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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질서의 설계자들 - 기술, 진실, 네트워크가 만드는 인류의 미래
발라지 스리니바산 지음, 에릭 조겐슨 엮음, 박수현 옮김 / 동아엠앤비 / 2026년 10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기술이 바꾸는 미래,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까
『새로운 질서의 설계자들』은 기술이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지 살펴보면서, 그 변화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믿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기술의 발전을 새로운 도구나 산업의 등장 정도로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인간의 삶과 사회의 구조, 정보가 유통되는 방식, 권위에 대한 인식까지 폭넓게 다룬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책에서 눈여겨보게 되는 주제 중 하나는 희소성을 줄이려는 기술의 역할이다. 인간은 오랫동안 시간과 자원, 지식과 기회의 제약 속에서 살아왔다. 기술은 이러한 한계를 조금씩 바꾸어 왔고, 앞으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넓혀 갈 것이다. 저자가 수명의 연장을 기술이 추구할 수 있는 중요한 목표로 바라보는 대목에서는 기술 발전이 단순히 편리함을 높이는 일을 넘어 인간의 삶 자체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물론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가능성이 생기는 만큼 예상하지 못한 위험도 뒤따른다. 기술을 통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지만, 그 기회를 누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새로운 격차가 생길 수도 있다. 편리한 서비스가 늘어나는 것과 사회 전체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기술의 성과를 바라볼 때 무엇이 가능해졌는지만큼이나 그 변화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보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관한 내용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글과 영상, 뉴스와 의견을 접한다. 어떤 정보를 반복해서 보느냐에 따라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익숙하게 접하는 주장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실인 것은 아니며, 많은 사람이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정확성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특히 인공지능이 다양한 정보를 요약하고 그럴듯한 답변을 만들어 내는 시대에는 정보의 양보다 출처와 근거를 살펴보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진다.
책에서 강조하는 원본 데이터와 검증의 문제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전문가나 기관의 권위를 무조건 부정하자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누군가의 지위나 명성만으로 판단을 끝내지 말고 실제 근거를 확인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물론 원자료 역시 수집 방식과 해석에 따라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자료를 직접 확인하는 일과 함께 그 자료가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졌는지, 다른 근거와도 일치하는지 살펴보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은 디지털 문해력과 인공지능 문해력을 생각할 때도 의미가 있다. 인공지능이 정리해 준 답을 읽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답변의 근거가 무엇인지, 빠진 내용은 없는지, 내 상황에 그대로 적용해도 되는지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능력과 기술이 제공하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같지는 않다. 도구를 잘 다루는 사람에게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도구가 제공하는 결과를 스스로 검토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인상적인 부분은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문제를 지적하고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비판하는 일은 필요할 때가 있다. 하지만 비판만으로 현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실제 결과물이나 행동으로 옮기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거창한 사업이나 혁신적인 발명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작은 프로젝트를 시작하거나, 필요한 정보를 정리하거나, 주변의 불편을 해결할 방법을 시도하는 일도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포함될 수 있다.
이 대목은 미래를 준비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했다. 변화가 빠를수록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한 뒤 시작하고 싶어질 수 있다. 그러나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정답을 기다리는 것보다 현재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을 살피고, 작게 시도해 보고, 결과를 통해 배우며 다음 선택을 조정하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생각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비로소 알게 되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책의 주장들을 모든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기보다는, 저자가 제시하는 관점과 근거를 살펴보고 독자 자신의 판단을 더해 읽으면 좋겠다. 기술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며, 탈중앙화나 기술 중심의 해결 방식이 언제나 최선의 답이 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관점을 정답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그 관점이 설명하는 부분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함께 살펴보는 일이다.
『새로운 질서의 설계자들』은 기술이 만들어 갈 미래를 궁금해하는 독자뿐 아니라, 지금 우리가 정보를 받아들이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방식까지 돌아보고 싶은 독자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건넨다. 책을 읽고 나면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예측하는 것만큼이나, 그 미래를 맞이하는 내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는지 묻는 일이 중요하게 느껴진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세상은 변하겠지만, 정보를 확인하고 근거를 따져 보며 배운 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변화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며 살아가고 싶다면, 이 책의 여러 문제 제기를 자신의 현실과 연결해 읽어 볼 만하다.
한 줄 리뷰: 기술이 바꾸는 미래를 살펴보며, 무엇을 믿고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할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