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ㅣ 펭귄클래식 7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노승희 옮김 / 펭귄클래식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시간이 한참 지난 후 햄릿을 뒤적이니 책을 읽었을 당시 내가 느꼈던 햄릿의 동정어린 마음을 뒤로하고 뜬금없이 드는 생각은 왕과 왕비에게는 로맨스가 없었구나, 라는 것과(죽은 지 한달여 만에 다른 남자와 혼인 할 마음을 먹었다면 왕이 어지간히 매력이 없었구나, 라는) 자신이 억울하게 죽은 들, 어린 왕에게 복수를 부탁하는 철없는 왕과 선왕의 억울한 복수극을 위해 아침에도 복수, 낮에도 복수, 매일 복수의 칼을 가는 햄릿가의 타고난 복수혈은 별 수 없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한 나라의 왕자로 태어났으면 영리하고 의젓하게 자라 나라를 지키는 것이 의무이고 자신의 역할인데 햄릿의 복수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도 안타깝다. 물론 선왕의 갑작스런 죽음과 왕비의 때 이른 재혼을 통한 정신적 충격과 햄릿의 올바른 가치관 형성을 이끌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점에서 햄릿의 범죄는 정상참작이 되어야 하지만 피를 부르는 복수는 결국 비극으로 끝날 뿐 어떤 소득도 없다는 게 진리다. 가령 연쇄살인을 저지른 살인범의 개인사를 들여다보니 남다른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고 한들 죄는 결과에 초점이 맞춰질 뿐이다. 증오와 복수로 무장된 이들에게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은 어떠한 보상도 받을 수 없다. 백번 생각해도 너무 억울하여 복수를 다짐했으면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해서 숙부만 죽이면 될 것을 우유부단의 극치를 달리는 햄릿왕자는 밤낮으로 고민하고 머리 굴려 시나리오만 열심히 짜는 바람에 타이밍도 놓치고 자신을 사랑하는 여인도 죽음으로 내몰고 결국은 주변의 모든 인물도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의 종결자가 된다.



오늘 밤 절제하면, 내일은 참기가 수월해지고, 그 다음날에는 더욱 수월하게 되죠. 습관이란 거의 천성을 바꿀 수 있으며 악습을 다스리고 아예 그것을 기적과도 같이 몰아낼 힘이 있기 때문이죠.

P_217



어머니의 이른 재혼이 아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아들이 어머니에게 정조를 강요하며 숙부와의 잠자리를 피하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건 햄릿이 어머니를 모자의 관계를 넘어서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통 이러한 성향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 하는데 햄릿이 숙부에 대한 복수를 지연시킬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차지하는 숙부의 모습에서 자신에게 내제되어 있는 욕망의 실현을 숙부와 동일화시킴으로써 질투와 시기를 넘어선 두려움의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사랑하지만 끝내 이루어 질수 없었던 관계에서, 즉 어머니에게서 채우지 못한 사랑은 여성에 대한 혐오로 변질되고 그런 햄릿을 사랑했던 오필리어는 모진 상처만 받은 채 현실에서 버림받는다. 어떻게 보면 가장 순진하고 안타까운 죽음이 오필리어의 죽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시신 더미를 보니 무자비한 살육이 일어났군, 아, 오만한 죽음이여, 네 영원한 굴속에서 무슨 향연을 열려고 단관에 이토록 많은 왕족들을 무자비하게 쓰러뜨렸더란 말이냐?



P_302





햄릿을 비롯한 주인공들이 가진 잠재적 불안요소가 결국은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처참한 결과를 초래한다. 셰익스피어가 표현하는 비극(죽음)이 의외로 단순하게 표현된다는 것을 오셀로에서 봤던지라 햄릿도 불안한 마음이 없잖아 있었는데 유약하지만 섬세하고 지적인 햄릿이 긴 시간과 공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햄릿, 왕비, 숙부, 레티어스 모두가 누가 뭐랄 것도 없이 한 자리에서 차례대로 띡_하고 죽어버리니 죽음이라는 게 그렇게 허망할 수가 없다. 분명 확실한 비극인데 너무 허무해서 슬픈 감정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단순하지만 각자의 역할이 뚜렷하고 특히나 주인공인 햄릿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요인이 많은 인물인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책이 아닌 연극으로 접해보며 햄릿의 섬세한 감성과 비극을 더 가까이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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