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여행의 한 수 홀로 세계여행을 꿈꾸는 이에게 보내는 메시지 2
정금선 지음 / 좋은땅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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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다. 문득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너무 늦은 것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시작하라“는 어록을 남긴 개그맨 P의 푸념이 떠오른다. 이 말은 상반된 듯하나 뜻은 같다. ‘지금 당장 시작하라’는 권유를 우회적으로 전한다. 결론은 버킹검인 것이다.
     
방학이면 하늘을 날아, 총 70여 개 나라를 여행한 작가가 있다. 오십이 되자 본격적으로 자유여행의 즐거움에 빠져 배낭을 메고 세계 구석구석을 훑었다. 작가는 혼자 하는 여행이야말로 진정한 명상이요 사유의 시작이라며, 과감히 신발 끈을 매고 비행기에 올랐다. 중년 여인으로서 가사일을 챙겨야 하는 책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곳으로 떠났다. 오롯이 자신이고만 싶었다는 작가의 독백을 보면서,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절대 자유를 실행한 용기에, 부러움과 경외심이 일었다. 자유란 무엇보다 든든한 배경이 있어야 가능하다. 가족의 사랑과 믿음이 그녀의 뒷심임은 여지가 없어 보였다. 2007년 작은아들과 첫 인도여행 후, 그곳의 강렬한 매력에 끌려, 이 년 후 과감히 홀로 배낭을 짊어 맨 교사이자 여행작가, 그녀는 나의 여고 은사님이시다.
     
이 책은 뭄바이에서 시작해 델리까지, 홀로 31일 동안 인도를 배낭 여행한 기록이다. 작가만의 경험을 주관적으로 생생히 담았기에, 일기인 듯 르포처럼 진지하고, 가끔 엄숙하다. 때론 키득대며 함께 웃자며 독자를 현장으로 초대해 다양한 재미를 준다. 홀로 여행을 꿈꾸는 이에게 「인도여행의 한 수」를 전하며, 작가만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담았다. 호기심과 생소함으로 시작한 독서는 페이지를 넘길수록, 외려 남은 여행 일정이 줄어드는 아쉬움이 컸다. 그동안 인도의 매력을 마음으로만 품고 있던 나는, 이 책을 읽은 후, 반드시 가 봐야 할 여행지 중의 하나에 인도를 넣었다. 읽는 즐거움에서 행동하는 기쁨이 되는 날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인도의 속 속을 예리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엮은 자료를, 방구석에서 대리 체험할 수 있는 만족감에 마냥 흐흐 거린다.
     
기차 예약만 제대로 하면 인도여행 반은 성공한다는 말을 증명하듯이, 아슬아슬한 에피소드가 무척 흥미롭다. 여행하다 보면 현지 음식이 안 맞아 탈이 날 때도 있다. 작가는 여행에서 건강이 필수임을 알기에, 여행 전부터 섭생과 운동으로 최대한 몸을 만든다고 한다. 현실에 충실하고 절제하며 끊임없이 노력한 이후에야 누릴 수 있는 자유란, 얼마나 달콤한 카타르시스를 부르는지, 작가의 여행기는 단순한 보고서가 아니라, 내게 생 교육으로  다가왔다. 이 책을 읽은 일은, 스승의 일련의 과정을 보고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는 행운’을 목도하는 일이었다. 내게 인도(印度)가 인도(人道)로 다가왔다.
     
도시 뭄바이의 양면성, 타지마할 호텔의 탄생 비화는 제국주의 영국에 대한  분노의 결과물이라고 한다. 부와 빈의 극명한 대조 속에, 뭄바이의 모습을 한눈에 그릴 수 있었다. 형형색색의 사리를 입고 꽃장식을 한 여인들과, 까만 피부에 큰 눈을 굴리며 해맑게 웃는 아이들 모습에서, 작가는 더 없는 순수함을 느낀다. 야박한 장사치들의 술수와 골목길의 지린내보다, 일반 사람들의 친절함과 해맑은 모습에, 더 눈길이 머물렀다고 한다. 인간의 본성에 관심을 두고, 내심 여행자로서 발견하고픈 것이 무엇인지, 작가는 알고 있었을 터이다. 불가능은 없다는 심정인가, 상황이 난감해지면 "Please~~" 라는 단어를 덧붙여서 부탁하면, 신기하게도 뜻대로 이루어졌다면서, 고아행 기차표를 예약했던 기적을 일러준다. 자신을 낮추는 자는 결국 마음을 여는 열쇠를 쥔다는 말, 여행 중에도 적용되는 진리인가보다.
     
요긴한 준비물이 되었던 누룽지와 멸치볶음, 고추장. 잘 다녀오라며 친구가 공항에서 건넨 홍삼 젤리와 사탕, 몇 권의 책과 추가로 공항에서 산 ‘사이토 시케다’의 책등…. 최소한 필요한 분량으로 짐만 줄여도 불편함이 없었다고 한다. 옷부터 자질구레한 먹거리들로 가득 찬, 나의 미련한 짐 싸기에, 경고장을 주신 듯하다. 현지 조달 가능 목록을 빼고도, 짐을 싸고 보면, 나는 이고 지고 갈 지경이니, 고수님의 혜안이다.
     
돌아가는 길도 아름답다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행운은 있다. 또한 어떤 길도 헛됨은 없다. 그런 행운은 작가에게 빤짐의 만도비강 일출을 선사한다. 빤짐의 건물이 중세 유럽 도시인양 아름다운 이유는, 포르투갈 식민 시절의 건축양식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심지어 올드 고아는, 나도 사랑하는 포르투갈의 시인 카몽이스가 ‘동방의 귀부인’이라 칭했다는 수도 리스본을 재현한 도시라니, 본국의 수도를 식민지의 한 도시에 베껴 구상한다는 발상도, 제국의 야욕을 엿볼 수 있다. 그 흔적으로 고아 주 빤짐만의 개별성이 되었다. 힌두교가 주류인 인도지만 이곳은 가톨릭이 35%로, 인도 안의 가톨릭 성지라고 한단다. 붉은 돌과 모래가 있는 안주나 해변의 고혹적인 일몰, 야자수 곁으로 내리비치는 노을과 함께, 작가는 여행지에서 낯선 만남과 헤어짐, 인연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덩그러니 홀로 인도 한 복판에서, 누구의 간섭도 없이, 작가는 스스로 묻고 답하는 과정의 참 자유를 누린다. 부럽다.
     
인도에서 태어난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의 「코끼리를 쏘다」는 버마의 경찰로 근무하게 된 오웰이 쓴 산문이다. 식민지에서 근무하는 제국 경찰의 비루함과 폭력성을 고발한 작품이다. 당시 인도나 버마등지에서도 많이 등장하는 코끼리의 느릿한 움직임이 오버랩 된다. 함피의 강가에서 목욕하는 코끼리, 사원 안에서 헌금을 받는 코끼리, 느릿느릿 주인인 양 거리를 활보하는 코끼리와 소, 원숭이와 개들, 모두 동물을 귀히 여기는 인도의 모습이리라. 유난히 옴 몸을 장미로 치장하고 비단과 보석이 넘치는 도시라는데, 이탈리아 여행가 디 콘티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풍경’이라며 찬사를 했다니, 나도 글과 사진을 따라 함피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들었다. 다만 치안의 허술함 때문에 위험은 도사리지만 안전만 확보된다면, 작가는 꼭 함피를 가 보라고 권한다. 배경은, 더한 에피소드를 남기고, 작가의 여정에 호텔 종업원 만수와의 인연은, 재밌고도 아슬아슬했다. 이야기를 끌고 가다가 결론은 마지막 여정일에 알려 준다는 노련한 글솜씨에, 실실 웃다가 대목을 놓칠세라 눈을 부릅떴다.
     
브라마, 비슈뉴, 시바는 인도인이 힌두교에서 섬긴다는 세 신이다. 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신은 시바이다. 힌두교도들에게 시바는 큰 상징성이 있다고 한다. 힌두 사상인 파괴가 있어야 창조가 존재하기 때문에 파괴신 시바는 창조신과도 같다고 한다. 아우랑가바드의 석굴 소개는 매우 흥미로웠다. 아잔타 석굴은 BC2세기경 인도 불교의 황금기에 부흥했다. 엘로라 석굴은 이로부터 700년이 지나, 힌두교. 불교. 자인교가 섞인 석굴이라고 한다. 아잔타 석굴은 작가의 말처럼 나도 교과서에서 배웠던 기억이 있다. 엘로라 석굴의 카일라스 사원은 시바신의 처소라는데 도드라진 조각상 사진에는 압살라 조각도 보였다. 십 년 전 캄보디아 여행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압살라 춤 동작이, 사진 속의 조각과 겹친다. 뾰족한 관을 쓰고 한껏 치장한 채, 느리면서도 정교하게 움직이는 손발 동작이, 마치 요가를 춤으로 옮긴 듯했다. 힌두교와 불교의 신화 속 요정의 춤이라니 이해가 되었다. 절제의 미학 같았다.

갠지스강 강가 바라나시, 인도 여행의 상징처이다. 죽기 위해 마지막으로 찾는 ‘마니까르니까 가트’ 번뇌의 세상, 다음 생에는 태어나지 않고 해탈하기 위해, 인도인들은 육신의 마지막에 이곳 화장터, 바라나시를 찾는다고 한다. 재가 되어 그들의 성지 갠지스강에 뿌려진다. 여러 여행 프로그램에서도 많이 나오던 바라나시 풍경, 신기함과 두려움으로 보던 장면이다. 인간은 각자 그들만의 종교적 신념을 응시한다. 믿는 대로 이루어지리라는 염원을 품고, 막막한 하루하루를 산다. 이치를 보면 믿는 대로 된다니, 나도 내가 믿는 신을 향해 의심 없이 다가가야 하리라. 바라나시에서 작가가 본 성자 구루(GURU)처럼, 자신만의 모습으로 생에 몰입하면, 뜨내기 여행자의 눈에도 삶을 통찰한 성자가 되니 말이다. 사막 밤의 적막 속에 뭇별을 보던 날, 미처 그 황홀한 경외감을 필름에 다 담을 수 없었던 작가는 그만 눈물을 흘린다. 극도의 감동은 슬픔 또는 기쁨, 어떤 종류에도 속하지 않는 그 이상의 감정이 있는 것 같다. 생의 신비로움에 가슴 밑부터 솟구쳐 오르다가 우주 너머로 확장되는 감정이다.
     
(215p) “좋은 것을 보면 함께하지 못한 가족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작가는 혼자만 누리기에 아까운 순간마다 가족을 떠 올린다. 여행은 되돌아가기 위한 여정이라는 말이 있다. 비록 자유 의지대로 발 닿는 곳으로 향하지만, 작가는 최종 안식처는 가족이 있는 공간임을, 본능처럼 되뇌는지도 모른다. 두 발로 실컷 경험한 여행의 끝은, 소중한 일상을 더 치열하게 살게 하는 힘이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책 「인도 여행의 한 수」는 총 다섯 번의 인도 여행 중에, 두 번째 인도 여행 기록을 엮은 책이다. 여자 혼자 하는 인도 여행의 위험성에 관한 선입견을 우습게 깨버리고, 다섯 번이나 다시 찾은 인도의 매력은 무엇일까. 궁금했던 면면은 작가의 행보와 사유 속에서 선명한 대답을 읽었다.
     
한 친구가 소통 공간에서 말했다. 여고 시절 어찌어찌한 일로, 반장으로서 담임선생님께 혼쭐이 나, 서럽게 울고 있었다. 그때 선생님께서 어깨를 토닥이며 진심으로 위로와 격려를 해주신 일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허방을 헤맬 때 든든한 힘이 되어 준 어떤 순간, 그때부터 그 친구는 선생님의 본 면을 더 자세히 알게 되었고, 진정한 제자가 되기로 했다고 한다. 관계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평범한 일상에 갑자기 큰 의미를 갖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이는, 잘난체하는 순간도, 남을 평가하는 순간도, 술술 풀려서 으쓱 대던 순간도 아니다. 곤경에 처했을 때 온전히 믿어주는 사람, 절망했을 때 손을 잡아 주는 사람, 할 수 있다는 긍정의 힘을 보내는 일. 별것도 아니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그날의 친구는 누구보다 멋진 사회인이 되어 이 책의 맨 앞장 추천 글로, 경애하는 선생님을 부른다.
     
작가의 여행기를 통해, 차츰 그 시절에 내가 알았던 선생님과, 책 속에서 들려주는 작가의 이야기가 씨줄 날줄로 엮여, 탄탄한 어떤 형태가 보였다. 아무리 험난한 과정이 있다해도 “죽기보다 더하겠어” 라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했다 냉철하고 지혜로운 쪽보다, 따뜻하고 온유한 사람이 좋다는 말씀 안에, 선생님의 본성이 다 담겨 있음을 안다. 이런 발견을 재확인한 「인도 여행의 한 수」는, 꿈꾸는 것은 ‘지금 당장 시작하라’는 스승의 체언을, 즐겁게 누리는 시간이었다. 자유를 꿈 꾸는 인도 여행과, 삶의 한 수를 선물 받고 싶은 이에게, 기꺼이 이 책을 권한다. 거인의 어깨에 기댄 독자는 행운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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