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주스 사계절 1318 문고 76
마고 래너건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체중이 고르게 분산되도록, 우리는 깔개를 들고 타르 늪으로 내려갔다. (p.1 )

 

타르 늪? 우리? 무슨 소리지 싶은 첫 문장을 무시하고 쭉 읽어 내려간다. '감이 잡히지 않는' 이 느낌이 한 페이지 내내 이어진다. 『블랙주스』는 마고 래니건의 판타지 단편집이다. 책에 수록된 첫 단편<노래하며 누나를 내려보내다>는 독자와 씨름하듯 장소, 인물, 상황 등에 대해 최소한의 정보만을 던져준다. 뭔가 읽긴 읽었는데 뭔지 정리가 되지 않는다. 첫 작품부터 '고비'다. 쭉 참고 읽는다. 중반을 지나면서부터 '아!' 상황과 장소와 인물이 점점 윤곽을 드러낸다. 끝날 때 즈음 되면 정신이 멍-해진다. 이야기를 읽었다기보다는, 화면이 지지직 거리고 사운드는 형편없는 아주 오래된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본 것 같은 기분이다. 처음엔 낯설게 느껴져 지루했는데, 이제 보니 엄청난 대작을, 그것도 숨겨져있던 명작을 한 편 본 느낌이다.

 

읽은 지 2주 정도 지났지만, 리뷰를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생경한 세계'를 그려내는 이 낯선 책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한마디로 말해야 한다면, 이 책은 '환상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이다. 그 누구에게 읽혀도, "와우! 이런 소설도 있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책이다. 100% 확신한다.

 

가장 좋았던 <노래하며 누나를 내려보내다> 외에도, <여럿의 집>, <세상 어딘가에 쓸모 있는>을 특히 재미있게 읽었다. <여럿의 집>은 딱히 연관도 없건만 읽는 내내 백석의 '흰 바람 벽이 있어'가 떠올랐던 작품이다. <세상 어딘가에 쓸모 있는>은 읽는 내내 뜨거운 열기를 느꼈던 작품이다. 마고 래니먼 특유의 독특한 묘사력이 매우 돋보였다. '천사'에 대한 가장 냄새나고 뜨겁고 그러나 여전히 경외로운 묘사가 인상깊다.

 

『블랙주스』는 '환상문학'에 대한 매혹적인 답이다. 매우 불친절한, 그러나 결코 읽지 않을 수 없는! 마고 래니건의 소설은 독자를 숨막히게 한다. 책을 덮고 '대체 이 소설은 뭐지?' 싶은 마음에 멍-하니 뒷 표지를 보고 있었는데, 영국 아마존의 한 줄 평가가 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주었다.

 

무한한 자신감이 서린 이야기.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고 어떤 것도 양보하지 않으면서 아름다운 글과 강렬하고 명료한 인물들로 당신을 매혹시킨다. (영국 아마존)

 

 

*이 후기는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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