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구와 함께 걷다 - 평화의 눈길로 돌아본 한국 현대사
한홍구 지음 / 검둥소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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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이라니, 도대체 누구한테 '위안'이었단 말인가?...우리가 종군이라는 말을 쓰는 경우는 종군기자, 종군작가, 종군화가 등과 같이 제 발로 군대를 따라간 사람들을 일컬을 때이다... 그런데 일본군의 '위안부'로 끌려간 할머니들은 하나같이 강제로 끌려간 분들이다.-34쪽

근대에 들어와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전쟁의 양상이 일반 국민들 모두가 참여하는 총력전으로 바뀌면서 국립묘지는 근대국가의 가장 중요한 상징물로 등장했다. 국가는 거듭되는 전쟁을 치르면서, 그리고 앞으로 숱하게 치러야 할 전쟁을 준비하면서 전쟁에서 죽은 목숨이 의미 없는 개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것에 최대한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앞으로 있을 전쟁에서 국민들에게 목숨을 바치라고 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58쪽

자라나는 학생들이 고문 장면을 보고 난 뒤에 느끼는 감정은 민족 감정에 의존한 협소한 반일 감정이 아니라 보편적 인권을 존중하는 마음이어야 하지 않을까? 학생들이 써 놓은 낙서를 보면 반일 의식은 넘쳤을지언정 반고문 인권 의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122쪽

중앙과 지방의 행정을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아전들도 '자시다'와 '처먹다'의 모호한 경계를 넘나들며 500년 동안 조선을 경영했다. 지금도 가끔씩 "적당히 해 먹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느데 참으로 뿌리 깊은 말이다.-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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