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 - 제2회 퍼플로맨스 대상 수상작
박소정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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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 - 박소정 저 / 다산책방

사람도 사랑도 저마다의 향기가 있다








결혼을 불과 일주일여 앞두고 있는지라, 대구에 있는 본가에 자주 내려가게 된다. 그렇게 최근 몇 주동안 몇 차례를 왕복했건만, 지난 주말 본가에 머무를 때에는 막상 부모님과 사적으로 보낸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긴 내 앞가림하기에도 바쁜 시간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손 치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들어 집 근처의 수목원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산책을 나섰다. 주말이라 그런지 제법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 모두 한결같이 아름답게 핀 꽃들에 아낌없는 감탄사를 선사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 부모님도 예외는 아니셨다. 



연륜의 차이인지 타고난 천성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나에 비하면 부모님은 생명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신 것 같다. 또래에 비해서는 나 역시 정이 많은 편이라 자부하지만, 아직 정을 주고 받는 것의 무서움을 몰라서일까? 확실히 부모님 보다는 애완동물이건 꽃이건, 수목이건 쉽게 정을 붙이고 쉽게 정을 떼는 편이다. 부모님의 경우는 뭐랄까, 대단히 조심스러운 느낌이 든다. 꽃이건 애완견이건 수목이건 스스로 정을 주며 기른다고 결심을 가지기까지 무척 오랜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번 정을 붙이고 기르는 대상이 되면 최선을 다해서 대상을 가꾸고 기르신다. 짐작이건데, 아마도 젊은 나보다는 생명의 가치를 더 잘 알기 때문에, 그래서 정을준다는 것에 담긴 '책임'의 의미를 더욱 잘 알고 계시기에 그러한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키우는 화분들은 금새 시들시들해지는 반면, 본가에 있는 꽃과 수목들은 죄다 싱싱한 걸보면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보면, '기른다'라는 것은 어찌보면 조금 이기적인 표현일 수도 있겠다 싶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저마다의 가치가 있을텐데... 그 가치들은 때로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으로, 때로는 후각적인 향기로, 그렇게 저마다의 형태로 표현될텐데 오직 수용하는 사람의 구미에 맞춰서 그 가치를 평가하고 일방적으로 정을 준다는 건 참 잔인한 일일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가 어떤 대상으로부터 가치와 만족을 얻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관심과 애정을 쏟아야 할 의무가 있다는 말도 성립이 되는 것 같다. 게다가 그 대상이 생명이 있는 것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는 향기 중에서 가장 더러운 것도, 가장 진하고 아름다운 것도 사람의 향기라 믿고 있다. 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연애를 하고, 사랑에 빠지게 되면 상대방에게서 좋은 냄새가 느껴진다고 한다. 각자의 체취도 있겠지만 수용자의 입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것이 상대방의 여러 요소들을 기꺼이 감수하고 수용하겠다는 심경의 변화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그것은 곧 사랑에 대해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테니까.



최근에 박소정 씨의 소설 [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를 읽었다. 말랑말랑한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향을 고르는 장인을 뜻하는 조향사 수연과 조선 중기의 봉림대군 간의 로맨스를 다룬 소설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리 달달하지도, 그리 향기롭지도 않은 조금 실망스러운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우선 읽는 독자인 본인이 감정이 매말랐기 때문일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낭만이 살아있다고 믿고 싶은 청춘이기에 그 가능성은 배제하고 살펴보면, 소설의 전개에 있어서의 문제도 한몫하는 것 같다. 전반부에서의 수연의 삶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자연스러운 흐름은 쉽게 소설 속에 녹아들게 하는 매력이 있으나, 중반부에서부터 시작되는 로맨스의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거의 표현하지 않은 채 지나치게 빠른 흐름으로 생략해버리고 있어 아쉽다. 조선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보니 자연스레 신분과 시대의 한계를 고려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사랑의 감정이라는 건 그래도 전 시대를 포괄하는 보편적인 감정이 아니었던가? 그 부분에서 정말 '사랑하는 것이 맞나?'하는 약간의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이해가 가지 않았던 건, 두 사람의 로맨스에는 위에서 말했던 '책임'이 빠져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사랑의 책임에는 '상대방을 알아주는 것'도 포함될 것이다. 그래서 '사랑'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왠지 '가슴앓이' 정도라고 말해야할 것 같은... 바로 그런 느낌 말이다. 저자분이 역사와 향기에 대해서 많은 조사와 공부를 한 것이 느껴지지만, 그런 특색 때문에 사랑의 본질이 선명하게 전달되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사랑의 풋풋함'이라는 말로는 감출 수 없는 소설의 한계가 아닐 듯 싶다.

 

그럼에도 사람의 향기를 통해 사람을 이해하고 느끼고 사랑한다는 컨셉은, 분명히 굉장히 로맨틱한 부분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의 익숙한 향기만큼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도 없고, 막 시작한 연인의 향기만큼 가슴 설레게 하는 것도 없으니까 말이다. 사람의 향기를 통해 감정을 느낀다는 건 그 사람의 외향적인 요소가 아닌 사람의 본질을 바라봄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향기를 느낀다는 것은 내 감정들에도 솔직히 대면한다는 것을 뜻한다. 어떤 이유 때문에 사랑한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것. 바로 그것이 사랑의 본질일테니까 말이다.

 

고교시절, 한 여자아이에게 고백했다가 뚱뚱하다는 이유로 차인 방울친구가 있었다. 실연당한 그 친구가 그 이후로 한 달만에 110kg에서 70kg으로 40kg을 감량하고 내게 한 말이 있다. "참 유치하게 느껴지겠지만, 때론 로맨틱 드라마나 연애소설들이 필요할 때가 있다고. 그건 그 소설과 드라마가 사실에 가까워서가 아니라 매마르기 쉬운 사람의 감정에 따뜻한 바람을 불게 해주는 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그 당시만 해도 뭔 개소리냐며 웃으며 대화를 넘겼지만 지금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친구가 내게 그렇게 말했던 것처럼 타인들에게도 같은 말을 해주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과 사랑의 본질이 아닌 외향과 순간의 감정만을 추구하며 스스로의 가벼운 감정들을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여가며 위로하는 현대인들에게, 어쩌면 이 소설은 마음을 녹여주는 따스한 훈풍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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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출판의 서포터즈 활동을 통해 지원된 도서에 관한 서평입니다.

직접 독서 후 어떠한 사심없이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여러분의 덧글과 공감은 제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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