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의 다이어리
리처드 폴 에번스 지음, 이현숙 옮김 / 씨큐브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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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겨울, 크리스마스 배경에 소설가가 주인공인, 좋아하는 설정으로 가득 차 있었고, 소개 문구부터 한편의 영화 트레일러를 본 것 같은 포근함이 느껴졌다.
그런 첫인상과는 다르게 안은 상처로 뒤범벅 돼있는 사람의 이야기다. 너무 상처를 입다못해 모든 걸 잊으려 한.



주인공은 제이콥 크리스천 처처(Jacob Christian Churcher). 그러나 하는 행동 양식을 보면 기독교인과는 좀 거리가 있다. 비관적으로 보자면 오히려 가까운가? 하여튼, 요즘 비사교적 혹은 비교적 비정상적 성격의 주인공이 유행인 것 같다.
처음은 주인공이 크리스마스 전에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굉장히 냉소적이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준다. 난 그게 어린 나이부터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보았다. 그는 어린 시절의 많은 것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글에 재능이 있고, 작가로서 한번에 성공했다. 모두가 그의 책을 좋아하고, 그의 책을 읽어본 평론가들은 칭찬 일색이다. 천재가 확실하지만, 운도 좋다고 본다. 다른 시선으로 보면 이 소설 판타지 맞구나, 생각하게도 하고. 모두가 꿈꾸는 순탄한 과정을 밟으면서도,

나는 점점 외로워져 갔다.

이 말이 가만히 있으려는 심장에 닻을 꽂는 것 같다.



선택할 수 없는 운명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주인공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를 만났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지만, 형이 죽음으로서 모든 게 잘못되기 시작했다.
자신을 태어나게 한 존재에게 부정당하는 건 참 슬픈 일이다. 결국엔 자신의 존재를 지우려는 것이 삶의 방향이 되고 마니까.

항상 머릿속이 온갖 판타지로 가득했는데 그건 일종의 생존 기술이기도 했다. 잠시 현실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데 공상만큼 효과적인 건 없었으니까.

자세한 상황은 다를지라도 부모님과의 유대가 없는 유년시절을 겪은 사람이라면 모두가 공감하며 읽을지도 모른다. 나는 상처가 조금 치유된 이후라 스위치가 되진 않았지만, 아직도 트라우마가 있거나 PTSD 수준의 증상을 갖고 있다면 권하고 싶진 않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 무언가를 간절히 찾으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찾는지는 모르는 제이콥.
그의 꿈에 뭔 검은 머리의 여자가 간간히 나온다.
이게 영화였다면 아련하게 연출됐을지도 모르겠지만, 안그래도 암울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의 장르를 호러라고 낙인 찍는 느낌이었다...
문체가 복잡하진 않은데, 이때문에 도리어 상상하기가 쉬워서 더 어두운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스릴러로 장르가 바뀐 것 같았다.
의문인 점 또 한 가지는, 왜 크리스마스 배경인 소설을 지금 냈느냐에 대한 것 정도.



재산 정리 차원에서 집청소를 하던 중 갑자기 나타난 노부인은 어머니와 친구였으며, 제이콥을 잘 아는 것처럼 말한다. 말하는 걸로 봐선 제이콥이 어릴 때 많이 돌봐준 모양이다. 엘리즈는 주인공의 가정 사정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제이콥에게 제이콥의 아버지가 떠날 수밖에 없던 이유에 대해 대신 해명해준다. 옆에서 보는 것과 겪은 것의 무게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아직도 모른다는 점에서 그의 모든 말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진실을 알더라도 상처 입은 사람에게는 사과가 먼저 아닐까.

그리고 공동 묘지에 있는 형과 어머니의 무덤(제일 기이한 것은 그가 처음 온 어머니의 무덤 위치를 바로 찾았다는 것이다)에도 들린다.
​되게 담담하게 말하는 것에 비해서 사실은 감정이 요동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예상은 맞았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는 상실을 싫어한다. 제이콥도 마찬가지였다.



이후에 어느 여자가 제이콥의 집에 찾아오는데, 이름은 레이첼이다. 팬인 줄 알았던 여자는 제이콥이 어릴 때 그 집에서 태어나 입양 보내진 아이었다. 그는 생모를 찾기 위해 제이콥의 어릴 때 거처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곧, 제이콥은 그에게 반한다. 레이첼도 마찬가지.
레이첼이 곧 결혼하는 사람만 아니라면 거부감이 들했겠지만, 생모 찾는 일에 무관심한 남자친구를 생각하면 레이첼이 제이콥에게 빠지는 것도 이해된다.
그리고 집을 치우며 드디어 제목의 다이어리를 발견한다.
노엘이 남자 이름(크리스마스나 캐롤이란 뜻이라, 곧 임마누엘처럼 그리스도를 뜻하는 상징이 되었다)이고, 제이콥의 직업이 소설가기 때문에 대충 이쪽이 노엘일 것 같았는데, 전혀 생각지못한, 레이첼의 생모가 노엘이었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미스테리도 아니고, 어쩌고 싶은 건지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에서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드디어 알 수 있었다.

"조언 좀 해주실 수 있어요? 아버지에게 어떻게 다가가는 게 좋을까요?"
엘리즈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은혜롭게."
나는 그녀를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제 아버지가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마땅히 받을 자격이 있다면, 지금에 와서 은혜가 필요할까? 무슨 일이든 벌어지고 난 후에야 상황이 어땠어야 하는지 쉽게 보이는 법이지. 네 아버지는 엄마가 어떤 상태였는지 전혀 몰랐어. 네 아버지가 떠나고 몇 년이 지나도록 엄마는 자기 방식을 고집했어. 만약 알았더라면 절대 그렇게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거야."

엘리즈가 제이콥 아버지의 편을 든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으나... 여전히 제이콥만 모든 걸 이해해야 하는 상황은 아쉽게 느껴졌다.
하지만, 주인공은 주인공 답게 부딪혀보려 한다.



크리스마스 같은 날에는 자살률이 높다고 한다. 행복한 날인 만큼, 그렇게 지낼 수 없는 사람들이 그 빈자리를 더 크게 느낀다고 한다.
모두가 행복해야 할 순간에 불행을 철저히 느끼는 주인공과 우리의 삶이 별로 다르지 않을지라도 여전히 그냥저냥 살아가려 하는 주인공에 비해 나는 좀더 살아갈 이유가 많다는 것을 무심코 깨닫는다.
노엘을 찾으며, 상처를 마주하는 제이콥의 여행이 도리어 마음을 편한하게 하기도 했다. 나도 언젠간 그렇게 전부를 포용할 수 있을까.
처지에 상관없이 공허할 당신에게. 이 책은 그 빈 틈을 조금이나마 고요하게 해줄 것이다.



/* 서평을 전제로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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