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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이 말을 할 수 있다면 - 의학 전문 저널리스트의 유쾌하고 흥미로운 인간 탐구 보고서
제임스 햄블린 지음, 허윤정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12월
평점 :

삶이란 유한하며 우주에 비하면 인간의 생애는 정말 짧은 찰나(라는 말도 아까울 정도로)에 불과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어떻게 의미있는 일을 하고 의미있는 무언가를 남길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면 할수록
보다 의미있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려면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 노력하고 신경을 많이 써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특히 요즘 같이 실제보다 훨씬 왜곡된 공포가 사회를 휩쓸고 사람들의 정신과 몸을 망가트리고 있는 시대에는 보다 합리적인 추론을 할 수 있는 객관적인 근거 자료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물론 그 중에는 나처럼 해외 대학 사이트를 뒤져가며 연구논문을 뒤적거리는 인간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영상과 책자로 정보를 접하기 마련인데 그 중 대부분은 흥미롭지만 가볍게 수박겉핧기로 넘어가거나 의학에 상식이 부족한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딱딱한 콘텐츠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읽은 우리 몸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라는 책은 일반인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으면서도 쉽게 접하기 어려운 의학 정보들을 부담없이 습득할 수 있고 의학 분야에 흥미를 갖게 해줄 수 있는 매력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표지를 보면 단박에 이 책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는데 귀엽지만 엑스레이 사진을 들고 있는 너구리 일러스트와 히포크라테스도 한 번은 혼쭐이 날 것이다! 라는 멘트에서도 이 책의 유머러스함과 전문성을 동시에 표현해주고 있다.
왜 그런지 곰곰히 생각을 해봤는데 의사나 과학자 같은 전문가가 쓴 것도, 그렇다고 무지한 일반인이 쓴 것도 아닌 의학 전문 저널리스트가 쓴 책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저자인 제임스 햄블린은 의대를 졸업하고 레지던트 과정을 거친 의사 출신 의학전문 기자(애틀랜틱 매거진 작가이자 수석 편집자)로 의학관련 전문지식과 함께 다양한 강연과 기고를 통해 습득한 대중에의 접근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가장 유쾌한 의학박사라는 별명도 있음)

책은 상당히 두꺼운 편이었는데 장편소설류를 제외하고는 내가 최근 1~2년간 읽은 책 들 중에 가장 두꺼운 책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최근 가장 관심있는 분야의 책이기도 하고 내용 자체가 호기심을 많이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많아서 끝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은 총 6개의 장으로 이뤄져 있는데 인간의 구조, 활동과 작동기전 처럼 우리(인간)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생물학적 지식들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역시 5장 관계 : 성 부분이었는데 평소 궁금하긴 했지만 정확한 정보를 찾기 힘들었던 내용들이 많다. 예를 들어 지스팟의 위치나 자극하는 방법, 오르가즘을 느끼게 하는 법 등에 대해서는 유튜브나 블로그 등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남자는 '왜' 오르가즘을 여러 번 느끼지 못하는지, 왜 여성용 비아그라는 없나요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은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런 비교적 답변을 찾기 어려운 질문에 대한 설명 외에도 "의사들은 성전환에 대해 교육과 수련을 받나요?" 라는 식의 질문 자체를 떠올리기 힘든 내용들도 다루고 있어서 의학적 사고의 확장을 도와주는 긍정적인 측면이 존재했다.

물론 예전부터 궁금했었고 정답도 대충 알고 있는 이런 질문에 대해서도 그림과 함께 보다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딱딱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나 유튜버가 얘기하는 것처럼 재미있고 친근한 말투로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에 에세이를 읽는 듯한 기분도 살짝 들었다. (물론 정보제공에 있어서는 굉장히 정확한!!)
곱슬머리는 왜 생길까요? 편을 예를 들어 보면 곱슬머리인 저자가 어떻게 오랫동안 관련 분야 전문가를 찾아다니는 길고 긴 여정(?)과 MIT의 연구진들이 곱슬머리에 작동하는 모든 힘의 모형에 대한 설명에서 실소가 터져나왔다.
물론 이런 유머러스함을 통해 생긴 집중력은 머리카락의 구조, 곱슬머리와 직모의 차이에 대해 피질세포 분포와 그 안의 구조까지 그림으로 보여주며 설명하는 부분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6장 지속 죽음 편에서는 인간의 수명은 충분한가요? 같은 상당히 철학적인 질문들도 다루고 있었는데 이는 단순히 현생인류의 생물학적 수명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생명의 가치, 죽음을 결정할 권리, 인간의 정의 등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내용들과도 연관되어 있어서 진지하고 깊게 생각을 해볼 수 있었던 부분이다.
(개인적으로는 트랜스휴머니즘이나 지구 온난화 등 환경을 위한 인위적인 인구조절에 기본적으로는 찬성이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악용될 소지가 굉장히 높다고 보는 입장이다)

우리의 몸과 인간에 대한 과학적이고 재미있는 정보들을 습득할 수 있었고, 마지막에는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이야기까지 다루고 있는 책이라서 굉장히 만족스럽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