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역사인가 - 린 헌트, 역사 읽기의 기술
린 헌트 지음, 박홍경 옮김 / 프롬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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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나라가 들썩였다.  문재인 정권에서 국정교과서 폐기를 결정하면서 논란이 종료된 것으로 결론이 났지나, 여전히 교과서 내용에 대한  문제제기는 계속되고 있다.
나라꼴이...하며 한탄하는 사람도 많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려보면 중국도 일본도, 각자 역사를 유리하도록 조작하느라 고군분투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역사에 대한 노골적인 거짓말은 인터넷의 영향으로 더욱 흔해졌다. 아무나 사전조사를 거치지 않고 제재없이 익명으로 아무글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기이한 주장이라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이유만으로 대대적으로 유포되고 어느 정도의 신빙성을 얻는다.

꼭 근거없는 거짓이 아니라도 국민으로서의 소속감을 심어주기 위해 긍정적인 내용 조작을 필요로 한다. 교과서에는 국가적 승리나 비극은 언급되어도 정부나 국민이 저지를 실수와 잘못된 행동은 생략되어 있다. 유일한 예외가 1945년 이후 서독이다. 서독에서는 모든 학생들에게 나치 정권이 저지른 범죄에 대하여 가르치고, 전국의 강제수용소와 여러 추모비, 박물관을 돌아보며 끊임없이 역사를 되새긴다. 그 외의 모든 나라는 자국의 역사를 '포장'한다.
미화만이 문제가 아니다. 타이완에서 중국본토와 타이완의 역사에 대한 비중문제, 캐나다의 영어권, 프랑스어권 간의 역사의 우위, 브라질 원주민과 아프리카계 브라질 국민의 역사 등, 자국의 역사를 해석하는데 있어 관점과 가치관이 다른 이들간의 논쟁은 쉽사리 해결될 수 없어보인다.
 
일반 대중과 동떨어진 교육환경에서 역사는 모든 지역에서 별도의 학문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역사가 독자적인 과목이 된 것은 1873년이었다. 그 전에는 역사수업이 있더라도 윤리학이나 법학의 일부로 가르쳤다.

서양에서도 역사적인 진실을 찾기위한 노력이 시작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대학에서의 역사교육은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체계화 되었다. 케임브리지에서 제국사를 담당하는 교수는 1933년에 이르러서야 등장하였고, 미국에서 미국사를 가르치는 수업이 등장한 것이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이다.

서양의 역사학이 시간에 대하여 가진 3가지 접근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전형이 될만한 사례 찾기. 과거의 뛰어난 본보기를 찾는 관점이다.주로 그리스 로마 시대의 철학, 정치 등을 배웠다.
 "현명한 사람에게 인생은 문제지만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해결책이다." - 아우렐리우스
둘째, 진보의 투영. 역사는 세계 모든 지역을 아우르는 하나의 선형 진보로 이해하는 관점으로, 미래는 과거 황금기의 퇴보나 흥망성쇠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순환의 결과가 아닌 발전임을 의미한다. 이 신뢰는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사라져갔다. 기술의 발전으로 대규모 살상이 가능해졌고, 국가권력은 악한 목적을 추구하며, 높은 교육을 받은 이들이 인종차별정책을 지지하고, 과학은 지구 멸망에 기여할 수 있었다.
셋째, 전 지구 시간은 지구와 변화하는 환경에 관심을 갖고, 폭 넓고 깊이 있는 시간감각에 기반을 둔, 역사 분야의 다양한 발전을 한데 묶는 접근법으로, 이제 개념화되는 단계이다.  모두가 동일한 역사에 참여하고 있다는 헤겔의 주장에서 시작하지만 서양의 우월성이나 특정 성별, 인종, 국가나 문화의 우위를 투영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우리는 과거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우리보다 앞서 존재한 사람들에 대한 존중을 배운다. 문화가 세계화되어도 본받을 만한 전형은 여전히 필요하다. 기술의 변화, 인구 증가, 직업의 전문화가 진행되어도 근본적으로 지혜는 변하지 않는다. 지혜는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이 직면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살필 때 발견할 수 있다.

미래 예측은 우리의 상상력으로만 가능하며 미래가 현재로 다가오기 전까지 어떤 예측이 옳은지 알 수 없다. 반면 과거는 불완전한 모습이라도 파악할 수 있으며 과거에 닿기 위해 타임머신을 탈 필요도 없다. 그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호기심과 앞서 세상을 살아간 사람들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배우려는 의지다.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일에 무지하다면 어린아이로 남아있는 것과 다름없다. 인간의 삶이 역사의 기록을 통해 선조들의 삶과 엮이지 않는다면 무슨 가치가 있을까?" 
- 로마의 정치인 키케로
 
전체 페이지가 183쪽밖에 되지 않는, 심지어 사이즈도 작은 책인데, 너무 많은 내용을 담고 있어 놀라웠다.
교과서를 수정하고자 하는 여러 의지가 우리나라의 문제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흐름이고 어찌보면 매우 당연한 이야기라는 개념이 신선했다. 음모론이라고 조작이라고 정치적 입장만 내세워 싸울 것이 아니라,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각입장에 대한 이해와 상대를 설득하려는 마음일진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 모습이 안타깝다.
또한, 자국의 역사를 왜곡하고 미화하노라 일본을 욕하지만, 우리도 제대로 된 검증없이, 우리에게 유리하고 듣기 좋은 내용만 골라듣고 거짓을 말하고 있지는 않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너무나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더 많은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세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후대에 당당하기 위해서라도 거짓 뉴스에 현혹되지 말고 올바른 역사를 바라보기 위하여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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