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 저 / 다산책방

KBS 교양프로그램 [TV 책을 보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다시 읽기






잔잔한 호수에 돌맹이 하나가 던져지듯, 때론 시간이 지나면서 파장이 더 커지는 혹은 더 명확해지는 것들이 있다. 내겐 올 초부터 얼마 전까지 몇 번을 되돌려 읽게 했던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그러했다. 공교롭게도 책의 내용 역시 과거의 의도치 않은 행동들이 축척된 후 감당할 수 없는 결과로 다가왔을 때의 당혹스러움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파장이 커지는 그런 내용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반전'이 큰 매력인 책이다. 그러다보니 '두 번 되돌려 읽는 책'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른다. 그만큼 반전을 알게 된 후 놓친 부분을 확인하려는 욕구를 불러 일으킨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번에 종종 찾아보는 KBS 교양프로그램, 'TV 책을 보다'에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방영한다길래 재방송을 챙겨보았다. 마치 다시 한 번 책을 곱씹는다는 심정으로.

 

[TV 책을 보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편을 통해 내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기존에 책을 읽고 나름의 결론을 내렸었던 것들이 맞는지 확인을 받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니까 '시간과 기억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예상치 못한 문제들에 대해서, 과연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하는가'라고 책의 주제를 파악했던 것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다. 워낙 소설이 교묘하게 쓰여졌기도 했거니와 이런저런 장치들로 나 혼자서는 확신을 못하고 있었나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연애 전문 상담가 김지윤 소장이 베로니카와 토니, 에이드리언과 사라 혹은 베로니카 등의 연인으로서의 관계에 대해서 언급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지만, 기본적으로 소설의 주제는 프로그램의 도입부에 제시된 '기억과 역사의 허구성', 그리고 후반부에 나오는 '책임의 문제'에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다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내가 판단하기에 나는 이 소설이 '역사의 허구성을 끌어와서 개인의 기억과 스토리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은 '개인의 기억을 통해 역사의 허구성을 말하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비슷한 말 같기도 하지만 엄연히 방향이 다르다.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문제인가라는 하나의 판단이 더 개입된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확실히 전문가들의 의견이 옳았던 것 같다. 이것을 인정하고 다시 소설을 바라보니 보다 명확해지는 느낌이다.


나는 종종 예전 일들을 떠올리며 실소를 짓곤 한다. 떠올리는 기억들은 주로 어릴 적 어처구니 없었던 실수나 멍청한 행동들. 그런데 그 당시의 내가 그것을 실수라고 자각하진 못했던 것 같다. 지금에 와서야 생각해보니 그 때 나는 너무 어렸고, 멍청했으며, 실수투성이었고, 어리숙했다는 것이다. 예전엔 이해되지 않던 것이 지금에서야 이해될 때, 부정할 수 없는 흔적들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실소를 머금는 것 밖에 없었다. 이처럼 소설은 과거의 일들이 쌓여 바꿀 수 없는 어떤 흐름을 만들어 냈을 때, 그리고 그것이 뒤늦게 이해가 되는 상황에 처했을 때, 그 때 느끼는 공포와 책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b라는 극단적인 결과물로서 말이다. (b의 존재는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더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책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별도의 서평을 통해 하도록 하고, 이 포스팅에서는 내게 보다 확신을 주었던 부분이나 새롭게 알게 된 것들, 그리고 흥미로운 부분을 말해볼까 한다.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라면 역시, '축척이 있고, 책임이 있고, 거대한 혼란이 있다' 라는 문장. 그 부분을 통해 '의도가 없더라도 혼란에 의해 연관되어 진다면(그렇게 인지하고 있다면), 그것은 응당 책임을 져야할 부분이다'까지가 내 기존의 생각. 그런데 프로그램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비록 책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의도한 행위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의 막막함. 어떤 식으로 책임을 져야하는가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남겨두고 있다는 점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이 외에 인물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토니는 왜 기억을 왜곡했던가?(나는 정말 토니의 의도적으로 기억을 왜곡했다고는 조금도 생각치 않았었다) 라는 물음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에이드리언은 천재성이 빛나는 청년으로 극중 세계와 극중 인물 모두 그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럼으로 인해 그는 더욱 외로워졌다는 설명에는 많이 공감했다. 베로니카를 설명할 때는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표현하지 않는, 표현하더라도 약간의 힌트만을 제공하는, 그래서 어떻게 보면 비극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 같기도 한 인물로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패널들의 공통적인 반응은 신비감이 있는 매력적이 여자라는 것. 적어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 비공감이다. 나는 10년째 연애를 하고 있지만,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이 처자가 정말 단순하고 신비감없는 직설적 표현을 하는 처자이지만 이게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꼭 신비감있는 화법을 구사하지 않는다고 해서 여성이라는 존재가 그리 쉽게 신비감이 사라지는 존재도 아닌 것 같다. 10년동안 알아도 여전히 모르겠는 것이 여자더라. 여성의 입장에서는 토니가 눈치없는 답답한 남자처럼 느껴질 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베로니카 역시 답답한 여자인 것이다.

 

아, 그리고 책의 주제와도 같은 문장을 파크리트 라그랑주라는 인물의 말에서 인용하는데, 알고보니 이 라그랑주의 인물이 작가의 이름을 불어화한 허구의 인물이라는 점도 참 재미있었다. 결국 자기 말을 직접적으로 한 것인데, 이런 능글능글함을 노 작가의 연륜이라고 해야할 지 특유의 재치라고 해야할지는 모르겠다.


끝으로 줄리언 반스의 인터뷰는 뭔가 멋져보이더라. 그의 서재와 타자기가 멋져보였다는 패널의 말에도 동의하지만, 그의 눈망울에서 뭔가 막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서글픔 같은 것이 느껴졌다면 과장일래나? 그렇지만 무던히, 끊임없이 시간의 흐름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을 농담처럼 건내는 그의 모습에서 그런 흐름 자체를 본인이 받아들인 것 같은 느낌이 내겐 분명 보였다. 그 모습이 참 멋졌다.

 

 

어떤 이들은 이 책을 '심리스릴러'라는 장르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만큼 기억에 의존한 사건의 모습들을 퍼즐 맞추듯 재배열하는 과정이 뒤따라야만 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TV 책을 보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편은 책의 내용을 재편성하는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다만, 어디까지나 다시 '재'배열하기에 좋다는 말이다. 반전이 중요한 포인트인만큼 만약 책을 읽지 않은 분들이라면 프로그램 역시 독서 후로 미뤄두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책은 정말이지 강력 추천할만큼 재미지다. 그리고 재미 이후에 무거운 생각덩어리를 한아름 선물 받게 될 것이다.





001 … 시간과 기억, 그리고 책임의 관계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진짜 리뷰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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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즈 미션에 따라 프로그램을 청취한 후 솔직한 후기를 작성하였습니다.

여러분의 덧글과 공감은 제게 큰 응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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