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스타일 - 지적생활인의 공감 최재천 스타일 1
최재천 지음 / 명진출판사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내가 최재천씨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2년의 <청춘 페스티벌>이라는 한 강연회 형식의 축제 때였다. 저렴한 가격으로 여의도 플로팅 무대를 빌려 하루 반나절 동안 진행되는 강연회 및 행사가 마음에 들어서 거의 매년 참석하고 있었는데, 그 해에는 최재천 씨가 초청 연사 중 한 분으로 나왔던 것이다.

 

 ( 청춘페스티벌 홈페이지: http://bluespringfestival.com/ 참고 )

 

 

부족한 상식이 들키는 것 같아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당시 나는 통섭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봤었다. 강연회의 주제도 직접적인 통섭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 말이 있나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었던 것 같다. <청춘 페스티벌>이라는 기획 취지에 맞게 젊을 때 이것저것 경험하고 느끼라는 취지에서 ‘방황하라’라는 주제의 강연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다양한 경험이라는 것이 결국 통섭적 삶을 사는데 필요한 전제가 아닌가 싶다. 아예 존재 자체를 모르면 그것에 대해 생각을 해내는 것조차 힘들다. 좋은 경험이었건 나쁜 경험이었건 간에, 무언가를 느껴본 사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시각과 생각의 바구니는 이미 넓어진 것이다. 그러고보면 젊은 시절의 방황은 낭비가 아니라 탐구 과정인 셈. 어찌되었건 그 당시 과학자라는 명함으로 인문학적 강의를 한다는 점이 참 인상깊었다. 특히 화려하진 않지만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무언가 묵직한 아우라가 느껴졌다고 해야하나. 첫 인상이 대단히 좋았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통섭’에 대해 관심이 생기면서 최재천 씨의 저서들을 하나씩 탐독하고 있는 중이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쨘'하고 바로 통섭에 대한 관심이 생긴건 아니고, 여러 요인에 의해, 긴 시간의 생각 끝에 점점 끌리게 되었다. 나는 그 동안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다른 분야에 대한 호기심을 억제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물론 전문직 종사자들이 쉽게 빠지기 쉬운 오만인 것을 나도 안다. 무튼 여러 분야에 대한 지적호기심에 투자할 시간과 열정을 나의 분야라고 생각되는 한 분야에 집중하면 분명 더 깊이 파악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기존에 하던 일을 쉬게 되었고, 요즘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과 공부를 해가면서 억제했던 지적호기심이 살아나고 있다고 해야하나... 이 분야, 저 분야 연관된 분야들을 하나씩 간을 보다보니 이것들을 통합할 수 있는 공통적인 가치들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다른 포스팅에서도 종종 말했지만) 나는 새로운 가치는 천재들에 의해서 한 순간 만들어질 수도 있지만, 기존에 존재하는 것들 간의 비교과 재정립에 의해서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지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생각들과 내가 처해있는 상황, 그리고 융합을 중요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나다보니 ‘통섭’이라는 가치에 저절로 끌리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손에 쥐게 된 것은, 통섭에 대한 저자의 '태도'를 배우고 싶어서였다. 이름이 걸린 스타일이라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제목. 게다가 스타일이라고 내세우기에는 그다지 특별함을 찾기 힘든 일상적인 내용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통해 만족스러운 피드백을 받았다. 다시 말하지만 제목서 말하는 최재천씨의 스타일은 그의 지식과 주장에 묻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식과 세상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지적생활인이라는 그의 별명은 부럽다. 일상에서 겪는 상황과 생각과 순간들 전부를 관점에 따라서 탐구하는 자세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니까. 사실 통섭은 자신이 가진 마음의 벽을 무너뜨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에서 일관되게 느꼈던 것이 바로, 최재천 씨는 결코 자기 위주의 사고를 고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물 연구라는 그의 연구분야로 인한 특징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상대의 관점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견지한다. 대상을 설득과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와 탐구의 대상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참 부럽기도 하고 또 동시에 배우고 싶은 자세다.

 

이 책을 통한 수확 중에는, 내가 가졌던 생각들에 대해 면죄부를 주었다는 점도 있다. (엄밀하게는 전문가로서의 역량이 부족했음에도) 전문가라는 변명으로 안주하고 있었음에 대한 일종의 죄책감을 물리치는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통섭이 가치를 가지기 위해서는, 여러 분야의 체계적인 세분화 역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지적호기심을 자극하는 전문분야에 대한 깊고 세분화 된 탐구가 전제될 때 비로소 서로 다르게 보이는 것들의 통합이 의미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너지 역시 더 클 것이고. T자형 인간에서 가로축과 세로축, 깊이와 넓이는 결국 상충되는 내용은 아니었다. 행동과 태도의 문제였던 것이다. 결국 나는 전문가가 될 것이고, 마음의 문도 열어둘 것이다.

 

때론 하나의 경험이 낚시와도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의도치 않은 하나의 경험이 수많은 다른 경험의 첫 실마리가 되는 경우를 수두룩하게 봐왔기 때문. 이 책이 마음에 들었던 것 중 하나는 저자가 작은 주제를 설명함에 있어서 대부분 특정 저서를 먼저 제시하며 본인의 생각을 서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분야에 대한 호기심을 자연스럽게 자극한다. 책 한 권을 읽고 났더니, 여러 추천 도서 목록을 받은 느낌이다. 이 책이 다양한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데 하나의 길잡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마이클 폴란 <욕망의 식물학>

에드워드 윌슨 <인간 본성에 대하여>

에드워드 윌슨 <통섭 : 지식의 대통합>

레슬리 스티븐슨 <인간 본성에 관한 10가지 이론>

김영하 <보물선>

폴 에크만 <텔링 라이즈>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정진아 <스무 살, 모든 것을 걸어라>

김수종 <고마워라 인생아!>

데이비드 마호니 <은퇴 없는 삶을 위한 전략>

안젤라 로이스턴 <미래를 여는 소비>

아트 마크먼 <스마트 싱킹> 

 

이상은 이 책에서 보았던 관심이 가는 저서들의 목록이다.

 

 

 

 

 

 

 파스칼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보면 상당히 놀라고 반가워한다. 왜냐하면 작가를 만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인간을 만나기 때문이다.” - p.11

 

 과학적 글쓰기와 시적인 글쓰기는 다를 게 없다. 시인의 마음과 과학자의 마음은 하나이다. 성공한 과학자가 되려면 시인 같은 문학적 감수성이 필요하다. - p.22

 

 그동안 강산이 세 번씩이나 변했어도 우리 둘 사이에 절대로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때로 서로 다른 의견을 가졌더라도 끊임없이 대화하며 살아왔다는 점. 우리들의 대화는 거의 언제나 상반된 시각에서 출발한다 ... 하지만 다르다고 해서 대화를 그쳐본 적은 없다. 어쩌면 둘이 많이 다르기에 서로 자극이 되는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적절한 자극을 주며 열띤 논쟁을 벌이고 나면 언제나 함께 같은 언덕에 올라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를 발견한다. - p.36

 

 모르는 게 약인 시절은 지났다. 당연히 아는 것이 힘이다. 그리고 알아야 사랑도 할 수 있다. - p.42

 

 나는 ‘알면 사랑한다’라는 말을 마치 좌우명처럼 여기저기 떠들며 산다. 미국 유학 시절 대학원생들이 모여 사는 학교 기숙촌 뜰에서 각 나라의 아이들이 함께 뛰노는 걸 지켜본 적이 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온종일 함께 노는 걸 보면서, 그들은 장애의 의미를 모른다는 것이 생각났다. 얻기는 쉬우나 버리기는 어려운 것이 편견이다. - p.48

 

 나는 우리 인간이 참 똑똑한 동물임에는 틀림없으나 결코 현명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지구에서 무게로 가장 성공한 생물 집단은 식물들이다. 그 중에서도 꽃을 피우는 현화식물. 이 세상 모든 동물의 무게를 합쳐도 현화식물에게는 새 발의 피다. 그렇다면 숫자로 가장 성공한 생물 집단은? 두말할 나위없이 곤충이다. 이 두 생물 집단의 성공비결은 ‘너 죽고 나 살자’식의 방법이 아니다. 꽃가루받이를 통해 서로 손을 잡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공생이 경쟁을 이기는 가장 현명한 길이라는 걸 우리는 이제 다 안다. - p.55

 

 자연 생태계 속에서 살아가는 생물의 이야기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에서 늘 벌어지는 이야기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우리 조상들은 그렇지 않았는데 현대인들은 마치 자연의 일부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간다. 생태계는 늘 저만큼 멀리 떨어져있고, 우리는 좋은 것을 다 빼먹으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 64

 

 지구 역사를 팔을 벌린 길이라고 가정하면, 사람의 역사는 손톱을 갈면 손톱 끝에서 떨어져 나오는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역사 속의 우리 존재를 알고 나면 스스로 겸허해지는 경험을 할 것이다. - p.68

 

 우리 사회는 방식이 어떻든 일단 움켜쥐는 데까지는 문제삼지 않는다. 그렇게 거머쥔 자더라 뒤늦게 남과 나누라고 조를 뿐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나눠 가지면 안 되는 건가? 그러다 얼마 전 지금은 대학생인 아들의 에세이를 보다가 놀랐다. 본인이 나고 자라면서 가진 게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애초부터 덜 가지는 편을 택해왔다는 아이의 자기 고백.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요즘 세대의 아이들이 공생이나 소통, 공감에 우리보다 훨씬 탁월한 감이 있다. - p.74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우연과 필연의 열매들이다 - 데모크리투스” 우연과 필연! 이 세상을 설명하는 데 이 두 마디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나는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 이 책을 1944년에 출간된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1976년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로 이어지는 생물철학의 전통의 맥을 살려낸 책으로 평가한다. - p.79

 

 나는 그가 객관성이라는 구더기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이 무척 고마웠다. 침팬지와 하나가 되는 그 나름의 과학 덕분에 우리는 ‘인간만이 개성을 지닌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합리적 사고와 문제 해결을 할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기쁨과 슬픔과 절망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육체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고통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어느 종교의 가르침이 이보다 우리를 겸허하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제인 구달은 인간이 고도로 발달한 지성을 특권으로 누리는 만큼, 우리가 생각 없는 행동으로 존속에 위협을 가하는 다른 모든 생명체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 p.83

 

 조지아 오키프의 꽃 그림처럼 야한 그림이 있을까? 그 노골적으로 아름다운 여성의 은밀함에 똑바로 쳐다보기 민망할 지경이다. 하지만 과학을 떠나 오키프의 감성만 보더라도 꽃이란 꽃이란 다름 아닌 식물의 성기다. 사실 동물 중에 섹스를 숨어서 하는 건 우리 인간밖에 없지만, 식물은 어쩌다 대낮에 자신의 성기를 온 세상에 활짝 펼쳐 보이며 사는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스스로 움직여 사랑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물들은 그 은밀한 곳을 풀어헤치고 ‘날아다니는 음경’을 부른다. - p.110

 

 귀한 자식일수록 멀리 보내라 했던가. 부모 곁은 결코 좋은 자리가 못 된다. 부모 발밑에 떨어진 씨앗은 부모 그늘에 가려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부모 역시 자식이 바로 코밑에 있으면 어쩔 수 없이 경쟁해야 한다. 이 무슨 애꿎은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그래서 식물은 자식을 떠나보내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개발했다. - p.112

 

 자연계에는 우리의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많은 맹수들이 있지만, 실제로 그들 간에 싸움이 벌어졌을 때 상대를 죽이기까지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맹수 대부분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무서운 소리를 지르는 것은 치명적인 싸움을 피하고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다. - p.132

 

 개미는 인간 외에 노예를 부리는 유일한 동물이다 ... 노예개미들은 원수의 나라가 자기 나라인 줄로 알고 평생 충성을 다한다. 우리 인간이 대단히 시각적인 동물임과는 달리, 개미를 비롯한 지구의 수많은 동물들은 대부분 후각에 의존하여 산다. 그래서 화학적으로 세뇌를 당하고 나면 아무리 겉모습이 달라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가 시각에 넋을 빼앗기듯 말이다. 관점이 다르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 p.159

 

 사람들은 신, 생명, 우주의 근원이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어쩌면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사고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시간과 공간은 물론 자연의 모든 일은 다 상대적이다. - p.160

 

 “선의의 투자라고요? 그런 이가 어디있습니까? 오직 정보에 어두운 투자자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 p.173

 

 사회생물학의 개념을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청바지의 유행’이나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 결정’ 등을 진화론적 또는 사회생물학적으로 설명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 본성이라는 유전자형과 행동이라는 표현형 간에는 엄연한 간격이 있다는 것은, 몇 주만 수업을 들은 학생도 안다. - p.178

 

 세상에서 가장 효과적인 거짓말은 하지 않은 거짓말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면서 거짓말을 하지 않기란 확실하게 불가능하다. ‘화가와 시인은 거짓말을 허가 받았다.’라는 스코틀랜드 속담이 있지만, 나는 오히려 ‘거짓말이 없다면 인류는 절망과 권태로 멸종할 것.’이라 했던 아나톨 프랑스의 예언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아이가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며 걱정하는 부모에게 오히려 기뻐하라고 말하는 심리학자가 있다. 어린 나이에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지능이 뛰어나다는 말이란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일단 상황 파악이 끝났음은 물론, 그런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만들려는 시도인 만큼의 상당한 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의 연장선에서 나온 가설이 바로 유명한 사회생물학자 로버트 트리버즈의 ‘자기기만 이론’이다. 우리는 남을 속이기 위해 자기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 p.192

 

 관점이 다르다고 해서 소통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지식인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 p.196

 

 “학문이란 한마디로 비교하는 것이란다.” 내가 가장 닮고 싶은 선비이자 국악학자 이혜구 선생님, 그 어른께서 언젠가 막 학문의 길에 들어선 손녀 따님에게 해주시던 말씀을 운 좋게 귀동냥한 말이다. - p.208

 

 경영학의 세계적 대가 피터 드러커는 ‘21세는 지식의 시대가 될 것이며, 지식의 시대에서는 배움의 끝은 없다’라 했다. 평생 새로운 것을 배우며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시대에 가장 훌륭하게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어떤 새로운 지식이라도 손쉽게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고 어떤 분야의 지식이든 자유롭게 받아들이고 소화할 수 있는 융통성을 지닌 사람일 것이다. - p.231

 

 나는 대학생들에게 종종 “방황하라!”고 주문한다. “방탕하라!”고는 하지 않는다. 방황은 젊음의 특권이다. 이 담에 가족을 부양하면서 방황하면 그것은 죄악이다. - p.241

 

 2006년 3월 16일자 특집기사에서 시사평론지 <Time>은 우리 시대를 인류 역사상 가장 대단한 창의와 혁신의 시대라고 규정했다. 그 이유는 혁신의 주체가 소수에서 다수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이제는 누구라도 혁신을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스마트 함이란, “내가 우리를 방해하지 않도록 하라”는 전제를 지키는 선에서의 창의력이다. 조직 사회의 스마트 싱킹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이제 조직의 성공은 성원들이 자유롭게 스마트 싱킹을 하고 그 결과들을 거리낌 없이 공유할 수 있도록 얼마나 유연한 소통과 통섭의 환경을 조성하느냐에 달려 있다.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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