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인상깊은 한줄]

"선생님, 내 오랜 경험에 비춰보건대 사람이 무얼 하기에 너무 어린 경우는 절대 없어요."(p267)

 

열다섯 살 때의 로자 아줌마는 아름다운 다갈색 머리를 하고 마치 앞날이 행복하기만 하리라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열다섯 살의 그녀와 지금의 그녀를 비교하다보면 속이 상해서 배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생이 그녀를 파괴한 것이다. 나는 수차례 거울 앞에 서서 생이 나를 짓밟고 지나가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를 상상했다. 손가락을 입에 넣어 양쪽으로 입을 벌리고 잔뜩 찡그려가며 생각했다. 이런 모습일까?(p148)

나의 생이 나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종교로부터 시작된 이 물음은 아마도 내 생의 마지막까지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내게 있어 그닥 유쾌하지만은 않은 생의 의미를 쫒다보면 돌아보게 되는 과거와 기대하게 되는 미래를 추억하고 상상한다. 그 사이의 현재. 어차피 무수한 현재의 결로 이루어진 과거와 미래만을 붙잡고 있는 나를 인지할 때마다 느껴지는 생의 정체(停滯). 그 순간순간의 무기력함이 못견뎌질 때가 있다.

발길로 엉덩이를 차인다든가 하는 밖으로부터의 폭력은 도망가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안에서 생기는 폭력은 피할 길이 없다. 그럴 때면 나는 무작정 뛰쳐나가 그대로 사라져버리고만 싶어진다. 마치 내 속에 다른 녀석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울부짖고 땅바닥에 뒹굴고 벽에 머리를 짛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그 녀석이 다리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니까. 아무도 마음속에 다리 따위를 가지고 있지는 않으니까. (p62-63)

 

마음의 몸부림을 견디다보면 그 극(極)에 결국 표출만이 답인 경우가 있다. 그 많은 행위들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삶들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 결과로써의 하나로 읽었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그 구경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그들 모두가 실제 인간이 아니라 기계들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고통받지 않으며 늙지도 않고 불행에 빠지지도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네 인간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p106)

 

내 생이 나에게 휘두른 그 폭력성을 견디는 방법, 받아칠 수 있는 노련함, 그것을 넘어 담을 수 있는 그릇을 가지기를. 그리하여 풍성함으로 채워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두려워할 거 없어."
그걸 말이라고 하나. 사실 말이지 '두려워할 거 없다' 라는 말처럼 얄팍한 속임수도 없다. 하밀 할아버지는 두려움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믿을 만한 동맹군이며 두려움이 없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면서 자기의 오랜경험을 믿으라고 했다. (p108)

여러분도 알겠지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p232)

"무서워......"
"그게 바로 살아 있다는 증거잖아요."(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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