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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사이클 필로소피 - 손으로 생각하기
매튜 크로포드 지음, 정희은 옮김 / 이음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손으로 생각하기.
이 책의 부제로 붙어 있는 문구다.
손을 많이 움직이면 두뇌 발달에 좋다고들 한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에게 포크보다는 젓가락질을 가르치고 종이접기를 하며 놀게 하지 않던가.
하지만 요즘엔 정말 손으로 못하는 일이 없다. 엄밀히 말하면 손이 아닌 손가락과 손 끝으로 터치를 하는 것이다. 컴퓨터 키보드와 스마트폰 뿐 아니라 다양한 매체가 우리의 손끝으로 움직여진다. 물론 이렇게라도 손을 움직이자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손으로 생각하기'는 단순한 손의 물리적 움직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손의 완력과 익숙한 감각들을 가지고 기계의 로직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더욱 잘 작동하도록 하는 과정에 우리 스스로의 힘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기계와 소통하는 것에 성공함으로써 우리의 인간됨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시도들이 경시되어 가고 있는 풍조에 씁쓸함을 표현하며 손으로 생각하고 몸을 움직여 일하는 것에 대한 인식의 벽을 깨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실제로 그러한 삶을 살고 있음을 증명하는 정직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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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을 보는 것이 늘 간단한 문제만은 아니다. 심지어 우리가 전문으로 다루는 비교적 초기에 나온 구형 오토바이만 해도 진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변수가 너무 많다. 또 어떤 증상은 원인이 너무 불분명하기 때문에 명쾌한 분석적 추론에 실패하기도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오직 경험에서만 우러나오는 판단이다. 규칙보다 직감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나는 싱크탱크에 있을 때보다 오토바이 정비소에서 더 많은 생각을 한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3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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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손을 쓰는 일과 머리를 쓰는 일이 분리되어 인식되기 시작했고 손을 쓰는 것은 지식노동과 달리 못 배운 사람들의 생계 수단이라고 여겨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간단하게 예를 들어 어느날 갑자기 사무실의 복사기나 화장실 변기가 고장이 났을 때 화이트칼라들이 그들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면-아마도 그들은 전화번호부를 찾아 기술자를 부를 것이다- 어느 쪽이 우리의 진짜 '삶'에 밀착되어 있는지 금방 깨달을 수 있다.
우리는 어린 시절 맹목적으로 공부를 하고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직장에 들어가기를 선망하고 노후 염려 때문에 현재를 즐기기 보단 사회 시스템의 몰개성한 부품이 되어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왜 그런 삶이 전부라고 믿는가. 실제로 인간의 삶이 편안해 지도록 돕는 방법은 너무나도 다양하다. 우리의 편견을 버리고 시야를 넓히면 주위의 물컵 하나, 나사 하나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저자의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그가 남들이 인정하는 안정된 직장-정치철학박사 출신의 워싱턴 싱크탱크 소장-에서 '노동자'라는 편견의 대상이 되기 쉬운 오토바이 수리공이라는 직업을 택하는 결단을 감행했고 실제로 그 과정에서 충족감을 얻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겁내지만 사실은 우리가 손을 움직여 만물과 소통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과, 마음이 이끌리는 직업을 자신있게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비슷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의 중반부, 오토바이를 수리하는 과정이 자세하게 묘사되는 부분은 오토바이나 기계에 대해 지식이 없는 사람의 경우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책의 전반부에서 저자가 보여주는 삶과 손, 기구에 대한 철학에 충분히 공감한다면 오토바이 수리공으로서의 인증 설명과도 같은 작업일지가 진실하게 읽혀질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내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게 되었다.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무언가 가치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하든 누군가에게 아주 작은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충분히 아름답고 가치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일에는 무엇보다 고정관념과 맞설 수 있는 작은 용기와 결심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