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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가스파르
알로이지우스 베르트랑 지음, 윤진 옮김 / 민음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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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에 걸맞는 감각적인 디자인과 구성에 한 번 감탄하고, 중세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드는 오묘하고도 예술적인 시에 한 번 더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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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핏 쇼 워싱턴 포
M. W. 크레이븐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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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르고 우직한 경관이지만 과거의 어떤 쓰라린 사건을 말미암아 부득이하게 정직 상태에 놓인 워싱턴 포. 그러나 어느 날 컴브리아 지역의 '환상열석'에서 불에 탄 시신들이 연이어 발견되고 흉측한 피부에 '포'의 이름과 숫자 5가 새겨진 세 번째 시신으로 인해 포는 복직하게 된다. 이윽고 그는 사회성이 결여된 천재 분석가 틸리 브래드쇼와 손을 잡고 베일에 쌓인 진실로 이끄는 실마리를 찾아나선다.

포와 틸리의 조합은 그야말로 신선하다. 불협화음 같은 이 둘의 조화는 자칫하면 늦가을의 에스프레소처럼 씁쓸하기만 할 수도 있는 내용에 달콤하고도 새콤한 맛을 살짝 가미한다. 그렇게 사건 자체가 제공하는 미스터리 스릴러로서의 무게감과 두 주인공으로부터 발산되는 인간적인 희극 사이를 마치 시소처럼 균형적으로 오고 가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점이 이 작품의 구조적인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쩌면 자극적이고 심각한 플롯으로만 이어진다간 감정적으로 지칠 수 있는 독자를 위한 작가의 감각적인 배려가 아닐까 싶다.

작중에서 범인은 '이멀레이션 맨'이라고 칭한다. 여기서 '이멀레이션(immolation)'은 종교 의식의 일환으로서 불을 사용해 제물을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사건 현장인 환상열석에 검게 그을린 시신만 봐도 충분히 범인의 명칭과 연결지을 수 있겠다. 포-틸리 조합과 이멀레이션 맨 사이의 구도도 흥미롭다. 처음에는 절대적인 선과 절대적인 악으로 양분된 이원적인 대치로 보인다. 그러나 진실을 향해 파헤칠수록 이멀레이션 맨이 이러한 범죄를 자행할 수밖에 없는 속사정이 수면 위로 드러남으로써 그러한 절대 선과 절대 악의 대치 관계를 야금야금 해체시킨다.

이야기의 시발점이 되는 배경인 영국 컴브리아라는 지역은 나에겐 익숙하다. 그곳은 요즘 주변에 널린 흔한 도시적 면모는 찾기 힘들 뿐더러 도리어 스산한 기분마저 감도는 시골 지역인데, 영국에서 역사학으로 유학 생활을 할 때 청동기 유적 답사의 일환으로 고고학과 친구들과 함께 이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작중에 등장하는 환상열석도 두 눈으로 본 적이 있다. 그때는 그저 하나의 유적으로만 인식하고 있었지만, 이 작품을 마주한 후 서늘한 컴브리아의 정적과 돌무더기 한가운데에 놓인 숯검정의 시신을 상상해 보면 소름이 돋을 따름이다.

환상열석은 미지의 장소다. 고대인들이 왜 이러한 축조물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이유는 여전히 탐구되고 있다. 이에 관한 여러 가설들이 있지만, 그중 환상열석은 종교 의식을 위한 특별한 장소였다는 주장이 주류다. 그럼 어떤 방식으로 의식을 지냈을까? 그것에 대해 밝혀지지 않았지만, 나는 풀, 나무, 헝겊 등으로 만든 인형들로 당시 사람들의 어둡고 추악한 일면을 묘사하는 일종의 인형극을 한 뒤 그것들을 제물로 삼아 불태워 신의 분노를 달래 주려고 했다는 가설에 주목한다.

왜 범인은 하필 '이멀레이션 맨'일까? 환상열석에 치러진 의식에 대한 어느 가설처럼, 범인에게 희생자들은 사람들의 어둡고 추악한 면을 상징하는 인형들이며, 이들을 불태우는 살인 행위를 통해 비극적인 과거로 발화된 자신의 분노를 달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즉, 이멀레이션 맨의 만행은 '인형극(퍼핏 쇼/puppet show)'에서 '제물을 불태우는 것(이멀레이션/immolation)'으로 이어지는 종교 의식, 정확히는 악심을 가진 자신을 믿는 종교 의식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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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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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재수 없는 월직성의 운명을 내려주는 신령에서 벗어나, 우리가 갈 수 있고 만질 수 있으며, 언제인가 우리가 마음껏 누릴수 있는 공간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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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것은 물결을 타고 흘러가지 않고 물결을 거슬러 올라간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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