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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니! 책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죽음에 대한 깊은 고찰이 담긴 책인 줄 알고 제목에 홀리듯 책을 구입했는데, 작가님의 칼럼모음집이라니 깜빡 속은 느낌이었다.(근데 읽다보면 잘 속았다는 기분이 든다)
1.
책에 담긴 많은 칼럼들은 제각각 매력이 있었지만, 그냥 지나치지 않고 마음 속에 가만히 자리잡은 편은 ‘어떤 자유와 존엄을 선택할 것인가‘ 이다.
이는 얼마전에 읽었던 ‘70세 사망법인 가결‘과도 어느정도 맞닿아 있는 주제인데, 당시 서평에서도 언급했듯이 나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의사와 무관한 연명치료와 인간의 장수가 축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 역시 연명치료를 희망하지 않을 것이고, 안락사라는 ‘자기결정권‘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나의 죽음에 대한 자유와 존엄이다.
이 책을 읽기 얼마전, 부모님께서 내게 말씀해주시기를.
˝우리는 이미 연명치료 거부와 장기기증 등록을 모두 완료했다. 우리의 몸은 죽었다고 해서 자식들의 것이 아니야. 기증하고 남은 몸이 화장되어 돌아오면 납골당에도 넣지 마라. 생전에 있었던 폐쇄공포증이 죽었다해서 없어지겠니? 죽어서도 그런 좁은 공간에 갇혀있고 싶지 않다. 제사도 하지말고, 우리 기일에 너희들이 기려주기만 하면 된다.˝
이는 우리 부모님이 추구하고자 하는 본인들의 자유와 존엄이다. 자식이라고 해서 감히 그 자유와 존엄을 함부로 침해할 권리란 없다.
그래서 이 말을 들을때는 마음 속으로는 울컥했지만 부모님께 티를 내지는 못했다.
울컥한 포인트는 ‘부모님의 죽음‘ 이었지, ‘너희들 것이 아니다‘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다시 내 스스로의 마음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우리 가족이 불의의 사고 또는 질병으로 의료기기의 도움 없이는 연명이 불가능한 상황이 생겼을 때 나는 의사에게 ˝연명치료를 중단해주세요˝라고 단번에 얘기할 수 있을까?
연명치료 거부는 결국 죽음이다. 병상 위에 누워있는 모습조차 볼 수 없다. 연명치료를 지속할수록 남은 사람들이 힘들어지겠지만, 그렇다고 바로 포기하기는 너무 어려울 것 같다. 없는 권리를 행사하고 싶어질 것 같다.
사람(‘나‘)의 마음이라는게 참 웃기다. 나 자신의 죽음에는 당당히 연명치료 거부와 안락사 존중을 외치면서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에는 이렇게 이기적이 된다. 그래서 나는 더욱 마음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인생의 결말을 결정짓는 과정에서 자유와 존엄은 ‘본인‘의 결정을 오로지, 온전히 존중해줘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자유와 존엄 모두를 지키고 존중 받는 상태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상충될 수 밖에 없는 이 두 문장은 복합하고도, 심오하고도, 답을 찾을 수 없는 너무 어려운 문제다.
2.
책을 읽을수록 작가님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글에서 활용하는 소재들의 수준과 결론의 갭 차이가 상당하다고 해야할까.
뜬금없는 소재들이 툭툭 튀어나와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싶다가도 진지한 결론에 도달하기도 하고,
그와는 반대로 진지하고 심오한 소재들을 열심히 다루다가 결론은 구멍이 숭숭 나있기도 하다.
이는 글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라 주제와 소재의 조화가 굉장히 좋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장한장 열심히 책장을 넘기다 보면, ‘글을 잘쓴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특히 ‘신입생을 위한 무협지‘와 ‘책이 나오기까지‘ 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판타지 + 똘끼(작가님께는 죄송하지만 이보다 적절한 표현을 찾기 어렵다...)는
이 부분이야 말로 진정 작가님이 쓰고싶었던 스타일의 글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부분이었다.
넘겨짚었을 수도 있겠지만 말하자면 그냥 내 취향저격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오랜만에 맘에 드는 책을 만나 기분좋게 마지막 장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