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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사는 따뜻한 부모들의 이야기 1
이민정 지음 / 김영사 / 199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과 내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
욕쟁이 할머니와 괴팍한 할아버지, 너그러움이라던가 자상함 따위와는 거리가 멀었던 조부모와 함께 자랐던 어린 시절. 그 시절 불행하다는 느낌은 당연한 것이었다. 아버지도 그런 부모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내가 작은 잘못이라도 저질렀다 치면 큰소리로 꾸중을 하고, 욕지기를 내뱉었다. 식사시간에는 여느 집처럼 가족들의 정다운 대화는 꿈도 꿀 수 없었다. 모두 늘 화가 나있었고, 상대방들을 비난하기 바빴다. 집안 형편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전형적인 성난 시어머니의 역을 맡았던 할머니의 세상에 대한 원망이 수그러들 줄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런 집안 분위기 속에서 어렸던 나는 늘 주눅이 들어 있었고, 고개를 숙인 채 걸었다. 목소리는 자꾸 기어 들어갔고, 주위 사람들의 말을 정확히 알아듣질 못해 다그침을 받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상처는 나날이 깊어갔다. 사랑한다는 말 한 번 듣고 자라지 못한 내가 사랑하는 법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법을 늦게 배운 것은 아무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었을까.
내가 책 읽기를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행복이 거기에 있었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보통 희망을 말하는 사람이었고,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주인공을 믿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요즘말로 멘토라고나 할까. 내게도 세상이 따뜻하고, 내 자신이 귀한 존재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물론 적잖은 세월을 살아왔으니 나는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고,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이 되어주려고 노력했으며 그만큼 내 인생이 풍요롭고 행복해졌다는 것을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는 독서를 통해 삶이 변하고, 마음이 성장한 숱한 사례들 중 나라는 사람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거라 믿는다. 그리고 책읽기를 통해 얻은 가장 큰 가르침은 이야기하기, 말하기의 기술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를 실천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십년이상을 곱지 않은 말들로 상처를 받아온 나같은 사람은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오는 칼같은 말들 때문에 난감해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상황들 속에서 나 자신을 정당화하고 방어하는 것이 나를 지키는 법이라 믿어온 세월 탓일지도 모른다. 학비 마련 때문에 시작했던 아이들 가르치는 일은 이런 나를 되돌아보는 큰 계기가 되었다. 몇 년동안 나의 화법을 다듬어보려는 노력을 해왔지만, 이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다. 학부시절 교육학이니 상담 관련 강의들을 챙겨듣고, 교육실습과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어느 정도 고질병같은 습관들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I-message, Do-message라던가, 공감과 수용의 말하기를 연습하면서 나는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아 스스로를 대견해하곤 했다. 그러는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오해한 채 그 상처를 애써 견디며 살아가는 가를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 우리의 아이들이 말이다.
이제야 책 이야기를 한다. <이 시대를 사는 따뜻한 부모들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따뜻한 노력'을 이야기하는 책이다(물론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순수한 의미에서 '사례집'이다). 나는 이 책이 현재 부모인 사람들 또는 부모가 되려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가명이긴 하지만, 어쨌든 우리 주위 사람들의 이름을 그대로 가진 많은 가족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매우 구체적으로 그들이 처한 상황들을 보여 준다. 그들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우리도 똑같은 입모양으로 따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늘 들어 왔고, 입밖에 내어 왔던 소리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내 그들처럼 우리도 마음이 먹먹해지게 된다. 짧은 시간안에 이렇게 많은 사연들을 한번에 접하는 것에 어느 정도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히 나에게 또는 내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사례들는 부모와 자녀 관계가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여기에 나와 친구, 나와 고객, 나와 가족, 나와 동료 등 나와 관련된 대부분의 관계를 대입해 볼 수 있다.
책장은 가볍게 넘길 수 있었지만, 마음은 때때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1권을 다 읽고 난 뒤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내 짝꿍, 남편을 돌아보았다. 서로에게 애교있게 굴다가 사소한 일로 툴툴거리고 있던 차였다. 나는 2권을 마저 읽을 테니 1권을 꼭 읽기로 기어이 약속을 받아냈다. 우리는 어제보다 서로에게 더 따뜻한 사람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 넘치는 관계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할 것인가는 고민만 한다고 그 답이 구해지지 않는다.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실천했는지- 사랑한다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게 된 이웃들의 집을 조심스럽게 방문해보자.
(어쩌다 보니 책 이야기가 저의 이야기보다 짧아진 감이 있지만, 이런 류의 책은 소장 가치라던가 내용의 깊이, 가격대비 만족도니 이런 것들을 전혀 따질 필요없이 우리가 알고 깨닫고 실천해야 한다는 점에서 서로에게 권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강력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