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눈으로 흰 배춧속 가장 깊고 환한 곳, 가장 귀하게 숨겨진 어린 잎사귀를 볼 것이다.낮에 뜬 반달의 서늘함을 볼 것이다.언젠가 빙하를 볼 것이다. 각진 굴곡마다 푸르스름한 그늘이 진 거대한 얼음을, 생명이었던 적이 없어 더 신성한 생명처럼 느껴지는 그것을 올려다볼 것이다.자작나무숲의 침묵 속에서 당신을 볼 것이다. 겨울 해가 드는 창의 정적 속에서 볼 것이다. 비스듬히 천장에 비춰진 광선을 따라 흔들리는, 빛나는 먼지 분말들 속에서 볼 것이다.그 흰, 모든 흰 것들 속에서 당신이 마지막으로 내쉰 숨을 들이마실 것이다. - P135
서사무가(무당이 부르는 이야기 노래)로 죽은 사람의 넋을 위로하는 사령 의례, 넋굿에서 구연되는 무가巫歌이다. 동해안 경북 영일의 1976년 김석출 무당이 구연한 [베리데기굿]을 텍스트화한 책이다.무척 생소해서, 흥미롭게 읽었다. 고전 영웅소설의 뼈대를 가지고 있는 이야기로불라국 오구대왕은 딸이 여섯명인데, 일곱째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버려진 바리데기는 산신령의 보살핌으로 성장, 불치병에 걸린 아버지를 구할 서천서역국의 약수를 구하러 떠나고,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갖은 고생 끝에 약수와 꺽어온 꽃으로 죽은 오구대왕의 상여를 멈춰 세우고 아버지를 살려낸다는 이야기이다.가부장적 시선을 뒤집고 여성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입증해 낸 바리데기는 서천서역국을 향해 가면서 엄청한 고생을 하는데, 전통 사회의 고단한 여성의 삶을 그대로 담고 있다. 여성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고 존재의 가치를 증명해주고픈 소망이 담긴 이야기는 아니었을까?마지막은 아름다웠다. 오구대왕 부부는 견우직녀가 되고, 바리데기 칠자매는 북두칠성이 되고, 아들 삼형제(서천서역가는 길에 아이도 낳는다)는 삼태성이 되고, 사위 여섯은 조모성이 되고, 바리데기는 오구풀이하여 망자의 왕생극락을 비는 신이 된다.
한자어가 60%인 우리말에서 자주 쓰이는 어휘의 어원과 뜻을 풀이하고 인문학적 의미도 담아놓은 책입니다.작가의 말과 목차를 읽어보면 이 책이 단순 어휘의 나열만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에세이 한권을 읽은 듯 합니다. 달을 보며 소원 비는 이유가 정말 궁금했는데, 밤새 서쪽으로 이동하는 달이 부처가 있는 서방정토로 간다고 믿어서 부처께 전해 주기를 기도한 것이라 하고, 금강산은 계절마다 불리워지는 이름이 있다네요. 봄에는 금강산金剛山, 여름엔 봉래산蓬萊山, 가을엔 풍악산楓嶽山, 겨울엔 개골산皆骨山, 한자의 뜻을 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연암 박지원은 눈과 귀만 믿지 말고 명심冥心하라고 했습니다. 명심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여, 눈과 귀로 인해 생기는 편견과 선입견에 갇히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들어서는 안 되고, 본질을 응시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구절을 읽으면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관계속에서 섣부른 선입견에 갇혀 사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살피면 친구가 없다.”“인간의 발길이 끝나는 곳에는 바다가 있다.”이 구절 읽으면서 설레였어요. 바다가 그런 곳이구나….. 발길이 끝나는 곳…어휘의 어원 설명이 정말 재미있고, 전혀 어렵지 않은 쉽게 읽히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