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시대 -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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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시대』 - 알랭 드 보통 저 / 문학동네 출판

뉴스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실은 몇 일전에 있었던 제 7기 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단에 지원을 했었다. 물론 요즘 정신이 없는 통에 접한 소식이라 완전히 집중을 못한 것도 있고, 그동안 블로그를 조금 소홀했던터라 자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 열심히 작성해서 지원하고 발표일을 기다렸더랬다. 큰 기대는 없었지만, 그래도 설레고 조마조마한 그 마음을 간만에 느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아쉽게도 결과는 낙방. 다음해를 노려봐야겠다 싶다.

 

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단에 지원할 때 작성해야 할 서평은 두 이었다. 그 중 한 편은 이동진 씨의 [밤은 책이다]를 쓰기로 하고, 작성을 거의 마무리하려는 찰나였는데 그 다음 날 그 책이 '오늘의 책'에 선정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제출할 서평에는 '오늘의 책에 선정되지 않은 책'이라는 조건이 붙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 한 권을 골라 급히 서평을 작성해야만 했다. 그 때 눈에 띈 책이 바로 알랭 드 보통의 [뉴스의 시대]이다.

 

물론 결과론 적인 이야기지만, 지나고나서 생각해보니 이 책은 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단 지원서에 쓰기에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책인 것 같다. 왜냐하면 지원서는 단 1500자 내의 글로 정리를 해야했기 때문. 오늘 날 사회의 여러분야에 걸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뉴스'라는 방대한 현상에 대해 분석하는 책을 단 1500자로 요약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선정단에도 떨어진 마당에 기왕 쓴 서평을 길게 풀어서 이야기해보자는 심정으로 이 포스팅을 작성하고 있다. 미리 말해두자면, 알랭 드 보통의 [뉴스의 시대] 서평의 경우에는 두 개의 포스팅으로 나눠 쓸 예정이다. 첫 편에서는 최대한 많은 내용을 넣어서 이야기할 것이고, 두 번째 편에서는 간략하게 핵심만 요약해서 이야기할까 한다. 따라서 긴 글을 읽기가 불편하신 분들은 두 번째 편(링크)만 보셔도 충분하실 것 같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책에 내용에 집중해보자. 

 

아침에 일어나 하는 일을 떠올려보자. 세수/양치와 더불어 신문을 가져오거나 TV를 틀어 각종 매체를 접하는 장면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콩나물 시루 같은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조차 사람들은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뉴스기사를 검색하며, 운전자들도 라디오를 통해 뉴스를 듣는다. 이처럼 뉴스는 목적을 가진 행동을 넘어서 마치 하나의 습관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만큼 오늘 날의 언론과 뉴스가 차지하는 역할과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크며 실제로 직간접적으로 수용자의 가치관 형성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데 뉴스가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는 것에 모두가 동의하면서도, 형식적/습관적으로 뉴스를 수용하게 되면서 짚고 넘어가야 할 뉴스의 중요한 의미들을 무심히 넘겨버리는 현상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가지지 않는다. 이정도의 영향력이라면 뉴스를 마치 학문의 영역처럼 받아들일 법도 한데, 학문은 고사하고 체계적인 수용법을 익히려하지 않는 것이 의외일 정도다. 저자는 오늘 날 뉴스를 전하고 대하는 것에 숨겨진 문제점들을 지적하면서, 뉴스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의 올바른 수용법을 알려주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뉴스를 상황별로 분류하고 각각의 수용법 및 언론이 내포한 문제들을 언급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된다.

 

먼저 알랭 드 보통은 오늘 날 뉴스정보가 넘쳐나면서 현대인들이 마치 억지로 사육을 당하는 것처럼 정보를 섭취하고 있는데, 소화시키지 못할 만큼의 정보를 왜 우리는 거부할 수 없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원인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것은 통제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과 그것이 누적되어 만들어내는 공포 에 기인하는 문제이기 때문이. 불안과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이상적인 방법은 무지에서 오는 불확실성 자체를 차단하고 모든 상황을 통제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신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며, 남은 유일한 방법은 내면의 시선을 공포로부터 다른 쪽으로 돌리는 것 밖에 없다. 우리가 뉴스에 집착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뉴스는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 불특정영역의 사건을 자극적이고 심각하게 다루고 있고, 수용자들은 그런 (자신에겐 해당되지 않는) 심각한 문제들을 보면서 일시적인 위안과 쾌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

 

그런데 이러한 위안은 말 그대로 일시적이다. 불안의 근본적 원인이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가 보고 듣는 뉴스의 대부분은 순간의 위안을 위해 이용될 뿐, 정보나 지식으로서 누적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뉴스 중 우리에게 보다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들을 선별해서 올바르게 수용하는 능력이다. 알랭 드 보통은 이것을 이것을 뉴스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자기만의 상념에 귀 기울이는 구도자적 훈련이라 명명하고 있다.

 

저자는 뉴스를 전하고 수용하는 올바른 태도를 정치 / 해외 / 경제 / 셀러브리티 / 재난 / 소비자정보 / 내면이라는 뉴스별 주제에 따라 분류하여 설명한다. 그리고 분야별 특징을 설명함과 동시에 뉴스가 가진 보편적인 문제점에 대해서도 함께 언급하고 있다. 아래에서 보다 자세하게 각 분야별 문제점과 저자가 주장하는 것들에 대해서 알아보자.



정치 뉴스의 경우 : 

눈을 감고 코끼리의 부분만을 만져서는 코끼리의 모습에 대한 수많은 다른 정의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사건을 전체 맥락이 아닌 작은 부분에만 집중하게되면 본질이 흐려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오늘 날의 정치 뉴스가 가진 맹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의도되었건 의도되지 않았건 간에)사건을 조각조각 내어 단편적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우리는 뉴스가 말하는 핵심을 놓치게 된다. 그래서 문제에 대한 몰입도와 재미를 잃고지루해하는 것이다민주주의 하에서 대중이 문제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것은 치명적이다특히나 이러한 문제가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정치 영역이라면 그 심각성은 더해진다.

 

사실 언론이 희망하는 것도 이런 것이 아니다언론은 문제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도하는 것이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믿으며 실제로 그것을 통해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것만으로는 사회악을 해결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을 심어줄 뿐이며, 우리는 그러한 정보의 늪에서 길을 잃고 있다. 결국 정치 뉴스에 관한 언론의 가장 올바른 역할은 사안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확실히 알려주는 것 밖에 없다.

 

이 방법에 대해 저자는 과감한 대안을 제시한다언론이 저널리즘의 함정에 빠져 객관성에 갇혀있는 것이 문제라면 그 대척점에 있는 편향의 요소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객관성에 대해 정면으로 배치되는 '편향'의 도입을 통해 사실과 더불어 그것에 대한 의견그리고 전체적인 태도 등을 피력함으로써 비로소 뉴스는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것이다게다가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결정효과가 집단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가정하면뉴스가 만들어낸 개선의 이미지들이 긍정적인 미래를 건설하는 쪽으로 사회를 흘러가게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동시에 언론이 뉴스의 역설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뉴스의 역설이란현실의 문제를 밝혀내면서 그 원인이 특정 인물에 있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을 말한다이러한 행태는 시스템의 개선을 통한 동일한 문제 억제의 선순환을 가져오지 못한 채같은 문제를 반복할 뿐이다물론 부정한 인물에 대한 분노는 희망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하지만 그러한 노력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해야만 한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해외 뉴스의 경우 :

중요한 사안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우리가 해외뉴스에 관심(몰입)을 보이지 않는 것은사안 자체가 지루하거나 대중이 우둔해서가 아니다오히려 문제를 전달해주는 언론의 전개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현재의 언론은 대중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를 ‘무지’라고 진단하고 있다그래서 그들이 행할 수 있는 저널리즘의 최선이 ‘많은 정보를 정확히 모으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현재 대중들이 앓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무지’가 아니라 ‘무관심’이다어떤 뉴스에도 흥미가 생기지 않기 때문에설령 그 문제가 알려져 있다 하더라도 쉽게 개선되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 시대그리고 미래의 언론들은 대중이 기본수준 이상의 삶에 대한 사전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고 그 전제 하에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기사를 써야만 할 것이다공감은 그것을 우리의 일상으로 느끼게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며그러한 동질감 하에서만 우리는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를 얻어낼 수 있다

(공감 -> 관심 -> 현실문제에 대한 참여 -> 변화/개선)

 

만약 언론이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고 대중의 관심을 일으키는데 힘을 쏟고자 한다면 예술에 기반한 어떤 기술적인 면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상상의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도를 가진 적절한 사진’등의 영상매체를 동반한다면 수용자가 사건이 스스로에게서 멀리 떨어진 일이 아니라고 느끼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경제 뉴스의 경우 :

경제뉴스는 오늘 날 가장 중시되는 분야 중 하나로 우리가 가장 여과없이 수용하는 뉴스 분야에 속한다. 그만큼 정치뉴스나 해외뉴스와 다르게 수용자가 더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싶어하는 분야의 뉴스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의 경제 뉴스는 그것이 표현되는 방식으로 인해 기본적으로 두 가지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경제 뉴스의 대부분은 근본적으로 보이지 않는 현상에 대해서 수치와 용어를 통해 정제하여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물론 적당한 수준의 요약과 정제는 수용자로 하여금 보다 효율적으로 현상을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다하지만 경제 뉴스처럼 ‘빠르게 변하고’ ‘복잡한’ 현상에 대해 표현의 용이성을 위해 수치와 용어들이 어쩔 수 없이 사용되는 경우에는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입장에서 그 현상을 잘못 이해할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복잡하고거대하고어려운 경제에 관한 기사와 사안들을 접하면서, 수용자인 우리는 그 정보를 해석하려는 고된 노력에 직면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두 잘 살고 싶어하고, 그러한 부를 만들어 내는 경제적 원리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이 크다. 그래서 비록 어려운 문제라 하더라도 경제 뉴스들의 해석을 통해 자신과 세계의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개선 (쉽게 말해서 나와 모두가 부자가 되는)을 꿈꾸며 노력한다하지만 그런 열망들이 이루어진 적이 있는가화가 나는 것은 우리가 어려움을 각오하고 노력했던 만큼의 정당한 보상이나 개선조차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대표적인 경제신문사로 꼽히는 두 신문사의 경제신문을 꽤나 오랜 시간 동안 구독해서 보고 있지만지금도 누군가가 경제현상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으냐는 직접적인 질문을 한다면, 곧바로 답을 하기가 곤란할 것 같다그것이 과연 나만의 문제일까내가 둔해서 그런 면도 없진 않겠지만기본적으로 뉴스와 신문이 경제적 현상을 파편화된 사건으로 보도하기 때문에 그러한 어려움이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나를 포함한 수용자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전체적인 흐름에서 함께 파악하여 하나의 그림을 완성시키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저널은 왜 현상에 대한 전달을 보다 체계적으로 하지 않고 있는가경제가 워낙 복잡해서 그것을 체계화하는 것 자체가 그들의 능력 밖의 일이거나그게 아니라면 현상유지되는 것에서 얻는 그들의 어떤 이익이 크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볼 뿐이다.

  

그리고 설사 개인이 경제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파편화된 경제뉴스의 조각들을 나름의 지도에 맞추어 해석할 수 있게 된다하더라도 그것은 하나의 정보으로 인식될 공산이 크며, 활용 가능한 지식의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경제수치 이면에 내포된 일련의 경제활동(노동소비생산그리고 그것을 뒷바침하는 인간의 활동들)을 상상하며 읽을 수 있는 능력 또한 겸비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 뉴스가 올바르게 전해지고 올바르게 해석되어 올바르게 활용되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수용자들은 지금 이상의 거시적인 안목으로서의 경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이고, 경제뉴스를 생산하는 주체들은 수용자들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도움을 제공해야할 것이다.

 

 

셀러브리티 뉴스의 경우 :

정치나 해외 뉴스와는 다르게 셀러브리티 뉴스도 경제 뉴스처럼 수용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뉴스에 속한다. 다만 경제 뉴스가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서 수용하려고 하고 노력도 동반하는 것에 반해, 셀러브리티 뉴스는 현실적 필요보다는 하나의 흥미유발 측면에서의 가십거리로써 이용될 뿐이다. 하지만 셀러브리티 뉴스의 본래의 속성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인간은 누군가를 존중하고 선망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그리고 그 선망의 대상을 통해 우리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러한 감정들을 자신과 사회의 발전에 교육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관심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셀러브리티에 대한 뉴스를 하나의 교재처럼 이용하고자 만들어진 것이 셀러브리티 뉴스인 것이다.

 

셀러브리티 뉴스가 단순한 가십거리가 아닌 존중의 의미를 담은 뉴스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셀러브리티에 대한 존경과 숭배를 생산적인 방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들이 필요하다. 1) 첫 째, 수용자가 먼저 존경할 대상의 물색을 신중하고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 그리고 2) 셀러브리티의 모습을 전하는 언론 역시 보도 내용을 선별해야만 한다. 이러한 두 가지 전제가 선행되려면 '인터뷰 주체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혹은 '그에게서 무엇을 배워야만 한다' 라는 생각이 먼저 퍼져야만 한다.그러나 불행히도 셀러브리티를 대하는 현재의 언론은 성공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타인의 성공 사례를 제시하는 것으로 셀러브리티를 활용하는 것이 전부라는 뜻이다수용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성공사례는 나 역시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주기도 하지만오히려 역으로 시기심을 동반한 좌절감을 안겨주는 부분이 더 클지도 모를 일이다.

 

시기심은 배척되어야 할 비도덕적 감정으로 치부되곤 하지만사실 차이를 인식하여 변화와 발전의 동기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감정이기도 하다그렇다면 언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노력은 이러한 시기심을 긍정적 동기로 바꾸는 것이다그 과정은 누군가의 성공 결과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그 성공이 이루어진 과정과 원인들에 대해서 명확히 제시할 때만 가능해질 수 있다인간은 구체적일수록 현실적이라 믿기 때문이다동시에 그 성공과정과 결과물이 언제나 대응되는 것이 아니라 통계적으로 매우 극소수만 성공할 수 있음을 인지시킴으로써성공에 대한 현실감각을 유지하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한편 셀러브리티 뉴스의 활용측면이 아닌 스타에 주목하는 사회적인 현상 자체를 바라봤으면 한다. 스스로가 셀러브리티가 되고 싶어하고셀러브리티에게 관심을 가지고그것을 평가하고 시기하는 것 모두 관심’이라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 ‘관심은 상대방에게서 내게 전해지는 것이니만큼 내가 그 속성을 결정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명성있는 사람들이 보다 품격있는 관심을 원하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도그리고 관심/인기가 생김에도 오히려 더 공허함을 느끼는 것도인기있는 사람을 시기하고 헐뜯는 일부 대중들도 모두 관심의 결핍과 그것이 가진 속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다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확실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다만 이 시대에서 이뤄지기 극히 어려운 상호 간의 진심으로 우러나는 품격있는 관심이 통하는 사회가 되는 것뿐이라고 포괄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을 뿐이다.

 

 

재난/범죄 뉴스의 경우 :

재난이나 범죄를 다루고 있는 뉴스의 경우에는 대단히 자극적인 소재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끈다는 면에서 중요하게 보도되는 분야이다. 서평의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인간은 통제할 수 없는 문제를 보면서 불안감을 느낀다. 자연재해에 관련된 뉴스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개인의 힘으로 사건을 바꿀 수 없다는 일종의 무기력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피해자는 아니다'는 사실로부터 안도감과 겸손함을 얻기도 한다. 자연재해 자체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뉴스의 메세지를 동전의 양면처럼 받아들임으로 해서 일상의 삶에 보다 충실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위험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긍정>부정'이 되도록 노력하며 살아갈 것이다.

 

한편 범죄 뉴스의 경우도 비슷하다. 주의할 점은 사건의 진행과 결과와는 별개로, 한 인간이 판단되어지는 것은 사건의 서술 방식에 크게 의존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다시 말하면, 수용자의 입장에서는 범죄 뉴스를 대할 때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같은 인간임을 지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범죄 뉴스를 보면서 쾌락을 느낄 것이 아니라, 왜 가해자는 인간성을 져버리고 그런 상황이 되버릴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타산지석의 태도로 임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피해자가 되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만 한다.

 

 

건강/소비자정보 뉴스의 경우 :

'신약이 개발되었다'는 소식이나 '어떤 음식이 몸에 좋고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는 뉴스처럼 우리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뉴스는 없는 것 같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건강(한정된 수명)에 대한 의문과 더불어 그것을 극복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는 존재다. 물론 유한성을 지각하고 운명과 수명에 체념하며 살아온 기간이 인류역사의 대부분이었지만,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그 본능(숙명)을 극복할 수 있다는 암묵적인 희망이 생기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희망을 뉴스가 더욱 빨리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종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은 우리를 자꾸만 집착하게 만든다. 진시황이 '불로'에 눈이 멀자 몸에 좋다는 말만 들으면 사람들을 파견했던 것처럼 말이다. 결국 이러한 희망은 우리를 뉴스에 신경질적으로 집착하게 만들고 있다.

 

소비자정보 뉴스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가치창출의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러한 순기능적인 측면을 넘어서서, 소비를 통해서 개인의 행복을 살 수 (충족시킬 수) 있다고 믿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 게다가 언론에 광고와 같은 상업적인 요소가 개입되면서 효과적인 정보를 제공해야할 본래의 역할을 상실하게 되었다. 소비자는 더 이상 언론과 광고를 신뢰하지 않는다. 다만 소비함으로써 얻는 일종의 만족을 희망할 뿐이다. 그러나 확실하게 알아두어야 할 것은 소비로 인한 행복은 구매로 인한 목적 만족에서오는 일시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각 뉴스 분야별 문제점과 올바른 뉴스 수용법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그의 주장에 덧붙여 내 생각을 정리한 자료이긴 하지만 여전히 그의 생각이 전적으로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알랭 드 보통은 일상적인 현상을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서 그 본질을 살펴보는 것에는 재능이 있는 작가지만, 그 내용들을 지나치게 현학적으로 서술하는 작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홍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물의 흐름을 이해하고, 때론 방벽을 쌓고, 때론 수영을 배워야만 하는 것처럼오늘 날 뉴스의 홍수 속에서 스스로의 주체성을 유지한 채 정보를 선별하고 정리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에는 동의한다. 그런 면에서 뉴스의 시대를 살아가는 자기만의 방법을 익히고자 하는 독자에게, 이 책은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이어  [뉴스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뉴스의 시대' 2편](링크) 에서는 위의 내용의 개괄적인 정리와 더불어 '내면으로부터의 뉴스' 주제에 맞추어 남은 글을 이어가볼까 한다. 1편의 내용이 홍수 상황에서 각 조류별 수영법을 익히는 연습이었다면, 2편에서는 홍수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는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가 될 듯 싶다. 덧붙여 발췌한 주요 문장들 역시 함께 포스팅 하도록 하겠다.



001  뉴스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뉴스의 시대 1편]

002  뉴스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뉴스의 시대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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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뉴스를 보면서도, 실제로는 보지 않고 살았던지도 모르겠네요.

리뷰는 어떠한 상업적인 의도 없이 자율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덧글과 공감은 제게 큰 응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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