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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린디합을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8월
평점 :
[담요]
이 책의 화자인 '나'에겐 친구인 한이 있고 한은 자주 한의 파출소 소장인 장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직장 상사 험담 같은 게 아닌 그 반대의 이야기로 신뢰와 애정으로 가득한 이야기들이었다.
무명 소설가였던 나는 [난 리즈도 떠날 거야]라는 책을 출간하고 돈과 명성을 얻었지만 한의 직장 상사인 장의 '아픈 이야기'를 자신의 소설에 고스란히 담았다는 이유로 친구 한은 나를 떠나버렸다.
한의 말에 따르면 장의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좋은 쪽으로 결정된 거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인상에 성적은 상위권으로 별 어려움 없이 경찰 대학에 입학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여 본청의 정보국으로 발령을 받았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장의 삶에 위기가 찾아왔다. 스캔들에 연루되어 도시 외곽에 있는 아주 조그만 파출소로 발령이 났고 이런 일이 있기 일 년 전, 즉 아픈 몸에 죽을 위험을 감수하고 낳았던 아들이 일곱 살이었던 때에 아내가 결국 죽었다.
장은 아들이 열다섯 살이 되던 날, 아들이 열광적으로 좋아한 록밴드의 야외 콘서트 현장에 아들과 함께 갔고 초겨울 야외 콘서트라 장은 적당히 두꺼우면서도 무겁지 않은 담요를 아들의 코트 위에 덮어 준다.
첫 곡의 전주 부분이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한 남자가 무대 위에 뛰어 올라와 그 록밴드와 사람들을 향해 총알을 여러 발 발사했고 이 일로 장의 아들이 사망한다.
장은 아들의 장례식을 치르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장례식을 치르면 아들이 정말로 이제는 더 이상 자신과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 되어 버린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장은 '그날'에 아들이 무대 위로 달려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 대신 장은 아들의 어깨 위에서 담요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아들의 어깨 위에서 떨어진 담요는 장에게 몹시 중요한 물건이 되었다. 그 후, 장은 담요를 항상 몸에 지니고 있게 된다. 담요를 가지고 출근했고, 책상에 앉아 있을 때는 담요로 자신의 무릎을 덮었다. 여름이라도 상관없었고 밥을 먹을 때는 곁에 두었고, 퇴근 후에는 도로 집으로 가지고 갔다. 화장실에 갈 때도 가지고 갔고, 밤에는 덮고 잤다.
장은 담요를 죽은 아들처럼 생각을 했으리라.
'두꺼우면서 무겁지 않은 담요'.
'두껍다'라는 표현에는 부모에게서 자녀의 존재감이 어떠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자녀를 따뜻하고 안전하게 지켜주는 존재 같지만 결국 나를 살아 가게 하는 건 부모에게선 내 옆에 항상 든든함으로 자리 잡고 있는 자녀이지 싶다.
'무겁지 않은'이라는 표현에서 자녀라는 존재가 때로는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자녀가 주는 그 무게감 보다 날마다 우리의 삶에서 마주하는 세상의 수많은, 그리고 훨씬 더 무거운 그 무게감을 감당하게 하는 힘을 주는 것도 자녀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장에게 그 담요는 더 이상 '그냥 담요'가 아닌 죽은 아들이었던 것이기에 계절이 여름이던, 장소가 어디던, 무엇을 하던... 전혀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아들이 죽은 후, 장에게는 두 가지 변화가 생겼다.
첫 번째는 담요를 항상 몸에 지니고 있게 된 것이고 두 번째는 그가 야간 순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왜 야간 순찰에 집착을 했었을까...?
사고가 있던 그날, 공연은 저녁 7시 45분에 시작이었다.
장은 경찰대학에서 훈련을 받았고, 진짜 총은 수도 없이 만져봤고, 사람을 쏘아본 적도 있었지만 사고가 있던 그 순간에는 그저 힘없는 가장일 뿐이었으며 자신의 아들이 무대 위로 달려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자신이 아들이 죽음과 가까운 그 무대 위로 달려가는 것을 막지 못 했다는.. 아들을 지켜내지 못 했다는 죄책감이 장에게는 있었으리라.
장은 차를 운전하는 동안에도 무릎에 덮여 있는 담요를 만지작거리는데 담요를 만지작거리며 '내가 지켜줄게.. 내가 지켜줄게..'라는 말들을 속으로 되뇌이며 자신이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들을 찾아 다른 사람들이 꺼릴 수 있는 야간 순찰에 집착하게 된 건 아닌가... 생각해본다.
장의 아들이 죽고 육 년이 지난 그 해 겨울. 그 해 들어 가장 추운 겨울날에 장은 야간 순찰을 하다가 놀이터에서 그네에 앉아 있는 두 남녀를 보았는데 미니스커트에 살색 스타킹을 신은 여자와, 두껍지 않은 코트를 입은 남자를 보고 걱정되는 마음에 얼른 집으로 들어가라고 좋게 타이른다.
술에 취한 여자는 "네, 그러니까, 우리는 성인이고 결혼도 했고(중략)"라는 말을 한다. 성인이란 말을 하는 걸 보니 성인이 된지 얼마 안 된 나이인 것 같다. 장의 아들이 살아 있었더라면 얼추 이들과 비슷한 나이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