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말해요
조지 섀넌 지음, 유태은 그림, 루시드 폴 옮김 / 미디어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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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말해요>는 글은 조지 섀넌이 썼고 그림은 한국 작가인 유태은 작가가 그렸으며 번역은 우리에게 가수로 알려져 있는 루시드 폴이 번역한 그림책이다. 

<손으로 말해요>의 서사는 일상적인 우리의 하루를 옮겨다 놓은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엄마가 커텐을 젖히고 아이의 잠을 깨우는 것에서 시작해서 밤이 되어 식구 모두가 고요하고 평화롭게 하루를 마무리하기까지가 그림책 전체의 이야기이다. 저녁 때 아마도 멀리서 사는 친척인 듯한 이들이 방문하여 함께 식사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 외에는 엄마, 아빠, 세 아이로 이루어진 평범한 가족의 정말로 평범한 일상이 펼쳐진다. 그러나 이 평범한 일상이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작가는 우리의 두 손에 초점을 맞추며 잔잔히 이야기한다. 평소에는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우리의 손이 서로서로에게 해주는 일들을 장면 장면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그 잔잔한 일상의 소중함과 위대함에 공감하게 된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할 때 친절하고 진심어린 말로 상대를 위로하고 힘을 나게 하기도 하지만. 또한 중요한 것이 우리의 손과 발, 우리의 몸을 써서 상대를 섬기는 행위이다. 그리고 그 섬김은 대단하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소중하고 일상적인 것들이다. 아픈 엄마를 위해 집안일을 돕는 아이라든지 지친 남편의 어깨를 안마하는 아내라든지 우리의 삶 속에서 일상적으로 만나는 장면들이다. 작가는 이런 면을 포착하여 아침에 아이의 잠을 깨우는 엄마의 부드러운 손길, 동생의 컵에 우유를 따라주는 언니의 손길, 아가와 걸음마를 하는 아빠의 손길, 엄마와 함께 씨앗을 심는 아이의 손길 등 한 가족의 하루를 따라가며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늘상 하는 작고 평범한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손으로 모든 걸 하지요, 사랑해 말하면서요'라는 반복되는 문장을 통해 이 모든 것이 서로에 대한 사랑의 섬김임을, 그 섬김을 통해 우리의 삶이 지속됨을 알 수 있다.  

글은 미국 작가가 썼지만 그림은 한국 작가가 그려서인지 그림책의 주인공들의 외모와 생활하는 모습은 영낙없는 한국의 전형적인 가족을 떠올리게 한다. 또 친척들이 놀러온 장면에서는 흑인처럼 보이는 인물들도 보여 그림 작가가 이런 면에도 섬세하게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은 밝은 파스텔톤으로 채색되어 밝고 따뜻한 글과 잘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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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지 이형진의 옛 이야기 1
이형진 글 그림 / 느림보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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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끝지>는 이형진 작가가 우리 설화 '여우누이'를 재해석하여 새롭게 쓴 작품이다. '여우누이'가 사람으로 둔갑한 여우 괴물을 물리치는 모험담이었던 반면 <끝지>는 그 여우에게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고 설정하여 독자로 하여금 서로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다. 

이형진 작가는 <끝지> 외에도 심청전을 패러디한 <비단치마>, 흥부전을 패러디한 <흥부네 똥개>와 같이 우리 옛이야기를 새롭게 재해석하여 패러디한 작품들을 썼다. 작가의 우리 옛이야기를 패러디한 이런 작품들을 <끝지>와 함께 보면서 원래 옛이야기과 패러디 이야기를 비교해 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끝지>는 목탄화로 그려진 검은 선들과 종이의 하얀 여백이 어우러지면서 이야기의 먹먹하고도 아린 정서를 전달한다. 글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쓰여져 순돌이의 복잡하고 양가적인 마음을 전달한다. 이야기는 막내아들인 순돌이가 집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시점, 즉 원래 옛이야기 '여우누이'의 후반분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처럼 이야기의 시작 시점을 원래 이야기와 바꿔 서술하는 것은 패러디의 글쓰기 전략 중 하나이다. 

제목인 <끝지>는 여우누이의 이름이다. 원래 옛이야기에서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인물은 하나도 없는 반면 <끝지>에서는 여우누이와 막내 아들이 각각 끝지와 순돌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등장한다. 이름을 부여받은 이들은 각각 여우와 사람들, 혹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대변하며 이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애정과 복수심이라는 양가감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독자는 이야기를 따라 읽으면서 원래 옛이야기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았던 이들의 복잡하고 미묘한 양가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나와 마주한 상대, 즉 타자와의 관계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끝지가 잔인하게 순돌이네 가족을 죽였던 이유는 순돌이의 아버지가 끝지의 어미를 죽였기 때문이었다는 것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 밝혀지는데 이 장면에서 어미를 잃은 새끼 동물의 서럽고도 절절한 감정이 아리게 다가온다. 또한 이 장면은 순돌이가 가진 신비한 구슬의 힘 때문에 끝지가 죽어가는 장면이기도 한데 끝지는 자신은 복수를 해야 했다고 고백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친밀했던 막내 오빠인 순돌이게 죽지 말고 살라고 당부하며 눈을 감는다. 가해자였던 존재가 사실은 원래 피해자였다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이다.구리고  원래 옛이야기에서 괴물 여우였던 존재가 새롭게 재해석된 패러디 작품에서는 나와 마주하고 있는, 나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는 타자로 바뀌는 순간이기도 하다.

끝지는 옛이야기와 패러디 작품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고 글과 그림이 잘 어우러져 이야기의 메세지와 장면 장면마다 분위기를 잘 전달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아동독자를 생각한다면 타인과의 관계성의 양가적인 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성숙도를 가진 독자에게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성인과 함께 독서 및 나눔이 어우러지면 훨씬 풍성한 그림책 읽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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