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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골동품점
범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평점 :
이야기는 아주 한국적인 정서로 시작한다. 산의 주인 ‘백호’의 병을 고치고 능력을 물려받은 청년이 전국을 돌며 이형의 존재들이 일으키는 문제를 해결한다. 사람들은 그를 ‘호미’라 불렀고, 그는 기운이 좋은 곳에 집을 지어 머물렀다. 말썽 많던 이형의 것들이 그의 집에만 오면 잠잠해졌고, 이내 소문이 퍼져 사람들은 수상한 물건들을 들고 그를 찾아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생긴 곳이 ‘호랑골동품점’이다.
시작은 매우 한국적이었지만, 첫 골동품은 19세기 영국에서 만들어진 성냥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귀신이 깃든 물건이라는 설정은 익숙하지만, 한국적인 전설과 ‘한’이 서양의 골동품과 만나 만들어낸 이 조합은 꽤 신선하게 느껴졌다.
콜센터에서 일하는 김규리는 어느 날 밤 우연히 골동품점 앞을 지나가다 빈티지 성냥에 홀린 듯 손을 댄다. 도둑질 이후, 악몽이 시작되고 회사에서도 크고 작은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 그녀 앞에 골동품점의 주인 ‘이유요’가 나타나, 성냥에 깃든 사연과 골동품점 물건들의 정체를 들려준다.
이야기 속에는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회사의 누구도 편을 들어주지 않았던 ‘미선 아줌마’가 성냥 속 불길에서 체조를 하던 장면은 무력하고 안타까웠고, 가정폭력을 일삼는 김택구가 못난이 인형 속 메뚜기떼에 휩싸일 땐 묘한 통쾌함이 느껴졌다.
사고로 죽은 친구 ‘박서현’과 낡은 공중전화기로 마지막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눈물을 터뜨리게 했고, 토끼발 열쇠고리를 훔친 문정열, 심길용, 권병욱은 욕망이 인간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판매 금지 태그를 떼고 짚인형을 산 ‘채주연’은 외로움에 잠식된 사람의 그림자 같았고, 마지막엔 콩주머니를 쥔 ‘소하연’이 용기를 내어 엄마의 한을 풀어내고, 이유요 또한 변화해가는 모습이 엔딩으로 잘 어우러졌다.
이형의 존재들은 자신과 비슷한 한을 가진 사람을 끌어들인다. 가게 밖을 나와 사고를 치고,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의 고통을 다독이기도 한다. 살아 있는 이의 한을 대신 풀어주기도, 그 외로움을 품어주기도 한다.
욕망, 외로움, 후회 같은 감정이 마음을 잠식할 때가 있다. 이 책은 그런 감정들 사이에 ‘신비한 골동품’이라는 장치를 더해, 우리에게 익숙한 마음의 균열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고, 읽는 재미도 충분했다. 힐링 호러라는 말이 딱 맞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