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흐르는 곳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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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야심한 밤에 읽었던 스티븐킹의 소설

'피가 흐르는 곳에'

얼마 전에 읽었던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을 출판한 황금가지에서 출판한 스티븐킹의 신간 소설이다.

가만보니 둘 다 황금가지에서 출판했고, 블랙&레드컬러 표지의 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재밌는 점은 두 책 모두, 책을 다 읽고 나서 표지를 다시 보면 책 내용을 잘 담아낸 멋진 디자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스티븐 킹은 불쾌하고 사람 기분나쁘게 하는 특유의 찜찜함이 전매특허로, 초기엔 공포소설을 많이 쓰긴 했지만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다작을 하기도 하고 다양한 장르의 책을 쓴 작가다. (그래서 호불호가 많이 갈리기도 하는데 항상 소설의 재미만큼은 확실히 보장하는 탑클래스 작가...)

개인적으로는 스티븐킹의 소설은 거의 읽어보지 않았고 대부분 영화로 감상했기 때문에 사실상 이번이 처음 읽는 스티븐킹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스티븐킹 원작소설인 영화는 캐리, 샤이닝, 미저리, 돌로레스클레이본, 쇼생크탈출, 그린마일, 미스트, 그것, 다크타워까지 안본 게 거의 없네...(게다가 다 재밌었음)

최근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만들어진 '1922'와 '높은 풀속에서'를 봤었다.


책 두께가 상당히 두꺼워서 장편소설인가 했는데 그건 아니고 4편의 중편 소설 모음집이다.

스티븐 킹의 소설들은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설정과 배경들이 정말 다양한데 그렇게 다양한 설정으로 수많은 작품들을 써내는 걸 보면 상상력이 정말 풍부한 것 같다.

해리건 씨의 전화기 : 무덤 속에 들어간 오래된 아이폰에 얽힌 기묘한 이야기

척의 일생 : 지구 종말의 시대 모든 광고에 등장하는 척에 대한 이야기

피가 흐르는 곳에 : 기자로 위장한 초자연적인 존재의 뒤를 쫒는 여기자의 이야기

쥐 : 태풍으로 고립된 시골에서 말하는 쥐를 만난 작가의 이야기


4편의 중편소설이 들어 있는데 그 중에서 피가 흐르는 곳에는 다른 작품들의 약 2배 정도로 분량이 가장 많다. (아마 그래서 책 제목으로 쓰인 듯?)

나머지는 100~130페이지 정도의 분량이라서 결말까지 금방 읽을 수 있었다. 현대인들은 유튜브나 SNS 중독의 영향으로 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어서 소설분야도 이런 중단편 모음집이 트렌드인 것 같다.

표지에 묘하게 오버랩되어 있는 '쥐''피가 흐르는 곳에' 두 편의 분위기가 가장 무겁고 어둡다.



처음 시작하는 해리건 씨의 전화기에서도 가볍고 밝은 분위기로 진행되다가 중반부를 지나면 절벽에서 추락하는 것처럼 급격히 반전을 시켜버리는데,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기묘한 이야기로 순한맛인 해리건 씨의 전화기와 척의 일생에 비해

피가 흐르는 곳에와 쥐 편은 스티븐 킹 특유의 찐득거리면서도 찜찜한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중에 가장 최근 스티븐 킹 소설 분위기와 비슷한 작품을 꼽으라면 피가 흐르는 곳에,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4편의 소설 중에서 첫번째, 해리건 씨의 전화기가 제일 재밌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도 밝은 편이고 어린 소년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보급되고 발전하는 묘사들이 나오는데 (비록 미국이 배경이지만)나도 비슷한 경험을 공유했던 세대이기 때문에 좋은 추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반가웠고 덕분에 기분 좋게 읽었던 것 같다.



기묘한 죽음이 몇 차례 나오긴 하지만 어쨋든 별다른 무서운 장면없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으니까...

하지만 길지 않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내 일상과 겹치는 문장들이 여러차례 눈에 띄어서 기시감과 함께

살짝 무서운 기분이 들었는데 예를 들어 우리 사무실 화장실 벽에 쓰여져 있는

'노인 한 명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 라든지...

오랫동안 내 휴대폰 배경화면 문구로 쓰이고 있는 버나드 쇼의 명언 같은 것들 말이다.




문체는 스티븐 킹의 다른 소설들처럼 짧고 간결한 편이다.

스티븐 킹은 오랫동안 글을 써와서 짧은 문장 안에 응축시키는 능력도 뛰어난 것도 있겠지만, 상상력이 풍부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넘쳐 흘러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싶어서 못참겠다는 생각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군더더기 없는 표현과 빠른 사건의 연결로 인해 시간을 잊고 읽었던 것 같다. (특별히 생각할 거리를 주지 않는 스티븐 킹 소설의 특성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그 외에 다른 작품들도 재미있었는데 척의 일생 같은 경우 지구 최후의 날이 가까운 상황도 매력적이고

막의 순서와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전개한 것도 특이하다.

그 밖에도 스티븐킹의 원작이었던 미드 미스터 메르세데스와 소설 아웃사이더의 조연이었던 홀리 기브니가

피가 흐르는 곳에 에서는 주연으로 등장한다는 것도 굉장히 특이하고 재미있었다.



스티븐 킹의 소설은 워낙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이 많이 이루어지다보니 소설에서 단역으로 등장했던 인물이

미드에서 인기를 끌면 다시 다음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업그레이드되어 재등장하는 등의 일도 종종 생기는 것 같다.

(일종의 평행우주 세계같은 느낌도 든다)

네 편 모두 독특하고 몰입감이 뛰어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는데 중편이다보니 편 당 길이도 길지 않아서 장편 소설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게도 좋고 스티븐 킹의 다양한 스타일의 소설을 한 권으로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특히 소설을 읽으면서 까지 머리아프게 고민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스티븐 킹의 소설이 영화로 많이 만들어지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가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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