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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탄허
백금남 지음 / 동쪽나라(=한민사)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경허 -> 수월, 혜월, 만공, 한암 선사... 그 매섭게 이어지는 선맥 속에는 추상같은 서릿발의 경책이 우리 범부들을 깨우치면서, 또한 시리도록 눈물겨운 자비의 사랑이 뜨겁게 흐르고 있으니...
소설 속에서 '한암스님이 스승 경허선사의 임종게를 보고 눈물이 어림'은 그 옛날 수월선사가 스승을 찾아가 도화동 옹이방 서당 앞에서 나눈 대화에도 어려 있었을 것이리라.
"누구요(경허) - 수월입니다(수월) - 나는 모르오(경허)"
그길로 스승을 보지 않고 돌아선 수월스님의 눈에도 뜨거운 눈물이 맺혔을 것이다. 스승의 대자유인의 살림살이를 확인한 제자의 기쁨, 눈밝은 이를 기다렸을 것이지만 달마의 불식(不識)으로 대답한 스승, 이심전심으로 살아있음을 확인한 사제의 기쁨. 그 속에도 그리움의 진솔한 눈물이 고였을 것이리라. 세속의 눈물이 아닌 마음 근원에서 솟아나는 맑은 눈물이. 청정한 눈물이...
문득 한암스님이 하셨다는 말씀이 생각난다. "화상(경허)의 법화(法化)는 배우되 행리(行履)는 배우지 말라." 이 말씀은 바로 무르익지 않은 수행자나 겉멋에 빠진 속인들이 경허선사의 행적을 서투르게 흉내내지 말라는 교훈이 아닌가! 아마 한암스님은 이 말씀을 하시면서, 진정한 스승이 없음에, 그 스승이 사무치게 그리워 가슴 속에 눈물을 짓지 않았을까? 우리같은 번뇌망상과 분별심에 사로잡힌 범부들이 그 깊은 속내를 어떻게 알겠으며 감히 짐작이라도 하겠는가마는...
마찬가지로 지금의 각성, 무비, 혜거 스님의 가슴 속에도 영원히 잊히지 않는 스승 탄허스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꽃이 피어있으리라. 영원히 지지 않는 눈물꽃. 처염상정의 연꽃처럼. 마치 영취산에서 부처님과 가섭 사이에 이심전심으로 피어난 연꽃처럼...
그렇다. 사무치는 그리움이야말로 진실한 삶의 시작이 아닐까? 부처 되려는 수행과 구도의 시작도 부처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대상에 대한 참다운 그리움이야말로 중생에 대한 진정한 자비심으로, 법에 대한 진정한 구도심으로 승화될 것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사랑 없이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어질 것인가.
사회의 변혁도 인간에 대한 진실한 사랑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사상의 종착지는 실천이다'라는 경구도 역사속의 교훈이요 나아가 진리임에 틀림 없는 것이다. 깊은 산속의 수행자의 삶도 오탁한 현실에 대한 고답적인 외면만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가 있음으로 해서 냇물따라 흘러내린 법의 향기가 결국은 사회를 정화시키는 보이지 않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 아닐까.
<소설 탄허>를 통해 다시금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세속의 인연이 전혀 없는 탄허스님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 속으로 짙게 스며든다. 이 그리움을 새로운 삶의 활력소로 이끌어낼 수 있다면 정말 감사할 일이다. 이 소설에 언급되는 모든 스님들께, 그리고 출판사 동쪽나라와 백금남 작가에게...
사무치는 그리움이야말로 진실한 삶의 시작이 된다는 깨우침을 일깨워준 데 대해 감사할 일이다. 정말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