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내게는 보가 서른 한살이고, 이방인이며, 좋은 변호사를 고용한 여유조차 없이 살고있으며,
회사에서 일하다가 회사가 불법을 저지를 회사라 직원이라는 이유로 (몰랐지만)
빠르게 기소되어 실형을 살게 되는 서사가 더 충격이었다.
그가 회사를 다니며 살던 삶보다 오히려 교도소에서의 삶을 더 편안함을 느꼈으며,
출소한 날조차 교도소밖을 나가는 자신에게서 차라리 그 안이 더 났었다는 생각을 가지는것에,
굉장히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
『벌집과 꿀』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뿌리가 없다.
또는 뿌리를 잃었거나, 그 뿌리가 어디인지조차 잊은 이들이다.
「코마로프」에서 탈북한 여성 주연과 러시아 권투선수 코마로프는 말이 통하지 않지만, 묘하게 닮은 외로움을 공유한다.
“말은 나누지 않지만, 기억은 통한다”는 듯, 그들의 침묵이 소설 전반을 지배한다.
「역참에서」는 에도시대 일본을 배경으로 한 가장 이질적인 이야기지만, 오히려 가장 현대적으로 느껴졌다.
조선인 고아 유미를 돌보는 사무라이의 시선은 시대와 민족, 계급의 차이를 넘어서는 '돌봄의 본능'을 이야기한다.
유미를 바라보는 시선은 애틋하고,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감정이 피어나는 순간들이 마치 시처럼 다가온다. 그
정서적 밀도는 매우 높지만, 문장은 단단하게 절제되어 있다. 이 대조가 소설을 더욱 아름답고 깊게 만든다.
많은 문학작품이 디아스포라의 삶을 다루지만, 『벌집과 꿀』은 그들의 고통을 ‘비극’으로서만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존재하는 방식'으로 담담하게 서술하는 것이, 오히려 더 슬프게 다가온다.
「크로머」에서는 런던의 한인 2세 부부가 과거의 그림자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되살아난다.
이들이 자꾸만 과거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장면에서는,
“이민자의 삶은 시간의 이동이 아니라 기억의 증식”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벌집과 꿀」은 모든 이야기 중 가장 거칠고 냉소적이다.
러시아의 작은 마을, 억압된 소수민족 고려인들의 일상이 어두운 사건 속에서 펼쳐진다.
생명을 앗아가는 체제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사랑은 억눌린다.
소설속에 담긴 분노가 느껴지지만 문장은 굉장히 절제되어있어
반대로 침묵으로 비춰지는 분노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파격적이고, 피폐하지도, 잔인하지도 않은 담담한척하는 이 소설은
소설이 아닌, 지금 어디선가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현실처럼 다가온다.
* 특히나 소설의 번역이 굉장히 서정적이고 부드러워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