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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살아보기 - 우리가 미처 몰랐던 조선생활사
반주원 지음 / 제3의공간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조선시대 생활사에 대해 잘 설명해놓은 책이다.  조선시대에 관해 시중에 나온 책들은 도서관 하나를 채울 정도로 많지만, 그 중 상당수는 정치사, 권력투쟁 등 쉽게 접하기 힘든 딱딱한 책들이다. 특히 유교 교리관련 논쟁이나 붕당정치의 진행과정에 관한 책들은 필자조차 읽기 꺼려질 정도다. 하지만 이 책의 경우 조선시대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먹고, 살고, 자며 살았는지 알려주고 있기에 다른 책들에 비해 다소 접근하기가 쉽다. 역사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어려움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의식주는 물론이고 결혼과 이혼, 사랑, 화장, 미용, 형벌 등 조선시대 생활사의 거의 모든 부분을 골고루 다루고 있다.


1장 시대를 막론하고 아름다워지고 싶은 여인의 욕망
2장 남겨진 이혼의 기록, 나비를 주고받다?
3장 얼음 창고, 석빙고와 여름철 원기 충전 보양식
4장 한류, 귀한 그림 한 점과 감탄스러운 시와 학문
5장 삼작저고리, 스란치마, 너울… 규수와 기녀의 옷
6장 비밀리에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자, 비선실세
7장 50세에 청려장과 80세에 조장, 노인을 위한 나라
8장 궁궐을 등진 ‘방배동’과 태생이 다른 마을, ‘이태원’
9장 여인이 빛났던 이유, 미모를 완성하는 후광 효과
10장 곡물가루와 약초로 목욕하고, 버드나무 가지로 이를 닦다
11장 권력의 균형을 위한 ‘언론삼사’, 억울한 백성을 위한 ‘격쟁’과 ‘상언’
12장 남성의 옷, 화려한 사라능단에서 면포, 마포로 만든 실용복까지
13장 발효과학 김장과 따뜻한 온돌방의 확산 과정
14장 깊은 밤 남몰래 처리하던 비밀스러운 달거리
15장 하멜과 다블뤼, 쥐베르… 외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조선
16장 국 먹기는 여름 같이 하며, 술 먹기는 겨울 같이 하라
17장 곱게 빗어 넘긴 머리, 관자와 풍잠으로 눈에 띄는 남성의 멋
18장 족보에도 기재된 ‘후부’라는 명칭과 재혼의 일종이었던 ‘보쌈’
19장 고초액으로 혈흔을 찾아내고, 엄격한 삼검제도로 최후를 판결
20장 끓는 가마솥에 풍덩? 팽형이란 무엇인가?
21장 사랑의 징표, 은빛 살구를 선물하고 연비를 새기다



이중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은 부분들을 몇개 소개해보고자 한다. 우선 조선시대의 이혼에 관해서다. 흔히 우리는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이혼이 무척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양반가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였고, 평민에게는 크게 해당되지 않았다. 양반 남성들은 칠거지악을 들어 아내와 이혼할 수 있었고 아내 역시 몇가지 경우(남편이 처의 부모를 구타하거나 처의 가족을 죽인 경우, 장모와 간통한 경우!!!)에는 남편에게 이혼을 신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양반들에게 이혼은 대단한 불명예로 간주되었기에 실제로 이혼까지 가는 일은 드물었으며 대신 형식상 결혼상태는 유지하되 별거하는것이 보편적이었다. 반면 평민들은 그들을 옭아매는 명예나 규율이 없었기에 비교적 쉽게 이혼을 할 수 있었다. 평민들이 이혼을 하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로, 사정파의와 할급휴서가 있었다. 사정파의는 부부가 마주 앉아 서로 이혼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말한 후 이혼하기로 합의하는 것을 말하며, 할급휴서는 이혼의 증표로 서로 옷자락을 잘라 주는것을 말한다. 안타깝게도, 평민이든 양반이든 이혼한 여성들을 사회에서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는것은 같았다.

요즘 점점 여름이 다가오면서 더위가 심해지고 있다. 요즘에는 더우면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틀면 그만이지만, 안타깝게도 조선시대의 조상들은 이러한 혜택을 누릴 수 없었다. 결국 조선시대에 더위를 피하는 방법은 얼음을 이용하는 것이었으나, 당시 얼음은 무척 귀했으며 주로 소수 특권층에게만 돌아갔다. 얼음은 한강이 얼어붙는 겨울철에 채취하여 서빙고, 동빙고라 불린 창고에 저장했으며 이를 여름에 꺼내 사용했다. 이러한 얼음은 주로 왕과 관리들이 사용하거나 왕실의 주요 행사때 사용되었다. 하지만 한여름의 더위가 극심할때면 지배층 뿐만 아니라 빈민과 죄수들에게도 얼음이 지급되기도 하였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조선 왕조의 배려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헌데 이 귀한 얼음을 펑펑 써댄 왕도 있었으니, 바로 연산군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대비의 생일잔치때 연회장 주변에 천근이나 되는 구리 쟁반을 만들고 그 위에 얼음을 가득 채워 에어컨 비슷한 용도로 써먹었다고 한다. 역시 연산군답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조선시대에는 청결관리를 어떻게 했을지 궁금할 법도 하다. 오늘날에는 칫솔, 치약으로 치아 건강을 관리하고 매일 샤워를 하며 몸을 청결하게 유지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청결유지가 오늘날 만큼 쉽지 않았다. 당시에 전신욕은 흔하지 않았는데, 평민들은 기회가 되면 냇가에 가서 목욕을 하였다. 하지만 몸을 노출시킬 수 없었던 양반들은 가끔씩 커다란 나무통에 물을 담고 목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양치질의 경우, 당시에는 칫솔 대신 버드나무 가지를 이용해 이를 닦았으며(물론 치약은 없었다) 손가락에 소금을 묻혀 이를 문지르기도 했다. 당시로써는 나름대로 위생에 신경썼겠지만, 여러모로 오늘날에 비하면 위생상태가 나빴을것 같다.


이 책에 나와있는 조선시대의 생활사를 보면, 삶이 지금보다 훨씬 고달팠을것 같다. 오늘날 우리는 각종 첨단기기를 포함한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혜택을 거의 누릴 수 없었다. 물을 길어오는 것부터 빨래, 목욕, 식사, 난방 등 모든 일들이 오늘날보다 훨씬 귀찮고 힘들었다. 또 기근이나 역병이 돌면 수많은 사람들이 우수수 죽어나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조선시대에는 오늘날에는 느낄수 없는 여유(???)가 있었던것 같다. 1분 1초가 아까운 각박한 현대 사회와는 다르게, 조선시대에는 모든것이 지금보다 여유로우면서도 단순했다. 또 힘겨운 삶 속에서도 우리 조상들은 나름대로 재미와 즐거움을 찾으려 노력했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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