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트리페이스트리는 작업이 오래 걸리고 과정이 까다로운 빵이다. 직사각형으로 펼친 반죽 위에 같은 두께의 버터를 넣어 접고 누르고 냉장 휴지했다가 다시 누르고 접고 차게 유지하는 일을 반복해서 백사십 장이 넘는 얇은 겹을 만들어 굽는 빵이다. 손이나 공기의 온기로 반죽의 온도가 올라가면 버터가 녹아서 아름다운 겹이 올라가지 않으므로 모든 작업은 낮은 온도에서 진행된다. 반죽 사이에서 눌리고 펼쳐지는 버터는 각각의 겹이 붙지 않고 하나의 장으로 펼쳐지도록 분리하는 역활을 한다. 이러한 이유로 페이스트리 반죽이 오븐에서 구워질 때 얇은 결들은 서로를 밀어내며 홀로 일어선다. 차게 휴지한 반죽을 펼칠 때는 양 옆에 같은 막대를 놓은 뒤 막대와 막대 사이에 반죽을 놓고 민다. 그러면 반죽은 밀리면서 일정한 두께를 유지하게 되는데 그 두께가 70편 정도의 시를 담은 시집과 비슷하다. 실제144겹 반죽을 밀 때 앞치마에 꽃혀있던 김소연 <눈물이라는 뼈>, 문학과 지성사 시집과 반죽의 두께가 같았다. 페이스트리를 만드는 일은 글을 쓰는 일과 많이 닮았다. 세상으로부터 나를 불리해 낱낱이 펼쳐 세웠다가 다시 세상에 던지는 일이다. 오래 걸리고 춥고 지독히 외롭다. 한 편의 시로는 시의 집을 만들어질 수 없는 일이 빵에도 있어서 144장의 모든 담벼락에 시가 적힐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한 사람이 쌓은 페이스트리는 부서져야 비로소 세상에 읽히는 것. 접히고 눌리고 차가운 어둠 속에서 자기를 견디다가 가슴에 144겹의 이야기를 품을 즈음 되었을 때, 그는 햇살 아래 앉아만 있어도 향기롭지만, 세상이여, 부디 보고만 있지 말기를, 그 빛과 어둠의 겹들을 잘게 잘게 부수어주기를.신영인 산문 <페이스트리> 사유악부 (2024) 중에서 ‘페이스트리’편 (34~36쪽)•••••••••••••••••••2023년 봄날에 시와 반시 제 1회 에세이스트 신인상을 수상했던 페친 신영인 샘이 드디어 첫 산문집을 냈다. 사범대 수학교육과에 들어갔다가 슈트라우스의 Morgan(내일)을 듣고 창문을 넘어 달려가 3개월 뒤 성악을 공부했던 그녀. 잘못된 선택으로 돈과 집마저 모두 잃고 병들었을 때, 다시 살아보자고 제빵사가 되었다. “모두가 떠난 주방에서 몰래 새로운 빵을 연습하거나 글을 써 내려갈 때마다 나는 유대인 작가 프레드릭 모턴을 떠올렸다. 나치를 피해 제빵사로 숨어지내던 그가 감당해야 했을 두려움을 느끼면서, 서늘하도록 적막한 주방에서 홀로 빵을 빚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 그녀는 일터에서 홀로 빵을 구었다. 반죽을 오븐에 넣을 때나 한숨 돌릴 때나 숙성을 기다리다 짬을 나면 책을 읽는 것은 그곳에서만 허락된 자유. 빵을 빚으며 반죽에 늘어붙은 책들에 그녀는 고통스럽던 40대를 견디어 나갔다. 페이스트리처럼 시간을 차곡차곡 접어 쓴 그녀의 글들이 세상에 얼굴을 비추었다. 그녀는 말한다. “이 책은 주방 뒤에서 몰래 먹는 실패한 빵들을 모아놓은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긴 숙성의 향기만은 당신에게 닿기를. 그늘지고 허기진 곳에 따듯하게 머무르기를” 바란다고. 자신의 약점까지도 가감없이 써내려간 그녀의 글들을 읽으면, 왜 그녀가 자신을 달을 품은 질그릇이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