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주 먼 섬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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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

예술가에게 있어 유작은 더 큰 주목을 받는다. 죽음의 그늘에 혼자 있었을, 그 외로운 심연을 들여다보고 싶은 것일까? 세상에서 하나뿐인 그 예술가의 창작물은 더는 볼 수 없기에, 그 마지막이 더 안타까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 당신의 아주 먼 섬이 작가 본인의 의지로 출간된 작품이 아닌 것을 알게 된 후, 나는 두 명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와 유진 오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카프카는 미발표 원고를 폐기해달라고 친구에게 유언을 전한다. 그러나 그의 원고는 친구에 의해 발표되고, 미완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20세기의 명작 작품 대열에 오른다. 유진 오닐은 자신의 가족사를 토대로 쓴 극작 밤으로의 긴 여로를 사후 25년 전에는 발표하지 말아 달라고 아내에게 유언했지만, 사망한 지 3년 후에 발표되어 퓰리처 상까지 받았다.

 나는 정미경 작가의 남편이 쓴 김병종 화가가 쓴 발문을 읽으며, 그의 상실감에 공감되어 한참을 울었다. 또한, 독자로서 카프카나 유진 오닐의 작품이 발표되지 않았다면, 그리고 이 작품 당신의 아주 먼 섬이 발표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았다.

이 작품은 유려한 문체, 바닷가를 직접 경험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해주는 묘사도 일품이었지만, 죽음이라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그 명제를 날 것 그대로를 표현해주고 있다. 이 소설은 소멸하고 상실하는 것, 그런데도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남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것이 작가 본인의 죽음과도 직접 맞닿아 있으며, 남겨진 김병종 화가에게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 같았다. 그 희망의 말이 나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어, 나는 읽는 도중에 여러 번 책을 덮고 울었다.

이 소설은 죽음으로 인한 지독한 상실을 겪게 된 이우가 정신 상담을 받는 상황으로 시작된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그녀는 미치는 것은 돈이 많이 든다고 자신의 상황을 조소한다. 그 말에 아이를 감당할 수 없음을 느낀 이우의 엄마는, 이우를 자신의 고향으로 보내는 것으로 이 소설이 시작된다.

이우는 이 세상에 없는, 자신의 남자친구 태이를 여전히 붙들고, 말을 건넨다. 아픔을 견디지 못해 충동적으로 물에 뛰어든 이우는 여전히 태이의 죽음의 그림자 속에 숨어, 대답 없는 대화를 나눈다. 죽을 뻔한 그녀를 구해준 판도, 이우를 얼떨결에 맡은 정모는 이우를 다그쳐 왜 그랬냐고 묻지 않는다.

섬에서 만난 이 사람들 또한 상실의 아픔을 겪어본 사람들이다. ‘터무니없는 죽음도 악다구니 같은 억센 슬픔의 순간이 지나가면 곧 일상이되고, ‘밀물과 썰물을 받아들이듯, 받아들인 사람들은 이우를 다그쳐 물어보지 않는다. 아픔이라는 날 선 칼날이 시간이 지나서 무뎌지는 것 외에는 어떤 방법도 없음을 그들도 알고 있는 것 같다.

버려진 아픔과 상실감을 겪은 판도 역시 이우의 슬픔을 함께 공유한다.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지고, 이우는 내 안에 저만한 구멍이 있어. 내 몸보다 더 커. 휑하고 휑해서 나는 가끔 내가 없는 것 같아. 그 구멍이 언제 생겼는지, 너한테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아무리 네가 못 듣는다 해도. 구멍이 생긴 순간, 그 이전의 나로는 돌아갈 수 없거든.’이라고 말한다. 상실이라는 것이 절대 채워질 수 없음을, 상처가 없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을 역설한다. 판도는 말없이 묵묵히 들어주는 것, 함께 있어 주는 것으로, 판도는 그녀를 위로하지만, 아픔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폭력적인 모성애 강요

  ‘당신의 아주 에서는 부모라는 , 특히 엄마가 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화두를 던진다. 모든 등장인물들은 아버지가 없다. 혹은 아버지라는 존재가 그들의 삶에 깊이 연결되어있지 않다. 오직 이우의 외할아버지이며, 친할아버지라고 암시된 영도만이 잔인하고 고압적인 아버지로 그려진다.

  이우의 아픔을 봐주지 못하고, 호강에 겨웠다며 답답해하고, 아이를 감당하지 못해 고향으로 내려보내는 엄마 연수의 모습은 일종의 불쾌감을 불러일으켰다. 예술가로서 자신의 명성과 커리어를 쌓는 연수에게는 이우의 아픔을 돌봐줄 시간이 없다.

  그리고 이우가 죽은 태이의 아이를 뱄다는 사실을 알게 연수는 불같이 화를 내며, 인생을 망가트릴 거냐며 이우와 빗속에서 싸운다. 이우는 쳐다보는 엄마 눈빛은 언제나 그래. 인생의 걸림돌, 족쇄, 돌멩이로 가득찬 배낭.’이라고 판도에게 말하는데, 이우의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모녀 관계를 떠나, 아이를 가진 여자의 인생을 살아본 선배로서 경험이 있는 연수는 이우를 설득하려고 한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곳에서 혼자 아이의 어머니와 아버지 역할을 동시에 해야했던 연수의 이야기가 나오며, 이우가 아이를 낳지 않게 설득하려던 연수의 속내가 드러난다.  아이의 엄마이면서 사실을 잊고 싶어하는 얼굴 그대로 드러내는 연수의 모습이, 모성애가 여자라면 모두 DNA 속에 내재한 본성일까 하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게 한다.

 

  연수는 매일 개의 질문을 내게 . 개의 답을 내가 . 묻는 , 대답하는 ,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다음 작업을 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치사한 일까지 해야 하는지 누구도 몰라.’라고 자신의 예술 작품에 대해서 말했지만, 아이를 가진 엄마와 예술가라는 직업 사이에서 고민해야 했던 시간을 유추할 있게 해준다. 그리고 연수는 집을 가질 사람이 . 아이에게 묶이고 후에야 그걸 알았어.’라고 말하며, 어떤 누군가에게는 모성애라는 것이 맞지 않는 옷처럼 불편한 것일 있음을 떠올리게 한다.

  놀랍게도 아무도 아버지의 역할과 부성애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는다, 이우와 태원은 길거리에서 만났을 , 태원이 이우의 아버지일 있다는 암시는 지지부진한 법정 싸움이나 친자 검사 같은 이야기로 흘러가지 않는다. 누가 아버지인지는 중요치 않다, ‘ 시절의 상처가 아직도 아프다면, 이후의 삶이 꽤나 평탄했단 얘기겠지.’라고 말하는 연수의 말에서 아이를 혼자 키워야 했던 고통의 시간이 있을 뿐이었다.

  이런 모녀를 바라보며 판도는 충격에 휩싸인다. ‘판도에게 엄마는, 구멍이었는데. 옆을 돌아보았을 때의 빈자리였는데. 구석구석 난로를 피워놓았는데도 집요하게 발목을 파고들던 냉기라고 서술한다. 생모에게 버림받은 판도는 이우와 연수의 관계를 질투의 심정으로 바라본다. 판도의 생모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생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에게는 일종의 죄책감이라도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이우가 아이를 갖기로 하고, 자신을 불편하게 여겼던 엄마에 대한 원망을 감추지 않는다. 그런 이우에게 이삐 할미는 여자는 새끼를 낳으면 껍데기만 남는다,’ 연수를 이해할 있도록 다독이려고 한다.

  엄마가 되어본 경험이 있는 이삐 할미는 아이를 잃었던 경험도 동시에 있는 인물이다. 자신의 아이를 잃은 이삐 할미는 지나고 나니 아픈 것도 낙이고 힘든 것도 이라고 말해주며, 이우가 먹고 싶어 하는 피자를 해준다. 식사하던 이우는 이삐 할미 말을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 그제야 이우 역시 아이를 가진 무서움에 대해 토로한다. 처음부터 강한 어머니인 사람은 없다, 여자 모두가 자신을 희생하는 모성애라는 것이 내재 것이 아님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나를 치유하는

  아픔을 겪은 모든 사람은 아주 섬으로 들어온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잠도 자지 못했던 이우도, 점점 시야가 좁아지고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정모도, 부모에게 버림받았던 판도도 섬에서 결핍과 고통을 치유한다. 바쁜 와중에 배를 타고 나갈 거라던 연수도 섬의 소금 침대에서는 꿈도 없이 깊은 잠을 잔다.

  삶은 유한하기에, 사람이 남기고 유산이 아름다운 법이다. 언제 찻잔 만한 시야조차 잃어버릴지 모르는 정모가 만든 도서관이 그렇다. 고통에 허우적거리던 이우를 토닥여준 도서관도 마찬가지이다. 

  차일이 날아다니는 날씨에 폭풍우로 정모의 도서관이 엉망이 될지도, 사라질지도 모른다. 혹은 영원히 정모의 이름이 걸린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죽음과 소멸, 상실과 함께 앞도 모르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처럼 느껴져서 소설의 결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어쩌면 삶은 떠올리면 언제라도 눈물이 같은 어떤 하루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 연속인지도 모르겠다. 이우와 이삐 할미가 태이의 천도재를 지내며 언젠가는 사람을 보내줘야 가는 이라고, ‘보내야 좋은 사람이 오는 이라고 말해준다.

  이 말이, 정미경 작가가 김병종 화가에게 보내는 내밀한 메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잃어버린 많은 사람, 무뎌진 아픔이 떠올랐다. 우리는 유한한 삶을 살며 누군가를 떠나 보내는 운명 속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품고 살라는 정미경 작가의 유작이 가슴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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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일곱 건의 살인에 대한 간략한 역사 세트 - 전2권
말런 제임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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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들은 하루도 쉬지 않는데, 어떻게 제가 쉬겠습니까?"

  총을 맞은 직후, 밥 말리가 했던 말이다. 그리고 바로 평화 콘서트 무대에 섰다. 무려 1176페이지의 방대한 양을 자랑하는 이 책은, 밥 말리의 암살 계획을 둘러싼 간략한 역사 책이다. 정치, 냉전시대 가난, 교육, 인종, 종교, 성 정체성, 마약 등, 많은 화두를 건드린다. 작가들 사이에서 '발로 쓴 책'이라고 부르는 글이 있다. 발로 열심히 뛰어 자료 조사하고 인터뷰를 한 글이라는 뜻이다. 이 책 <일곱 건의 살인에 대한 간략한 역사>는 자메이카에 정박하던 흑인 노예선 이야기부터, 최근까지의 역사를 모두 아우르는, 발로 쓴 책이다. 



  "X 같은 국민들이 인민국가당을 다시 뽑았다는 게 나한테는 XX 미스터리라는 얘기야."

   격동의 1970년대의 자메이카와 지금 2016년의 한국의 모습은 많이 닮아있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야심으로 불타는 정치인들의 왕관 쟁탈전에서 가난한 사람만 고통받는다. 그리고 각 정당은 한 구역을 자신의 지역으로 만들어 라이벌 지역과 끊임없이 싸우도록 만들고, 그 증오로 인해 게토 지역에서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정치보다는 증오로 서로를 차별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게 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 E.H.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라고 했는데, 자메이카에서 벌어진 일이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서도 똑같은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평화는 쉽게 깨지고, 악당들이 다시 탐욕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정치를 장악한다. 이것이 2016년 12월 이룩한 우리의 작은 승리가 절대로 끝이 아님을 시사해준다.



 "게토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 건 그들로 하여금 고통을 겪게 하는 일로 밥을 벌어먹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백인 혼혈로 태어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흑인이라는 이유로 가난하게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불운의 사나이가 있었다. 밥 말리, 목소리에 가난이 서려있는, 고통과 슬픔, 그 사이에도 희망을 잃지 않던 그 남자의 목소리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거물 가수가 된 이후, 그는 혼자 잘 먹고 잘 살고, 상류층으로의 진입을 꿈꾸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다. 자신이 왜 고통받으며 자라야 했는지, 많은 사람들이 왜 아직도 고통을 받으며 살고 있어야 하는지 생각해봤다. 지역사회에 뿌리 깊게 내린 정치적 편향성 때문에, 두 갈래로 나뉘어 싸우는 게토의 깡패들은 이유도 모른 채 차가운 길거리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간다. 가난에 찌들어 제대로 된 집이나 욕실조차 없는 그들의 그 모습은 가수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서로 싸우지 않도록 평화 콘서트를 열기로 했다. 하지만 지역 간 전쟁으로 이득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평화를 원치 않았고, 밥 말리를 살해하기로 한다. 평화를 원치 않은 것은 냉전시대에서 자메이카가 공산화되지 않도록 공작을 하는 CIA도 밥 말리의 암살 명령의 일정의 책임이 있다고 작가는 고발하고 있다. 부패한 정치에 지역 갈등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변화가 없다는 점이 우리네 정치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



 "처음에 놈들이 한 짓은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는 거였소. ...중략... 놈들은 심지어 자기네 사람들까지 공격했소. 노동자들에게 파업을 하라고 했다는 이유만으로, 자기들 정당과 관련된 노동조합 쪽 사람을 썰어버린 거요."

  저자가 묘사하는 게토의 모습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그 참혹함은, 전략적이며 지능적인 차별로 어떠한 기회도 얻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조시 웨일스는 가수 암살 계획을 세우며, 일부러 소년들을 그 계획에 가담시킨다. 그들은 일회용이다. 파파-로는 게토에서는 노인을 볼 수 없다고 했는데, 노인이 되기 전에 전쟁, 기아, 가난, 질병 등으로 젊은 나이에 사망하기 때문이다. 화자 중 몇 명의 게토는 상당히 지능이 높고 실제로 많은 교육을 받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게토에서 전쟁의 광풍 속에서 살아간다. 게토 지역에서 거주한 개인적인 경험을 비추어보면, 게토의 아이들은 아버지가 없었고, 찢어지게 가난했으며, 아이를 보호해줄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었다. 아이들은 갱단에 가입하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선택도 없고, 갱단에 가입하게 되면 게토 어른의 욕망으로 인해 이용당한다. 



  "자메이카가 온 도시를 크랙에 중독시키다. "

   게토를 더 썩게 만드는 것은 이 마약이다. 이 마약 사업으로 큰 돈을 벌려는 사람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마약 사업에 휘말려 총에 맞아 죽은 사람도 많지만, 이 마약 자체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도 많다. 조시 웨일스가 아이들을 마약에 중독되게 만들고 마약을 하기 위해 어떤 짓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사람을 꼭두각시처럼 부리는 모습도 소름 끼쳤다. 전 세계의 마약중독자들을 위해 게토의 누군가가 오늘도 죽는다. 게토의 야심찬 누군가로 인해, 평범한 사람들이 마약중독자가 된다. 누군가가 죽어야 돈을 벌 수 있다. 



   "흰 피부가 궁극의 여권이 된다는 건 아주 거지 같은 일이다."

  자메이카는 다수의 흑인과 소수의 백인, 인도계, 중동계, 아시아계 등이 사는 곳이다. 노예무역의 역사로 보아, 처음부터 자메이카는 계급이 정확히 나뉠 수밖에 없는 역사를 지녔다. 인종차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흑인 사이에도 짙은 피부는 기피의 대상이 되는, 하얀 것을 욕망하는 그런 사회, 거기서 흑인들은 자기도 모르게 자기 자신을 차별하게 된다. 라스타 모임에 온 백인 여자 때문에 모든 흑인 여자, 특히 니나 버지스의 동생 키미조차도 입을 다물고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는 점이 씁쓸했다. 



 "게토 양측 모두가 새로운 반대 세력을 조직하겠다는 거요. 라스타의 이름으로 당신들 전체를 쓸어낼, 진정으로 민중을 위하는 정당을."

  이 소설에는 자메이카의 종교, 라스타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밥 말리도 라스타의 교리에 따라서 살았고, 그들은 자메이카의 정치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라스타는 특히, 서구 세계의 물질 만능주의와 탐욕으로 자신들을 억압하는 이른바 '바빌론'이라 불리는 것에 저항하는 운동을 했다. 그 저항 운동은 결국 정치적인 개혁 없이는 전혀 바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실행에 옮기려 한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온갖 방해공작으로 인해 실패한다. 실현 되지 않은 그들의 꿈을 이루었다면, 자메이카는 어떤 나라가 되었을까.



  "아주 많은 여자들이 전부 움직이고 있다. 조금 지나자 그녀들 모두가 남자들에게 무언가를 가져다주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소설의 화자 니나 버지스는 페미니즘의 목소리를 갖고 있다. 중산층 지역에서 거주하면서도 강도와 성폭행 위협에 항상 노출되는 것에 니나는 큰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든 미국으로 떠나고 싶어 밥 말리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어 한다. 여성과 흑인, 소수자라는 이유 때문에 그녀는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수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결국 남자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나는 상황에 내몰린다.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그녀의 여성을 팔지만, 누구도 그녀에게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가 자립할 수 없는 사회적인 제도에서 그녀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을 했고, 거대한 사건에 휘말렸으니까. 마지막에 그녀가 자립해서 누군가에게도 기대지 않고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을 읽고 궁금해져서 라스타와 밥 말리에 대해서 조사하던 중, 나는 라스타의 교리가 여성을 억압하는 교리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떠한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없고, 머리를 감싸고 야한 옷을 입지 않으며,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목적인 인생인 것 같아 씁쓸했다. 실제로 밥 말리는 엄청난 수의 여자들과 염문을 뿌렸으며, 혼외 자식들을 낳았다. 특히 1달 내에 세 명의 다른 여자들이 밥 말리의 아이를 낳은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 책은 언뜻 밥 말리와 라스타를 찬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신랄한 비판도 서슴지 않고 하고 있다. 



  "첼시 호텔이 있는 길의 굽이로 걸어가면, 문 바로 위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성인 남자 둘이 한 방을 빌릴 수는 없다는 안내판이 걸려 있다. 반면 소아 성애자한테는, 이렇게 쿨한 도시도 없다는 듯 빌려줄 거다."

  말런 제임스는 성 소수자이다. 자메이카에서 게이로서는 절대 살 수 없음을 깨닫고 자메이카를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게이인 화자를 등장시키면서, 그들이 게이로서 삶을 거부하고, 걱정한다. 자신이 태어났을 때부터 가진 그 '취향'의 문제로 배척당하고, '바티맨'이라는 농담거리가 되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성 소수자로서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성 소수자인 위퍼는 똑같은 성 소수자인 존-존 K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기까지 했다.



  "사실 나는 거리에 있는 어린애를 붙잡아서 목을 비틀고 비틀고 비틀어 똑 떼어버리고 싶은 거라고 그런 다음 피를 한 국자 떠서 얼굴에 문질러 바르고 억압당하는 사람 있으면 또 나와봐 쌍년들아라고 말할 거야 나는 박고 박고 박고 싶지만 딱딱해지지가 않아! 

  등장인물이 번갈아가면서 각 챕터에서 나래의 션 형식으로 서술되는데, 마치 저자 말런 제임스 몸에 누군가 빙의가 돼서 집필을 한 것처럼 각자의 말투가 전부 다르다. 마치 인간의 의식의 흐름처럼, 편안한 상태에서는 논리가 맞도록 말을 하다가도, 마약을 한 상태에서는 그 목소리가 횡설수설하게 변한다. 마치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누군가의 독백이나 혼잣말을 듣는 듯한 그 화법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말런 제임스는 인간을 선악의 이분법으로 나누어 악랄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그들이 선행과 악행을 저지르게 되는 상황을 인물의 목소리로 그대로 표현한다. 비록 악한 인물이라도 그는 그 만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내레이션을 들으면 묘하게 동정심이 생긴다. 한 사람을 이루는 아집, 선입견, 개인적인 생각들을 보여주기 때문에 여성비하, 인종비하, 잔인한 묘사, 성적인 묘사 등에 누군가는 불쾌할 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코 그게 옳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판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말런 제임스는 성 소수자이자  흑인이며 제3세계 시민으로,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소수자들이 받고 있는 엄청난 고통에 관심을 가지고, 변화할 수 있도록 '역사'라는 매개체를 이용했다. 저자는 이 역사 속에 휘말린 사람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보다는, 그 비극이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기에 1991년의 모습을 보여주며, 변한 것이 전혀 없음을, 세대교체만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야만적인 물질만능주의와 탐욕에 저항했던 밥 말리는 아들에게 이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한다.

  "Money can't buy life." 돈으로 인생을 살 수는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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