인의 “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는 뜻밖에 발견한 아름다운 서정시집이다.
맨 먼저 눈에 띄는 시인의 말.
시는 언어의 보석이다. 그 속에서 빛나는 것은 시인의 영혼이다.
나의 종교는 시다.
시를 종교로까지 선언하는 시인의 시들이 궁금해져 단숨에
한 권을 읽어 내려갔다. 영화를
보듯 선명한 색감의 이미지들, 그 속에 사랑과 이별의 아픔, 실존의
무게, 인생에 대한 성찰을 담아 낸 시들과 함께 먼 여행을 다녀온 것 같았다.
그 곳에는 피요르드의 산골짜기마다 푸른 빛이 넘쳐 눈이
멀 것 같은 거대한 빙하가 있고(“브릭스달의 빙하”), 횃불에
비친 궁전의 벽이 핏빛으로 어룽질 때 물의 정령들이 아라베스크의 춤을 추고 있으며(“죽은 나무를 위한 아르페지오”), 러시아의 눈 내린 광장에 백 년 전 가난한 사람들이 발자국을 쿡쿡 찍고 손 흔들며 흩어지고 있었다(“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한 편 한 편 보석 같은 시들이다. 우리의 인생은 노년과 허무를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하고 배반하고 헤어지고 그리워하고 다시 인간을 믿으며 살아간다. 시인은 이 작은 시집을 통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금지된 이 잔인한
여름, 마음을 위로해 줄 단 하나의 책을 원한다면 주저없이 이 시집을 추천한다.
별이 아름다운 건
걸어야 할 길이 있기 때문이다.
부서지고 망가지는 것들 위에
다시 집을 짓는
이 지상에서
보도블록 깨진 틈새로
어린 쑥이 돋아나고
언덕배기에 토끼풀은 바람보다 푸르다.
허물어 낸 집터에
밤이 내리면
집 없이 떠도는 자의 슬픔이
이슬로 빛나는 거기
고층건물의 음흉한 꿈을 안고
거대한 굴삭기 한 대
짐승처럼 잠들어 있어도
별이 아름다운 건
아직 피어야 할 꽃이 있기 때문이다.
(『지상의
봄』, 강인한 시집 “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