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북 사건의 재구성 사계절 1318 문고 96
정은숙 지음 / 사계절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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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른이 되기 위해서라도 우리 만나야 하지 않을까?

수능이 끝난 토요일 오후 3시, 기림중학교 은행나무 앞.

 

 

누구에게나 어른이 되기 위해 넘어야 하는 자신만의 과제가 있기 마련이다. 책 <정글북 사건의 재구성>은 이러한 성장의 과정을 그려낸 책이다. 동아리방에 던져진 폭죽 하나로 어이없이 친구를 잃어야 했던 '정글북' 아이들은 모두 그 사건으로 각자의 상처를 가진 채 뿔뿔히 흩어진다.

 

<정글북 사건의 재구성>은 죽은 친구의 아이디를 사용한 정체불명의 '나'가 보낸 메세지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정은숙 작가는 각자의 사정과 이유로 친구의 죽음에 죄책감을 가지며 살아왔던 아이들이 상처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매우 치밀하게 다루고 있다. 작가의 말 그대로 정은숙 작가는 아이들을 '궁지로 몰아붙이면서' 그들의 잘못과 상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괜찮아'를 남발하지 않으며, 쉽게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그대로를 보여주는 데 충실한다.

 

사랑받기 위해 기를 쓰며 사는 불안함, 진심으로 친구가 되지 못하고 자신이 상처받지 않을 정도까지만 사람과 관계하는 연약함과 경계심, 겸손으로 가장한 허영심과 오만,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에 더욱 강한 척 하는 알량한 마음, 친구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자신의 잘못이 밝혀질까봐 두려워하는 본능 등...

 

정은숙 작가는 커피, 코코아 잔, 꼬마전구와 오너먼트, 빨갛고 탐스럽지만 썪은 부분을 가진 사과 등 일상적 소재와 아이들의 감정을 절묘하게 엮어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의 생각이나 행동에 대해 평가하지 않는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며, 이를 방치할 것인지 극복할건지를 정하는 것 역시 아이들에게 맡겨있다.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추리' 형식으로 되어 있어 읽는 내내 매우 흥미진진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사실 어른인 우리도 모두 갖고 있는 각자의 사정, 각자의 '추한 모습'들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누구에게나 한 발짝 나아가기 위한 인생의 과제가 있다. 어렸을 땐 그럭저럭 평탄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들은 고민이 없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돌이켜보니, 누구나 고민의 시간을 품고 태어나는 것 같다. 고민없이 승승장구로 달려온 사람에게도 어느 순간엔 '고민'이 배달된다. 그건 마치 '청구서'처럼 모두에게 공평하게 들이닥치는 것 같다. 어제 고민하지 않았다면 오늘 고민의 청구서가 날아온다. 시간 차만 있을 뿐, 모두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괴롭지만 견뎌내어 끝내 직면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 계단을 넘어야 삶이다. <정글북 사건의 재구성>의 아이들은 처음에 그 계단 앞에서 모두 도망쳤다. 아이들은 혼란스러웠고, 결국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회피했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은 채 지나쳐버린 그 사건은 모두의 마음에 스위치로 남았다. OFF된 것처럼 보이지만,순간 순간 자신도 모르게 폭발하여 온 몸을 휘감는 상처의 스위치.

 

어른이 되기 위해, 아이들은 만나야 했다.

 

*밑줄 그은 부분*

 

같은 방을 썼던 한 아이의 손목에서 실금처럼 잔뜩 그어진 상처들을 봤지만 도엽은 모른 척 시선을 피했다. 그건 자해의 흔적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끊으려 했던 아이. 그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뭐건 아이는 스스로 산골짝 학교로 찾아들어 왔고 건강하게 잘 살고 있었다. 산들학교 아이들에겐 하루 하루의 '지금'이 과거보다 훨씬 중요했다. (125-126)

 

마음대로 하고 싶겠지만, 마음의 상태를 모르는 사람은 마음대로 하기도 쉽지 않아. 그렇지? (250)

 

*각 등장인물을 잘 보여주는 부분*

 

도엽: 혹시나 밉상으로 보일까 봐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어도 누구 편도 들지 않았으며 아무 생각 없는 아이처럼 굴었다. 그게 맞는 방법인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도엽은 기를 쓰고 살았다. (151)

 

연수: 감당 못 할 일이 우리 앞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그건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아이러니하지만 지금이라도 열심히 살아야겠단 마음도 생겼다. (157)

 

율미: 진짜 청춘을 누릴 용기가 내겐 있을까? (230)

 

소정: 도엽을 용서하는 것도, 불편한 분위기에 눈치 보는 아이들을 배려하는 것도 자신이어야 했다. 제삼자인 율미 몫이 아니라 그건 소정의 몫이었다. 왜냐하면 소정은 둘을 가진 아이니까. 그런데 하나 가진 율미가 그 역할을 빼앗아 버렸고, 겸손과 배려가 자신의 자랑이라고 여겼던 소정은 할 일이 없었다. (89)

 

기준: (내가) 어느 관계에서도 깊이 빠지지 않고 발만 살짝 담그며 관찰한다는 걸 알고 계셨을까? (53)

 

지유: 어, 엄마가 울고 있네, 지유는 어렸지만 엄마를 안아 주려고 뒤에서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런데 전화기에 대고 한참을 울던 엄마의 말이 귓속으로 쏙 들어왔다. "그러게 말이야. 나도 병신 아들을 낳을 줄 몰랐어." 지유는 발소리를 죽이고 안방을 나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인중을 꿰맸지만 나는 병신이구나! (244)

 

*이 후기는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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