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하게 살아 있는 캐릭터 만드는 법 - 심리학으로 풀어낸 개성 넘치는 캐릭터 창작법 예비 작가를 전업 작가로 만드는 작법서 시리즈 2
키라앤 펠리컨 지음, 정미화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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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심리 주제를 제시하며, 그에 맞는 캐릭터를 예시로 보여주고 독자들에게 설명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캐릭터 심리 유형을 정리한 책이라면 이 책 말고도 다른 책도 있고, 요즘은 MBTI니 뭐니 하며, 심리에 더없는 관심이 쏟아지는 중이라 SNS이나 커뮤니티 등지에서도 "캐해"가 각광 받고 있다. 이 캐릭터 MBTI는 뭐일 것 같고, 이 캐릭터는 이걸 싫어하는 걸로 봐서 뭔가 어릴 때 이것과 관련된 트라우마가 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궁예"라며, 앞으로의 드라마 내용을 미리 예상해 보기도 한다. 뿐인가. 캐릭터가 아닌 진짜 사람, 연예인 등을 대상으로 "캐해"를 하기도 하고 그룹이 있거나 한 프로그램에서 자주 나오는 패널들은 패널들끼리 서로 상극이라든가, 관계가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기도 한다.

심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대이다. 정신 건강이라는 것보다는 자신을 알아가고 싶은 욕구가 강해진 탓이다. TV 채널에서는 오은영 박사가 나오는 프로그램이 이것저것 방송되고 있다. 금쪽이를 보면서 내 안의 어린 아이를 다시 들여다보고, 내가 어릴 때 그런 행동을 했던 이유가 바로 저것 때문이었구나 깨닫기도 하고, 여태 어릴 때의 그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해서 내가 지금도 힘들구나, 아프구나 눈물 짓기도 한다. 연예인들이 상담을 받으러 나오는 것을 보면서 지금의 나에게 투영 시켜 보기도 한다. 희귀한 사례는 생각보다 별로 없다. 다들 비슷한 상처를 받고, 비슷한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는 말처럼 남이 털어놓는 이야기가 내 이야기 같기도 하고, 남이 받는 상담으로 나를 치유하기도 한다. 바야흐로 심리의 시대다.

이런 심리 시대에서 미디어는 어떻게 해야 할까. 대중들이 자주 보는 드라마와 영화, 책에 나오는 캐릭터 역시 심리의 영향을 받지 않기는 힘들게 되었다. 여기저기 심리 이야기를 접하고, 심리 테스트를 즐겨하는 대중들은 이제 문외한이 아니다. 너무 틀에 짜맞춘 것 같은 전형적인 캐릭터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어려워졌다. 너무 뻔한 것이 그 이유다. 사람 같지 않은 캐릭터는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에는 너무 모자라게 된 것이다. 이를 테면 '예수'를 생각해 보자. 그는 끝없이 이타적이고 생명의 본능이나 욕구 등을 드러내지 않는 성인이다. 드라마에 그런 캐릭터가 남자 주인공으로 나온다고 치자. 매력이 있을까?

여자 주인공은 남자 주인공의 사랑이 받고 싶다. 그와 알콩달콩 연애하는 것도 좋지만 드라마 서사상,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예수' 같은 성인 캐릭터가 남자 주인공이라고 해보자. 그는 어딜가나 사람을 이끌고 다니는 인기 스타지만, 그만큼 시기 질투도 많이 받는다. 연애가 힘들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그는 천성적인 아가페 같은 사랑을 온 인류에게 쏟아붓듯 길 가다 물세례를 받아도 다 괜찮다고 한다. 같이 걷는 여자 주인공이 같이 물 세례를 받아 젖는 것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여자 주인공은 그런 남자 주인공의 애정을 독차지 할 수 없다. 남자 주인공은 누군가 자신을 찾으면 달려가 주어야 하고, 힘든 사람과 아픈 사람 옆에서 밤새 곁을 지키며 간호하고, 기도한다. 데이트 할 때는 제 뒤로 끌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탓에 단둘이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할 수 없다. 길을 걷다가 배가 고파서 인기 많은 식당에 가거나 예쁜 디저트를 먹고 싶어진 여자 주인공이 그에게 밥을 먹는 게 어떻겠냐고 하자, 그는 친히 가방을 열어 조그만 찹쌀떡 5개 든 팩과 멸치 두 마리가 든 봉지를 꺼내어, 배를 배불리 채워주겠노라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캐릭터에게 반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복잡한 세계를 가지고 있다. 복합성을 띤다는 얘기다. 이 책에서 말하는 토니 스타크(아이언맨)는 돈이 많은 부자고, 똑똑하다. 하지만 동시에 외골수고 말이 많고 자기 세계에 빠져 살며, 사회성은 떨어지고, 솔직하지만 그만큼 무례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그가 나쁜 사람인가? 하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캐릭터에게는 성인군자 만큼의 희생 정신이 깃들어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그냥 세계적인 재벌이 아니라, 세계 평화를 지키는 히어로인 것이다. 그러다 끝내는 제 부와 행복을 다 누리지 못하고 잠들었다. 세계의, 아니 우주 전체의 평화를 위해.

사람들이 왜 자꾸 캐릭터를 실존하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과거 배경의 캐릭터를 자꾸 현대 세계로 데려오며 2차 창작물을 만들고, 이세계라고 세계를 구분짓고 캐릭터를 여기에 두었다가, 저기에 두었다가 하는 걸까. 상황이 변하고, 세계가 변하면 캐릭터가 취할 법한 생각과 행동을 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려면 변하지 않는 캐릭터의 특성도 있어야 할 것이고, 이 캐릭터의 신념도 있어야 할 것이고, 결국 이 캐릭터가 앞으로 변화하게 되는 방향까지도 잘 만들어야 할 것이다. 캐릭터는 하나의 세계관이며 건축물이다. 작가는 캐릭터의 구축을 건축가가 도면을 만들고, 기둥 하나부터 세우듯 세심하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서론이 길었다. 그래서 이 책은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라고 제시하고 있는가.

매력적인 개성과 의욕적인 경향과 장기적인 욕망과 단기적인 동기 등을 제시하며, 복합적인 인물을 만들어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이 캐릭터는 외향성인지, 내향성인지 등을 정하는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우호성은 어떤지, 신경성이나 상실성을 지니고 있는지, 얼마나 열려있는지, 상황과 성별과 문화가 인물에게 어떤 영향을 얼마나 미쳤는지까지 말이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모든 게 다 똑같이 정해진 캐릭터를 둘 놓아보자. 둘 모두 외향적이고 남과 잘 협력하는 데다가 크게 예민하지 않고 모두와 잘 지내고 이타적인 캐릭터다. 한마디로 흠 잡을 데 없는 좋은 성격이다 그렇지만 상황을 설정하면 두 캐릭터는 하늘과 땅만큼 달라지기도 한다. 자, 시대는 중세시대, 한 캐릭터의 성별은 남자, 다른 한 캐릭터는 여자라고 하자. 둘은 같은 날, 같은 엄마에게서 태어난 친쌍둥이이다. 1분 먼저 태어난 쪽은 여자, 1분 늦게 태어난 쪽은 남자다.

쇠약한 공작인 아버지는 오늘 내일하는 상태인데, 장녀인 여성 캐릭터에게는 가족들 모두가 빨리 결혼하라고 압박을 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결혼해야 하지 않겠냐고. 지참금이 부족하거나 가문이 기울어가는 것은 아니니, 최대한 하자가 없을 때 혼인을 하라고. 그리고 가문의 당주는 자연스럽게 1분 동생인 남성 캐릭터에게 돌아간다. 아버지인 공작은 숨이 꺼져가기 직전까지 아들을 불러, 가문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가문의 비밀은 무엇인지 상세히 얘기해준다. 하지만 여성 캐릭터에게는 그런 이야기 따위는 해주지 않는다. 여자는 결혼하면 다른 가문의 사람이 되는 것이니,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외향적인 여성 캐릭터는 남성 캐릭터와 같이 말타기를 즐기고 야외 활동을 즐겼다. 물론 사람과 교류하는 것도 좋아해, 무도회나 파티도 좋아한다. 하지만 즐길 수 있는 건 오로지 데뷔탕트 이후부터 결혼 전까지의 무도회 뿐이다. 남자가 선택해 주기 전까지는 함께 끼어 춤도 추지 못하는 무도회 속에서 놀고 싶은 마음만 가득한 여성 캐릭터가 가만히 누군가의 신청을 기다리는 동안, 남성 캐릭터는 이 여자, 저 여자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즐긴다. 여성 캐릭터가 그냥 아무하고나 춤을 추고 싶어 움직이면, 옆에서 불호령이 떨어진다. 조신치 못하게 뭐하는 거야!

그렇게 몇 년이 흐르면, 여성 캐릭터는 결혼한 주부가 되어 아이를 낳고 돌보며 있을 것이고, 남성 캐릭터는 가문의 당주가 되어, 한 가문을 이끌고 운영하고 있을 것이다. 시대와 상황이 그들을 변하게 만든 것이다. 신분도, 성격도, 태생도 같았던 두 캐릭터를 갈라놓은 것은 시대와 상황과 그들이 가진 성별인 것이다. 이대로 더 흐르면 어떻게 될까. 여성 캐릭터는 제지 당한 욕망과 욕구를 주체하지 못해 비틀릴지도 모르고, 남성 캐릭터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자신에게로 쏠린 수많은 시선과 기대와 근심으로 정신이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 둘 다 내향적으로 변하고 사람을 만나기를 꺼리지만 그럴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사람을 만나고 살지만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즐기지 않게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남성 캐릭터는 야외 활동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지만, 여성 캐릭터에게는 그조차 어려운 일일 수 있다.

개개인이, 나와 당신이 살아오면서 겪은 수많은 일과 사건과 들어왔던 말과 알게 모르게 인격에 영향을 미쳤던 기타 요인들로 인해 한 사람이 만들어진 것처럼 캐릭터도 그렇다. 가령 어려서부터 부모를 잃은 모든 아이들이 삐딱선을 타고 자라는 것이 아닌 것처럼, 태생적이고 선천적으로 만들어진 성격과 아닌 것들도 구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건은 너무도 충격적이고 개인이 받아들이기 심각한 것이라 사람을 다 망가뜨려 놓기도 한다. 거기서부터 출발하여 이 캐릭터를 끝내 정해진 수순처럼 비극적 엔딩을 맞게 할 것인지, 다른 누군가의 개입과 도움으로 점점 사람다워지다가 결국은 행복한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 반열에 올려놓을 것인지는 작가가 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뜬금없지 않고 개연성이 있는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이려면 캐릭터 토대부터 잘 만들었어야 하는 것이다.

스토리가 더없이 중요해진 시대에, 더 중요한 것은 캐릭터다. 진짜로 어디에 실존하고 있을 것처럼 현실적이고 복잡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사랑받는다. 전형적인 캐릭터가 되지 않으려면, 진짜 사람 같이 복합적인 성격으로 만드려면, 심리학은 필수이다. 전공을 해야 된다는 말이 아니다. 책에서 제시하는 대로, 내가 만들고자 하는 캐릭터의 빈 곳을 하나씩 채워가면 된다. 책에서 말해주는 요소들을 하나씩 채워가다보면 어느새 당신만의 개성 가득하고 매력적인 캐릭터가 만들어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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