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지에서 나온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이라는 국내소설.
책 표지와 같은 디자인의 부채도 같이 동봉되어 왔다.
표지보다 조금 톤 다운된 일러스트가 들어가 있는데, 이 컬러가 더 책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는 듯 하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사전 정보가 1도 없어서 책 표지만 보고 뭔가 감성감성한 분위기의 로맨스 소설이겠거니,
싶었는데 전혀 아니더라고 ㅋㅋㅋ
데뷔작으로 언론의 극찬을 받은 하승민 작가분의 신작이라고 합니다.
IT랑 금융업 종사하면서 취미로 글을 쓰다가 급소설가로 데뷔하셨다는데 넘나 부럽다.
거기다가 밴드에서 음악활동까지..ㄷㄷ
나도 이런 재능이 있었으면 좋겠네.
하승민 작가님의 데뷔작인 '콘크리트'를 봤으면 대충 이 책의 분위기가 어떨지 짐작을 했을텐데, 이걸 다 읽고 나서야 봤네.
책 두께는 꽤 두껍다. 게다가 종이도 얇은 재질이라 분량이 상당한 편이다. 세보니(?) 607페이지더군요.
표지 일러스트를 자세히 보면 어두운 물 아래에서 두개의 시뻘건 손이 나와서 젊은 여자를 잡고 있는데
이 부분을 띠지가 교묘하게 가리고 있어서 띠지가 있을 때랑 느낌이 완전 딴판이다.
(노린 거라면 황금가지님들 ㄹㅇ 천재...)
표지 일러스트에 낚여, 오늘 오후는 커피 한잔 마시면서 나른하게 보내야지 라는 나이브한 생각으로 책장을 넘긴 나의 나긋나긋한 감성은 시작부터 와장창 박살나버렸다.
첫패부터 생매장 씬 ㄷㄷ
스포가 되지 않을 정도의 범위에서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의 간단히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염지아라는 여성(165cm, 100kg)의 안에 있는 두개의 인격이 벌이는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다.
어린 시절 모종의 충격적인 사건을 겪으면서 혜수라는 인격이 생겨난 염지아는 매우 위험하고 공격적인 성격의 혜수가 몸을 지배할 때마다 벌어지는 사건들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여기까지만 보면 영화 23아이덴티티 같은 다중인격 장르가 생각나지만,
이 책의 분위기는 영화로 치면 곡성이나 사바하에 가까운 듯하다.
소설의 배경이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들이나 장소들을 다루고 있기도 하고 애초에 하승민 작가님의 문체나 작품 분위기가 한국식 오컬트 장르 분위기랑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감탄했던 부분은 디테일하고 유니크한 묘사에 있다.
인물이나 장소를 묘사할 때 사용하는 단어의 선택이나 표현방식이 이 소설의 꿉꿉하고 끈적거리는 분위기와 정말 잘 맞아떨어지는데, 특히 장소 묘사가 기가 막히더라고.
소설의 플롯 자체도 굉장히 잘 짜여져 있고,
충격적인 사건들을 아교처럼 찐득거림이 느껴지는 등장인물들의 관계들로 떨어지지 않게
붙여놓고 있다는 점이 몰입감을 배가시키는 소설이었다.
심심할 때 조금씩 읽으려고 집어 들었던 책인데, 몰입해서 끝까지 읽어버렸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처연하고 끝이 없는, 인간의 밑바닥을 보게 된다.
바닥에서 발버둥치고 발버둥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23아이덴티티에서의 다중인격은 판타지처럼 느껴지지만,
염지아와 혜수, 그리고 다은이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언제라도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서 바로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같다.
소설의 결말은 뭐라고 표현해야될 지 모르겠다.
참교육? 결자해지? 인과응보?
아니면 처염상정이라고 해야되나...
책을 읽고 나서 목차를 다시 보니 넘나 중요한 단어들이 눈에 띈다.
뱀이 마을...혜수...다은...19년...ㅠㅠ
여름에 읽기 좋은 책.
읽는 내내 기분이 좋은 것도 아니고 다 읽은 후에도 기묘한 여운이 남는 책이지만,
재미만큼은 확실한 책이고 서늘한 분위기가 일품이라 특히 여름에 읽기 좋은 책인 것 같다.
그리고,
세상의 달달하고 밝은 면만 보면서 인간의 어두움을 애써 외면하며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추가할 수 있어서 좋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