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무지개 (누쿠이 도쿠로) - 무지개빛 인생이 잿빛으로 변하는 순간, 완벽한 세계가 무너진다

잿빛 무지개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수미 옮김 / 청하 / 2014년 1월

소심하고 여린 남자, 에기 마사후미는, 외모로 인해 차별받던 유리에와 수줍은 사랑을 하게 되고, 마침내 결혼을 약속하며 무지개빛 인생을 꿈꾼다.  그러나 어느날, 악질 상사와 뜻하지 않은 다툼을 하게 되고, 상사가 그날 밤 변사하면서 범인으로 의심받게 되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나 강압적 수사로 유명한 형사와 냉철하고 비인간적인 검사, 불성실한 변호사 등에 의해 터무니없는 누명을 쓰고 살인범으로 몰린다.  그 과정에서 에기 자신도 철저히 망가지고 자아가 파괴되었을 뿐 아니라, 그의 가정도 와해되고 가족들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사랑하던 그녀도 떠나간다.

6년의 실형을 살고 나온 그에게 남은 건 절망 뿐.  그 절망이 분노로 바뀌고, 자신의 인생을 망가트린 사람들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며, 형사, 검사, 변호사, 판사, 목격자 순으로 하나씩 그들의 목숨을 뺏기 시작한다.  뒤늦게 이들 피해자 사이의 연관성을 파악하게 된 야마다 형사 역시 수년 전 약혼녀를 범죄에 의해 잃고 복수를 꿈꿨던 적이 있으므로 에기의 고통을 나름 이해하고, 수사를 통해 그가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렸음을 알게 된다.  과거의 수사가 잘못 됐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조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예전 사건을 재조사하고 에기를 찾아 그의 폭주를 막으려 애쓰지만, 좀처럼 에기의 행방을 찾을 수 없고, 사건은 점차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미궁에 빠진 듯한 답답한 상황 속에서 순간적으로 야마다가 깨달은 진실은 잔인하면서도 슬픈 반전이다...

사실 반전 자체는 그리 놀랍지 않다.  반전을 포함한 결말이 쉽게 파악되어 긴박감이 떨어지긴 하나, 의도치 않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게 된 가해자들과 그로 인해 삶이 피폐해진 피해자들을 통해 완벽해 보이는 세계가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에 촛점을 맟준 듯한 작품이다.

작품의 내용과는 별도로, 너무 심한 오탈자는 출판사를 다시 확인하게 하고, 그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게 했다.  

백일홍 나무 아래 (요코미조 세이시) - 긴다이치 코스케의 초기 활약을 맛보다

백일홍 나무 아래 ㅣ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3년 11월

일본 추리소설계의 거장, 요코미조 세이시의 단편집.  그가 창조해낸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초기 활약이 돋보이는 단편작 4편 - 살인귀, 흑난초 아가씨, 향수 동반자살, 백일홍 나무 아래 - 이 수록된 작품집이다. 

긴다이치 코스케의 초기 작품집이고, 전쟁 직후의 암울하고 가난한 분위기가 겹쳐, 다소 촌스럽고 단순해 보이기도 하지만, 역시 요코미조 세이시 특유의,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능력은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침묵의 거리에서 1&2 (오쿠다 히데오) - 침묵을 뚫고 나오는 진실...

침묵의 거리에서 1
오쿠다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민음사 / 2014년 2월

교내에서 추락사로 보이는 사건이 발생하고, 떨어진 사람이 이 학교의 중학생인 나구라 유이치라는 게 밝혀지면서 사건 경위의 조사가 시작된다.

단순한 사고사인지, 자살인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한 타살인지를 밝혀내려는 경찰과 검찰.  그들은 곧 죽은 학생이 집단따돌림을 받고 폭행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 추락사도 단순 사고사나 자살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에 의한 타살이 아닐까 의심하며 학생들을 조사하나 관련 학생들이 중학생이기에 조심스레 조사를 진행한다.

학교를 무대로 한 일본 추리소설의 특징은, 사건 그 자체에만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오히려 주변 인물, 관련 인물들의 묘사와 그들의 심리,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자세히 다룬다는 점인데,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찰과 검찰 뿐만 아니라 신문기자, 학교 교직원들, 유가족, 가해 학생 부모들, 변호사 등등 다양한 인물들의 저마다의 이야기도 자세히 다루고 있고, 특히 한참 민감할 시기의 중학생들 그들의 세계를 그들만의 시각으로 펼쳐 보인다.  모범생, 불량학생 할 것 없이, 집단 속에 갇힌 아이들, 아직 자신만의 가치관을 정립하지 못한 채 주변에 휘둘리고 뿌리없이 극히 불안정한 상태의 아이들의 모습을 자세히 그리고 있다. 

그 속에서 각자의 이유로 진실이 은폐되고 거짓이 덧씌워지며 오리무중 같았던 사건이 결국은 처음 예상대로의 결말로 밝혀지는데...

사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건, 사건의 실체가 아닌 듯 하다.  오히려 사건이 일어나기 전과 후의 상황이 교차 서술되며 그러한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내적 요인과 상황이 이해되고, 각자가 불안정하고 위험한 시기의 아이들 집단 속에서 미묘하게 일어나던 감정의 대립과 자기방어기제 등이 오히려 안타깝게 느껴진다.  어찌보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사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어쩔 수 없는 필연적인 귀결이 아닐까 싶기까지 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다. 

파계 재판 (다카기 아키미쓰) - 차별과 편견을 넘어서

파계 재판 - 사람이 아닌 자의 이야기 ㅣ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 2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 / 검은숲 / 2014년 3월

법정추리물이다.  서양의 법정추리물은 꽤 발달했으나 법제도가 다소 다른 아시아권에서는 흔치 않은데, 그래서 일본의 법정미스터리는 어떨까 하는 약간의 궁금증을 갖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과거 연극배우였던 무라타가 내연녀와 짜고 그녀의 남편을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다음, 내연녀 마저 살해했다는 혐의로 법정에 선다.  정작 무라타는 우발적으로 남편을 죽인 내연녀를 위해 사체를 유기한 사실만 인정하고 나머지 혐의는 모두 부인하나, 검찰에 의해 밝혀진 그의 어두운 과거는 그의 무죄 항변을 의심할 수 밖에 없게 만들고 모든 정황이 그에게 불리한 상황이다.  다만 오직 그의 변호사인 햐쿠타니만이 그의 무죄를 믿고 변론에 나선다.  법정 출입기자의 시각으로 이 두 건의 살인사건을 둘러싼 며칠간의 법정 공방이 진술된다.

판사 뿐 아니라 방청객들에게조차 결코 우호적이고 호의적이지 못한 무라타의 법정에서의 태도며 발언, 증인들과의 과거 마찰 등은 무라타가 살인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그를 옥죄어 오는데, 이에 대해 햐쿠타니 변호사는 철저한 조사와 유능한 변론으로 진실을 밝혀나간다.  마침내 밝혀진 진실은, 사람이란 결코 어느 한 면만으로 판단하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거, 피상적으로 보이는 이유말고 진실은 더 깊은 곳에 복합적인 형태로 자리잡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우리가 흔히 갖는 편견과 선입관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해주며, 반전의 진실을 드러낸다.  또한, 사람이 아닌 자, 무라타가 지녔던 과거의 굴레가 어떻게 그의 인생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며 그를 지배해 왔는지도 보여주는 작품이다.  추리소설 자체로서는, 다소 옛날 작품이라서도 그렇겠지만, 그다지 박진감이나 대단한 추리, 서스펜스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이 작품의 미덕은 그보다는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남자를 위하여 (김형경) - 그리고 여자를 위하여

남자를 위하여 -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
김형경 지음 / 창비 / 2013년 11월

이제는 소설창작보다는 심리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걸로 보이는 김형경의 심리에세이이다.

표제처럼, 남자의 심리에 대해, 특히 여자가 모르는 그네들만의 심리에 대해 알려주고 분석하고 이해하고 그렇게 위로를 건넨다.  사람을 책으로 이해하고 알아갈 수는 없겠지만, 읽어가면서 새삼스레 새롭게 발견하고 이해하는 부분도 있고, 그래서 결국은, 남자를 위하면서도 또 여자를 위해서도 읽어둘만한 책이다.  다만 외국 사례를 주로 들어 조금은 우리와 괴리감이 느껴지는 점도 없지 않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