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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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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자크 모노는 그의 책에서 말한다. 세상은 '우연과 필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연'히 일어난 조그만 일들을 계기로 거대한 '필연'적인 사건들이 일어난다고. 우린 누구나 그런 일을 겪는다. 당시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소한 일이 나중에는 결정적인 어떤 이유로 작용하는 결과를 맞이한다.
가득찬 물웅덩이 속의 물고기는 물의 소중함을 모른다. 내리던 비가 멈추고 가뭄이 와서 물웅덩이가 말라가는 사건을 맞이하고 나서야 물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히 여기고 있어서 그 소중함을 때론 간과하기도 하는 민주주의 라는 제도는 어떤 '우연'적인 계기로 말라붙기도 하고 가득채워지기도 한다.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라는 책은 그러한 작은 '우연'들이 어떻게 민주주의의 토대를 형성하는 법과 질서를 만들어왔고 때로는 파괴하기도 하는 '필연'적인 결과를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보고서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천성적으로 정치적 동물이다." 라는 격언을 남겼다. 사회적 동물인 호모 사피엔스 라는 종이 집단을 이루고 그 집단의 생활을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정치'라는 개념이 탄생한다. 집단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규칙(rule)이 필요하다. 사피엔스가 소위 '자기 길들이기(self-domestication)' 라고 하는 진화적 과정을 겪으며 안정적 집단을 구축하기 위해 제도, 규범, 법 등이 출현했다. 2024년 노벨 경제학상은 국가간의 정치, 사회적 제도의 차이가 국가라는 거대한 '집단'의 각기 다른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요인이라는 것을 입증한 학자들에게 수여되었다. 집단을 유지하는 힘은 '집단'을 구성하는 많은 '개인'들간에 암묵적, 명시적으로 합의된 '규범' 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다수에게 오랫동안 많은 영향을 미치는 이 '규범'은 때론 소수의 결정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많은 미국인들이 논박 불가능한 문헌으로 숭배하는 미국 헌법은 1787년 필라델피아 제헌회의에서 그렇게 소수의 대표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민주주의 이전 시대의 산물이다. 당시 미국의 건국 지도자들에게는 평등한 투표권이나 시민의 자유라는 이념보다는 독립적인 13개 주의 안정적인 연합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폭력이 난무하는 내전이 발생할 것을 우려한 그들이 당면한 핵심 과제는 광활한 미대륙(America)에 흩어져있으며, 서로 다른 필요와 요구를 가진, 각기 다른 크기의 13개 주(States)를 하나의 거대한 연합체로 통합(United)하는 것.
하나의 미국(United States of America, USA)을 만들기 위해 건국지도자들이 택한 최선의 방법은 바로 임기응변식의 '타협'이었다.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면화산업은 남부 지역의 중요한 경제적 기반이었고 남부의 다섯 주는 그러한 노동력을 공급해주는 '노예제'의 존속이 그들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물러설 수 없었다. 북부 지역을 비롯해 많은 대표들은 노예제에 반대했지만 통합을 위해서는 남부 지역의 대표들을 달래야했다. 당시 소수였던 크기가 작은 주들도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인구수가 아닌 주를 기준으로 하는 평등한 정치적 대표권을 요구했다.
미국의 초대 재무부장관을 지냈고 10달러 지폐의 인물이기도 한 '알렉산더 해밀턴'은 말했다.
"주가 개인들의 집합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까요? 주를 구성하는 개인의 권리일까요. 아니면 그러한 구성에서 비롯된 인위적인 존재일까요? 후자를 위해 전자를 희생하는 것만큼 터무니없고 불합리한 처사는 없을 것입니다."
개인의 권리보다는 집단의 통합이 더 중요했다. 결국 하원의원은 다수결 원칙에 따라 선출하고, 의석수는 주 인구에 비례하여 할당하기로 한다. 하지만 상원의원은 인구와는 무관하게 주 당 두 명을 선출하기로 한다. 선거인단 제도 또한 선구적인 이론이나 정교한 계산의 결과가 아니었다. 통합을 위해 빈 곳이나 어쩔 수 없는 곳을 땜질식으로 보완하는 '미봉책'이었던 것이다.
타협안은 남부지역의 주들과 크기가 작은 주들의 요구가 반영되었고 다수의 지배를 이념으로 하는 민주공화정부의 탄생을 위해 소수를 위한 반(反)다수결주의 타협안을 채택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연출되었다.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할 수 있는 미국의 헌법적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 상황을 모순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흔히 다수결주의로 귀결되는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소수의 권리 또한 인정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집단의 통합을 위해서 소수의 권리를 보장했고, 어찌 보면 가장 민주적인 방식으로 결정되었다. 그럼 여기서 우린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다수의 결정인가? 소수의 권리인가? 이 문제는 내(內)집단의 목적과 이익에 좀 더 가치를 부여하는 보수주의자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 하는 진보주의자의 절대 끝나지 않는 오래된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것일까?
여러 연구자들은 한 유형으로 구성된 집단보다 다양한 유형으로 구성된 집단이 보다 강하고 안정된 사회 집단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문화적 집단선택이론, 다수준 선택이론).
뉴욕대학교의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내(內)집단을 지킬 충실한 구성원(보수), 외집단과 기꺼이 교류하려는 구성원(진보),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는 구성원(진보), 전통적인 기존 방식을 고수하는 구성원(보수)과 같이 다양한 정치 유형이 혼합된 사회가 변화하는 환경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둘 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내(內)집단의 이익과 개개인의 권리보다 중요한 것은 그 다양성을 포용하는 '집단'의 통합이라는 것.
펜실베이니아주 대표인 제임스 윌슨은 이렇게 물었다.
"누구를 위해 정부를 구성한 것인가? '인간'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주라고 하는 가상의 존재를 위한 것인가?"
역사학자이자 초대형 베스트셀러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는 그의 책 '사피엔스'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종들과 달리 지구에서 지배적 존재로 진화하게 된 것은 가상의 존재를 서로 공유하고 지향할 수 있게 된 '인지혁명' 덕분이라고.
너무나도 서로 다른 개인은 '우연'히 같은 지역에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 지역을 기반으로 한 가상의 존재(우리는 이를 '국가'라고 부른다)에 서로 같은 '애국심'을 느끼고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가상의 물건에 교환 가치를 부여하기로 서로 '합의' 함으로서 그 가상의 존재(우리는 이를 '화폐'라고 부른다)는 '욕망'의 대상이 된다.
개인이 어떤 '집단'에 속해있는지를 구분하는 것도 상황과 맥락에 따라 자의적인 어떤 가상의 경계선을 긋는 것이다. 때로 인간은 그 가상의 존재를 공고히 하기 위해 외부의 적을 설정하기도 한다. 우린 '한국인'이기도 하지만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하면 바로 '지구인'으로 바뀔 것이다. '집단'이라는 가상의 존재를 지향하는 실체적인 개인들이 모이면 '집단'이라는 '실체'가 만들어진다. 그렇게 실체가 된 가상의 '사회'라는 공동체는 매우 강하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란 존재는 그렇게 이 지구에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이라는게 유발 하라리의 요지이다.
개인의 권리를 중요시하는 것은 진보주의자의 가치로, 집단을 우선시하는 것은 보수주의자의 가치로 흔히 대변된다. 진보주의자들이 민감하게 여기는 '개인'이라는 개념도 근대에 들어와 생겨났으며 보수주의자들이 중시하는 '집단'이라는 개념도 소중한 '개인'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어쩌면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는 같은 가상의 존재를 '다른 방식'으로 지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필연'적으로 일어난 비평화적인 계엄사태는 기적적으로 '우연'히 벌어진 작은 사건들의 연속으로 평화적으로 해제되었다. 1965년 자크 모노와 함께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프랑수아 자코브는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 (진화는) 매우 오랜시간이 필요하다. 진화는 수백만 년에 걸쳐 서서히 자기 작업물을 수정하고 끊임없이 손질하고, 이쪽을 자르고 저쪽을 늘리며 새로운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계속해서 수정하는 땜장이 처럼 행동한다."
미국 헌법은 어쩔 수 없이 땜질하듯 만들어진 '미봉책'에 가깝고 그 때문에 극단적인 소수가 다수를 지배할 수 있게 된 토대가 마련된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땜질식으로 만들어진 미국 헌법은 오랫동안 미래 세대에게까지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법률가들은 이를 일컬어 '죽은 손의 문제(problem of the dead hand)'라고 부른다. 공동체의 통합을 위해 보호했던 소수가 너무나도 극단적으로 변해서 다수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죽은 손(the dead hand)은 언제까지 미래세대의 발목을 붙들고 있을 것인가?
과거 대한민국이 독재정권을 거치며 만들어진 많은 헌법도 같은 이유로 미래 세대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극단적 소수의 권력 집중을 위해 제정된 헌법들이 그 소수가 죽은 후에도 대한민국에 여전히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언제 이 죽은 손(the dead hand)을 뿌리칠 수 있을 것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1980년 5월 18일, 전국적인 비상계엄 후 광주에서 벌어진 민주화 운동을 주제로 한 '소년이 온다'를 집필하는데 필요한 자료조사를 하면서 일기장 맨 앞에 이런 질문을 적었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한강 작가는 자료를 읽을수록 이 질문을 뒤집어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대한민국은 죽은 손(the dead hand)을 뿌리치지 않았다. 대한민국 국민은 '12.3 비상계엄사태'를 마주하면서 과거 여러 계엄사태를 거치며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맞잡았다. 산 자는 죽은 자의 손을 부여잡았고 산 자들끼리는 서로 부둥켜 연대했다.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 국민은 죽은 자와 산 자의 손을 꼬옥 잡고 한강 작가의 질문에 '그렇다' 고 대답했다.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대한민국의 '12.3 비상계엄사태'를 겪으면서, 또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을 들으면서 나도 이 질문을 뒤집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구원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