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의 자세 소설Q
김유담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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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이라는 공간은 어떤 이에게는 어린시절이 떠오르는 재미난 장소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엄마나 아빠, 혹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가야 했던 끔찍한 장소일 수도 있다. 그곳에서의 기억이 좋든 좋지 않든 분명한 건 목욕탕은 추억이 담겨있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우리 가족은 목욕탕에 자주 갔다. 목욕탕에 갈 때마다 아빠는 엄마에게 부러움을 표시했는데 그것은 우리 집엔 딸만 둘이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혼자 목욕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내심 아쉬우셨던 것 같다. 하지만 애들 둘을 목욕시켜야 했던 엄마는 무척이나 힘드셨을 것이다. 우리 자매는 엄마의 말을 따라 뜨거운 탕 속에서 몸을 불리고 차례대로 나가 엄마에게 몸을 맡기고 까칠까칠한 이태리 타올에 몸을 맡겼다. 그 당시에는 무척이나 아팠지만 때를 모두 밀고 나면 시원하고 개운했다. 엄마의 등을 밀어주는 것도 좋았고 동생과 따뜻한 물에 들어가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오는 탕 한가운데서 장난을 치는 것도 좋았다. 그렇게 내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목욕탕에 대한 소설이라니.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김유담 작가의 '이완의 자세'는 세신사 엄마와 딸에 대한 이야기이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딸을 혼자서 키워내야 했던 엄마는 갖은 고생을 겪고 세신사가 되었다. 갑자기 실력 좋은 세신사가 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엄마는 딸의 몸을 밀며 감을 익히고 기술을 쌓기 시작한다. 그렇게 점차 손님들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하고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을 만큼 자리를 잡게 된다. 하지만 엄마의 손에 몸을 맡겨야 했던 딸 유라는 그 때 쓰리고 아팠던 감각으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기고 말았다. 타인의 손이 몸에 닿는 것에 거부반응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자신을 위해 사람들에게 모욕적인 말을 듣고 무시를 당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했던 엄마에게 유라는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그 미안함 속에는 원망이 뭉쳐져있다.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슬픔, 엄마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미안함,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는 몸. 이 모든 복합적인 상황과 감정들이 뒤섞여 유라의 마음은 병들어가고 있었다.

모든 것을 잃고 목욕탕에서 생활해야 했던 모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이 아팠다. 자식을 위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상처를 주고있다는 사실은 몰랐던 엄마.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었던 딸. 두 사람의 마음이 모두 이해가 갔기 때문에 더 슬펐다.

유라가 물 속에서 몸에 힘을 빼고 이완의 자세를 취하는 것은 그동안의 긴장과 통증을 흘려보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트라우마적인 과거에서 조금은 벗어나 안정을 찾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완의 자세는 삶을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몸과 마음이 경직되면 긴장과 통증이 반드시 찾아오기 때문이다. 유라가 따뜻한 탕 속에서 자신을 자유롭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을 몸 밖으로 흘려보내는 것처럼 우리도 이완의 과정을 통해 마음을 재정비하고 잠시 쉬어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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