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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년기 소녀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평점 :
‘이야미스’의 대표 주자 중 한명인 마리 유키코의 신작. "고충증"은 좀 징그럽기까지 한 작품인데 반해, 이번 작품은 여성들 간에 미묘한
심리적 갈등을 다루면서 좀 더 섬세하다. 그러나 갱년기 나이의 여성들이 소녀스러운 사고와 행동을 보인다는 점에서는 역시 좀 징그럽다고 해야
할까.
어린 시절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했던 순정만화 '푸른 눈동자의 잔'을 사랑하는 팬들이 모여 팬클럽을 구성한다. 그 중에서도 간사 역할을
하는 6명의 모임, '푸른 6인회'에 속한 이들은, 이제는 나이를 먹어 대부분이 4,50대의 중년들이지만, 모임에 나올 때만은 이 만화를
사랑했던 그때의 소녀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일상과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거나 혹은 도피하고자 더욱 더 만화와 소녀 시절에 집착하는
이들은 좋아하는 대상이 같다는 점에서는 동질감을 느끼며 함께 행동하나 그 안에는 미묘한 심리적 갈등이 내재되어 있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에밀리, 그런 에밀리를 꾀여내 돈을 갈취하는 실비아, 부모에게 의지하며 도박에만 빠져사는 미레유, 겉으로는 중산층이나 현실의 갑갑함에 괴로워하는
지젤, 불안과 공허함에 몸부림치는 마그리트, 그리고 이 모임의 아이돌 같은 존재인 가브리엘. 이들 사이에 서로 시기와 질투의, 동경
등의 감정이 혼재하고 회원들에게 살인과 실종이라는 사건들이 발생하고, 점차 광기어린 감정의 폭발로 인해 폭력어린 결말을 향해
치달아간다.
작품의 구성은 멤버 한 명씩이 화자로 순서대로 서술한다. 이 작품의 트릭이 사실 초반에 파악이 되었고 예상대로 흘러가서 추리의 묘미는
별로 없었지만, 작가가 의도하는 바는 그보다는 등장인물들의 심리에 초점이 맞춰진 것임은 분명하고, 작가 특유의 스타일이 충분히 반영된
작품이었다. 나이만 먹었지 아직 사춘기인양 미숙하고 폭발적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채 폭주하는 주인공들, 갱년기 소녀들을 보면서, 나이가,
세월이 다가 아님을 다시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